2023.11.22. 수요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230) 기념일
2마카7,1.20-31 루카19,11ㄴ-28
성화(聖化)의 여정
-성인(聖人)이 되는 것은 우리의 거룩한 소명(召命)이다-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지켜주시고,
당신 날개 그늘 아래 이몸을 숨겨주소서.”(시편17,8)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 주시고,
당신은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시편18,29)
지난 금요일 카메룬 출신 파토는 7년간 리비아 사막에서의 비극적 여정후 기적적으로 지중해를 건너 로마 교황청에서 개인적으로 교황님을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내가 언젠가 교황님을 만나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7년간 여정은 쉽지 않았으니 우리에게는 어떤 도움도 없었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도왔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도왔다(Only God helped us)’, 말마디가 새삼 마음에 와닿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깊이 깨달아 아는 자가 겸손한 성인입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소명이요 믿는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성화의 여정중에 있습니다. 파토를 도왔던 모든 이들과의 대화중 교황님의 두 단어 역시 마음에 남았습니다.
“특권은 빚이다(privilege is a debt).”
“부유한 너희들이 하는 것은 더 많은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무다(it is a duty).”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우리가 하는 사랑의 행위는 마땅히 해야하는 사랑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이런 “빚(debt)”과 “의무(duty)”에 대한 기본적 또렷한 인식을 지닌 이들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성인입니다. 어제 수도원에서는 예수성심자매회 월례모임이 있었습니다. 사진촬영후 사진과 함께 메시지도 나눴습니다. 빛과 그늘, 그리고 인물들이 잘 조화된 신비롭고 아름다운 사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매님들, 모두가 멋지고 기품있는, 내면의 빛을 발하는 주님의 사랑스런 성녀(聖女)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늘 이렇게 사세요.”
어제는 병 진단을 받고 날마다 약을 복용하게 된 수도형제에게 준 덕담의 격려도 생각납니다.
“이 또한 순종의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최선의 삶을 살 때 늘 함께 도와주십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하느님은 최고의 의사이십니다. 아플수록 겸손하면 됩니다. 겸손이 최고의 명약입니다. 참으로 겸손해서 성인입니다. 추호도 위축되거나 의기소침하지 마시고, 힘내시고 용기내시기 바랍니다.”
회개로 이미 용서받은 과거는 주님께 맡기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성화의 여정에 오르면 됩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엑소더스, 탈출의 여정, 성화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녀 체칠리아 기념일입니다. 시종일관 주님 사랑에 몸바쳐 살다가 아주 젊은 나이에 순교한 성녀입니다. “천상의 백합”을 뜻하는 이름대로 천상의 백합꽃같은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성녀는 교회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성녀의 순교록에 나오는 일화중 일부 감동적인 내용을 소개합니다.
-성녀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교도인 성 발레리아누스와라는 귀족청년과 결혼하였으며 결혼후 자신은 동정서약을 하였고 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 천사를 보게 해주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약속하였으며, 성녀는 그를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에에게 보내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도록 안내합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돌아오는 도중 백합으로 장식된 관을 쓴 두 천사가 성녀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고 동정서약에 동의합니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때부터 동생인 성 티부르누스와 사치스러운 생활을 멀리하고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활동과 신앙생활에 전념합니다. 이들은 곧 총독인 알마키우스의 미움을 샀으며 총독에게 로마의 신들을 모신 신전에 희생제사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다 심한 매질후 그 형제들은 이들의 신앙에 감화받은 총독의 시종인 성 막시무스와 순교합니다. 이 세 순교자들의 장례를 지낸후 체칠리아 성녀 역시 심한 박해와 고문후 순교합니다. 당시 성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순교한 성인들이었습니다.-
오늘 성녀 기념일 아침 성무일도시 즈카르야의 후렴도, 저녁 성무일도시 마리아의 노래 후렴도 성녀의 거룩한 삶을 요약합니다.
"태양이 솟아 오를 무렵 체칠리아는 '그리스도의 전사들아,
어두움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하고 부르짖었도다."
"복된 체칠리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밤낮으로 기도하며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였도다."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 역시 감동적인 일곱 형제들의 순교에 이어 그 어머니의 순교 행적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었기에 가능한 순교였음을 봅니다. 특별히 이들의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으니,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에 용감하게 견디어내며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합니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한 그는 여자다운 생각을 남자다운 용기로 북돋우며 아들들을 격려합니다. 마침내 막내 아들 역시 안티오코스 임금의 회유를 떨쳐버리고 어머니의 충고대로 용감히 순교하니,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들입니다. 우리가 배울 바 하느님께 대한 궁극의 희망과 사랑, 믿음입니다.
죽어서만 순교 성인이 아니라 살아서도 순교적 삶에 충실한 이가 성인입니다. 11월 위령성월이자 성인성월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비범한 성인이 아니라 제본분의 책임을, 의무를 다하는 성인들입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사랑에 빚진 선물 인생을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평생과제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두 종이 그 훌륭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한 미나의 선물인생, 나름대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함으로 칭찬받는 첫째 종과 둘째 종이 그 모범입니다.
“잘 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인 첫째 종에 이어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벌어들인 이도 주인의 칭찬을 받습니다. 선물 인생에 최선을 다해 과제를 수행한 참 성인다운 삶을 산 이들입니다. 그러나 평생과제에 소홀하여 한 미나를 그대로 바친이는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주인의 질책과 더불어 불행하게 인생 마감합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합니까? 각자 주어진 한 미나의 선물인생 잘 활용하여 많은 수확을 남기고 있는 성인다운 삶인 지요? 살아 있는 동안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내 삶의 손익(損益)을 계산하는, 선물 인생 한 미나의 활용도를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성화의 여정중인 우리의 삶을 일일일생, 일년사계로 압축하면 과연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습니까? 죽음과 더불어 내 인생 결산(決算)할 시간이, 주님께 헴바쳐야 할 시간이 점차 가까워집니다. 주님의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성화의 여정중 진인사대천명, 과제 수행에 온갖 힘을 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주님,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을 뵈오리다
깨어나 당신을 뵈옴으로 흡족하오리다.”(시편17,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