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희망, 회개, 겸손- 2023.12.10.대림 제2주일 이사40,1-5.9-11 2베드3,8-14 마르1,1-8 ​​​​​​​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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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0.대림 제2주일                                               이사40,1-5.9-11 2베드3,8-14 마르1,1-8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희망, 회개, 겸손-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보이소서, 

 또한 우리에게 구원을 주소서,”(시편85,8참조)

 

방금 우리는 대림 제2주일을 맞이하여 참으로 애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자비를, 주님의 구원을 주십사 기도했습니다.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대림 촛불 둘이 주님 오심이 점차 가까워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는 누구나 시인이 되는 계절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기쁨이. 대림의 희망이 예언자들처럼 우리를 사랑의 시인이, 사랑의 신비가가 되어 살게 합니다. 

 

어제 저는 강론을 통해 배움의 여정, 치유의 여정에 대해, 또 우리의 평생 스승이자 치유자이신 주님께 대해 나눴습니다. 오늘 한밤중 일어나 가톡을 열었을 때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제 강론 끝부분이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팔십이 넘은 자매님이지만 늘 푸른 열정과 순수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매님입니다.

 

-“+찬미 예수님!

신부님, 매일의 강론 말씀은 제 삶의 길잡이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희의 스승, 저희의 위로자, 저희의 치유자이옵니다.

저희의 사랑, 저희의 생명,

저희의 희망, 저희의 꿈, 저희의 기쁨,

저희의 길, 저희의 빛, 저희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하나되어,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대림 제2주일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바로 이런 분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게도 이미 이런 주님과 함께 살면서 동시에 이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삶의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닦으며 날마다 설레는 마음, 설레는 기쁨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우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오시는 대림의 주님의 위로가, 기쁨과 평화가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줍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를 찾아 오시는 대림의 주님을 실감나게 상징적으로 묘사하며 우리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분연奮然히 일어나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각자 삶의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을 것을 촉구합니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내어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바로 이런 착한 목자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의 우리들입니다. 탄생하실 우리의 착한목자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들입니다. 어떻게 은총의 대림시기, 우리 삶의 광야에 주님의 길을 잘 닦을 수 있을까요? 그 구체적 방법을 소개해드립니다.

 

첫째, 희망과 꿈입니다.

희망이, 꿈이 있을 때 자발적 기쁨으로 인내히며 주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희망과 꿈이 힘입니다. 희망과 꿈을 잃으면 살 수 없습니다. 타락과 유혹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주님 만날 희망이, 꿈이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합니다.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자 꿈이신 주님이 우리를 하루하루 설레는 기쁨으로 살게 합니다. 오시는 주님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자 꿈입니다. 제2독서 베드로 사도의 말씀이 참 적절한 답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날을, 이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없고 흠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바로 주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이요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자 꿈입니다. 바로 이런 새하늘과 새땅의 희망이, 꿈이 우리를 살게 하는 내적 힘의 원천이 됩니다. 이미 궁극의 희망이자 꿈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앞당겨 살고 있는 행복한 우리들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의 희망과 꿈에서 샘솟는 평화와 기쁨이요 꽃처럼 피어나는 행복입니다.

 

둘째, 회개입니다.

오늘은 인권주일이자 오늘부터 대림 제2주간은 사회교리 주간이기도 합니다. 진정 생태적 회개, 사회적 회개를 통해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오실 우리의 희망이자 꿈이신, 새하늘과 새땅을 열어주시는 주님이 우리를 부단히 회개에로 이끌어 줍니다. 지칠줄 모르는 회개의 동력이 됩니다. 회개는 후회나 감상적 뉘우침이 아닙니다. 오시는 주님을 향하여, 맞이하며 우리 삶의 방향을,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야 말로 영적혁명이요 끊임없이 날마다 회개의 여정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회개를 촉구하는 시적 표현이 참 멋집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불평등의 골짜기는 모두 메꿔 평등으로 이끄는 회개요, 산과 언덕의 교만은 낮아지는 회개요,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됨으로 정의와 공정, 사랑과 평화가 실현되는 회개입니다. 이런 외적 회개와 더불어 우리 내면의 평화와 안정을 상징하는 회개의 은총입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습니다. 모두가 순식간입니다.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위하여 참고 기다리십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회개하여 매일 새롭게 사랑의 삶을 살라고 연장되는 날들입니다. 살아있을 때 회개와 사랑, 찬미와 감사, 기도와 공부이지 죽으면 모두가 끝입니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아까운 시간과 정력 낭비하지 말고, 회개하고 사랑하고, 찬미하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겸손입니다.

회개의 참 좋은 열매가 겸손과 온유입니다. 광야의 의인이자 예언자 세례자 요한이 그 모범입니다. 결코 시류와 영합된 괴물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광야 여정, 세상 것들에 중독되다 보면 괴물도 폐인도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참 건강한 영혼의 사람, 세례자 요한은 겸손의 전형입니다. 요한의 절제와 극기의 겸손하고 단순소박한 독야청청한 삶의 모습이 우리에겐 신선한 충격이요 우리를 회개에로 이끌어 겸손하게 합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말그대로 무공해의 삶이요 생태적 회개와 자연친화적 삶의 모범입니다. 이어지는 고백에서 그의 겸손한 모습이 또 우리에겐 신선한 감동입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존재이유이자 전부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세례자 요한은 상상할 수 없듯이 예수님 떠난 우리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바로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겸손이요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 거울에 투명히 드러나는 참나의 얼굴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의 광야에 주님 오실 길을 닦는데 회개와 겸손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자 꿈이신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회개와 겸손으로 이끄십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 함께, 우리를 향해 오시는 주님을 향해 길을 닦으며 마중 나가게 합니다. 끝으로 “詩가 찾아 왔네, 나를!” 아름다운 자작시를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참 아름다운 시이기게 "시"는 "주님"으로 바꿔 읽어도 좋겠습니다. 늘 읽어도 늘 좋은 그리스도왕 대축일 때 주님께 바쳤던 헌시獻詩입니다.

 

“詩가 찾아 왔네

 나를!

 은총처럼 사랑하는 詩가

 가슴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詩가

 나 외로울 때, 그리울 때, 기다릴 때 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참 반가운 손님, 참 기쁜 선물, 참 좋은 연인, 참 좋은 친구인 詩

 늘 詩를 생각하며 詩와 함께 살아왔고 살고있고 살것이라네

 詩덕분에 하루하루 날마다 늘 평생 한결같이 살아왔네

 詩없이 이 삭막한 광야여정 무슨 맛, 무슨 기쁨,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눈이 열리니 온통 詩인 천국이라네

 세상에 나보다 평화롭고 자유롭고 부요하고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네

 나 언제나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행복한 하늘 나라의 삶이라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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