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8.월요일 12월18일 판관13,2-7.24-25 루카1,5-25
끝은 늘 새로운 희망의 시작
-우리 하나하나가 "요셉"이자 “임마누엘”입니다-
“깨어있음, 경청, 순종”
“오, 하느님이여,
이스라엘 집안을 다스리시는 분이여,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산에서 그에게 당신 법을 주셨으니,
오소서, 팔을 펴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어제 12월17일 대림2부 첫날 저녁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O후렴”은 “오! 지혜(O Sapientia)”로 시작되었고, 오늘 둘째 날인 12월18일은 “오! 하느님(O Adona)”으로 시작됩니다. 끝은 늘 새로운 희망의 시작입니다. 11월 위령성월의 끝은 대림으로 시작되어 우리는 하루하루 설레는 기쁨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마중나가고 있습니다.
끝은 늘 새로운 희망의 시작입니다. 엊그제 수도공동체가 선물받은 이해인 수녀의 “이해인의 햇빛 일기”라는 예쁜 시집이 따사로운 햇빛처럼 참 반가웠습니다. 암투병후 79세 노령에도 늘 새로운 시작의 삶을 살아가시는, 영원한 현역의 수녀님의 삶이 참 경이로웠습니다. 말 그대로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의 표지가 되는 수녀님입니다.
지난 목요일 12월14일부터는 배밭 배나무 전지가 시작되었습니다. 배농사 역시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보여줍니다. 배나무의 가지치기 전정과 더불어 이 은총의 대림시기 “삶의 전지(剪枝)”를 통해 삶의 본질이 투명히 드러나도록 해야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마침 배나무 전지와 더불어 우리 수도형제는 수도원 하늘길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들도 말끔히 전지했습니다.
“사랑하는 수사님, 이 추운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들 참 멋지게 전지하노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높은 사다리를 움직이며 가로수(街路樹)를 전지한 수사님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고, 하느님을 찾는 수도자를 상징하는 듯한 너무 멋진 메타세콰이어 가로수에 반해 쓴 “하늘 향한 끝없는 사랑이”라는 시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늘 향한
끝없는
사랑이
그리움이
저리도
반듯하게
하늘 높이
크게 자라게 했나보다
수도원
하늘길
가로수
메타세콰이어 나무들!”-2023.12.15
이제 겨울의 시작 초겨울인데 벌써 깨어 부활의 봄을 기다리는 하늘 향한 무수한 겨울나무들같습니다. 흡사 대림시기 오시는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우리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의 모습을 이사야 예언자가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 부르리라.”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 바로 오늘이 그날입니다. 이런 주님을 앞당겨 맞이하여 모시고 오늘 지금 여기서 공정과 정의, 구원과 평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화답송 후렴처럼 정의와 평화를 꽃피우며 참으로 멋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주인공 의인 요셉입니다. 주님 탄생을 앞둔 하느님의 배려와 준비가 참 완벽합니다. 이미 하느님은 의인 요셉을 예비했고 당신의 사람, 마리아가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했을 때 해결사 하느님은 당신의 천사를 통해 그의 약혼자 요셉을 찾아 오십니다. 여기 오늘 복음을 통해 의인 요셉에게 우리는 세가지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 의인 요셉은 깨어 있는 분이었습니다.
참 영성의 표지가, 영성생활의 궁극 목표가 깨어 있는 삶입니다. 깨어 있는 삶을 위해 끊임없는 기도를 강조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깨어 기다리는 삶, 깨어 준비하는 삶, 깨어 책임을 다하는 삶입니다. 막연한 깨어 있음이 아니라 꿈과 희망, 길과 진리, 빛과 생명의 주님을 기다릴 때 비로소 인내로이 깨어 기다릴 수 있습니다.
깨어 있음은 침묵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도입니다. 깨어 있음은 인내의 기다림입니다. 깨어 있음은 사랑입니다. 깨어 있음은 공감과 배려입니다. 깨어 있음은 지혜입니다. 참으로 깨어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진정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에 묘사가 참으로 깨어 있는 의인 요셉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참으로 숨막히는 위기 상황입니다. 요셉의 마리아에 대한 배려가, 분별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사랑의 배려, 사랑의 분별, 사랑의 지혜입니다. 우선적이 분별의 잣대는 마리아의 안위였습니다. 태풍으로 변할 사건을 참으로 깨어 있었던 의인 요셉의 사랑의 지혜로 미풍이 되고 말았으니 천만다행입니다. 하느님은 안도했고 요셉이 참 고마웠을 것입니다.
둘째, 의인 요셉은 경청(傾聽;敬聽)의 사람이었습니다.
침묵의 사람, 경청의 사람입니다. 경청으로 표현되는 겸손이요 참으로 멋지고 매력적인 요셉의 인품입니다. 참으로 이런 요셉을 택한 눈밝은 하느님이요 이런 준비된 요셉을 친히 찾아 오신 주님의 천사입니다. 얼마나 요셉을 신뢰한 하느님인지 그대로 자기 속내를 드러내시나 하느님의 위험한 모험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아마도 침묵중에 깨어 깊이 경청했을 의인 요셉입니다. 요셉의 은밀한 주님과 만남의 내적체험을 반영합니다. 참으로 깨어 삶의 깊이에서 이런 내적체험을 필요로하는 우리들입니다. 아마도 침묵중에 깨어 깊이 경청했을 요셉입니다. 예수는 “주님께서는 구원하신다”라는 뜻인데, 또 주님을 믿는 우리 하나하나의 이름처럼 생각되는 참 아름다운 이름 예수입니다.
셋째, 의인 요셉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어 천사를 통한 예수님의 신원이 환히 밝혀집니다. 이미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예언된 임마누엘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여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임마누엘 이름 뜻은 얼마나 멋진지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새삼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또 하나의 임마누엘임을 깨닫습니다. 요셉의 경청에 이은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순종은 믿음의 표현이자 영성의 잣대이기도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참으로 조마조마했을 하느님입니다. 그대로 거룩한 밤, 거룩한 꿈중에 이뤄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런 순종을 통해 하느님의 요셉에 대한 신뢰는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새삼 영성생활에 날마다의 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영성생활의 성패는 이렇듯 밤에 달렸음을 봅니다. 아주 예전에 써놨던 “나무는 밤에 불을 켜지 않는다”란 시도 생각납니다. 무려 26년전 시라 더욱 반갑습니다.
“나무는
밤에 불을 켜지 않는다
밤의 어둠과 고요에 묻혀 쉰다
나도 밤에는
그분의 어둠과 고요에 묻혀
쉬고 싶다, 꿈꾸고 싶다, 기도하고 싶다
밤에는!”-1997.7.25
이런 순종으로 이끈 이런 밤의 꿈 체험의 기억은 평생 요셉의 믿음을 늘 새롭게 했을 것입니다. 세례받아 주님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우리 하나하나가 또 하나하나가 요셉이요 예수님이요 임마누엘입니다. 참으로 의인 요셉은 늘 깨어 있는 사람이자 경청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은총의 대림시기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의인 요셉처럼 깨어 경청과 순종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