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참맛 -우리 모두가 주님의 애제자(愛弟子)이다-2023.12.27.수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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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7.수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1요한1,1-4 요한20,2-8

 

 

주님을 사랑하는 참맛

-우리 모두가 주님의 애제자(愛弟子)이다-

 

 

“수사님, 여기 수도원에서 평생 무슨 맛으로 살아갑니까?”

간혹 들었던 질문입니다. 아마도 죽는 그날까지 여기 수도원에서 정주하다 때가 되면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歸家)할 것입니다. 살아온 날보다 점차 짧아지는 살 날입니다. 누가 다시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지체없이 대답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참맛에 삽니다!”

 

이번 성탄을 지내면서 저를 사로잡은 고백은 둘입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싶은 희망 때문에 오래 살고 싶다.”

“마지막 임종시 단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더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음일 것 같다는 예감이다.”

 

하루하루 예수님을 사랑하여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을 살고 싶음은 참으로 믿는 이들의 궁극의 갈망일 것입니다. 이미 예전에 써놓고 애송했던 자작시 두편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집니다. 바로 주님과 사랑의 일치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시입니다. 무려 26년전 수도원 배경의 하늘과 불암산을 바라보며 주님과 저의 사랑의 일치를 소망하며 고백한 “하늘과 산”이란 시입니다. 

 

“하늘있어 산이 좋고

 산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1997.2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상호보완의 사랑의 일치 관계를 노래한 시입니다. 아마 불암산 기슭 요셉수도원에 35년동안 정주하면서 가장 많이 바라본 하루에도 수없이 바라본 하늘과 산이요 그때마다 자주 외웠던 자작 애송시입니다.

 

“밖으로는 山, 

 천년만년 임기다리는 정주의 山

 안으로는 江, 

 천년만년 임향해 맑게 흐르는 강

 山속의 江”-1998.1.27.

 

일편단심 산처럼, 강처럼, 산속의 강처럼, 주님 향한 사랑을 고백한 “산과 강”이라는 참 짧은 자작 애송시이자 베네딕도회 수도영성을 상징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두편 모두가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사랑의 일치를 소망하며 읽는 시입니다. 

 

이런 사랑의 대가(大家)이자 사랑의 달인(達人)들이 우리 가톨릭교회의 성인들입니다. 주님께 대한 열렬하고 한결같은 사랑이야말로 성덕(聖德)의 잣대가 됩니다. 엊그제 주님 성탄 대축일 바로 다음날 어제는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의 천상탄일이었고, 오늘은 사랑의 사도, 주님의 애제자라 일컫는 성 요한 사도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애제자라 지칭하는 요한은 우리 모두의 소망을 반영하는 사도이기에 우리 역시 하나하나 모두가 주님의 애제자라 할 수 있습니다. 애제자 요한이 상징하는바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이들은 어느 공동체에나 숨겨져 있기 마련이요, 이런 애제자들 덕분에 유지되는 교회공동체입니다. 열린 눈을 지닌 이들은 이런 애제자들을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애제자 답게 살아갑시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후 열두 사도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요한은 6년경 태어나 100년경 선종했다하니 무려 94년동안 장수를 누렸던, 사도들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성인입니다. 요한은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 이름 뜻대로 참으로 주님과 날로 깊은 사랑을 나누며 은혜로운 삶을 살았던 사도입니다. 예수님곁에서 늘 성모님과 함께 했던 사도 요한이었습니다. 십자가 예수님께서 두분께 하신 말씀도 기억할 것입니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딸)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애제자인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때부터 그 애제자가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다 합니다. 주님의 애제자인 우리 역시 주님의 당부에 평생 성모님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어머니 은혜” 노래를 “성모님 은혜”로 바꿔 부르곤 합니다. 한번 불러보셔요, 자꾸 부르고 싶을만큼 좋습니다.

 

“높고높은 하늘이라, 말들하지만 나는나는 높은게 또 하나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성모님 은혜, 푸른하늘 저보다도 높은 것 같애.

 

 넓고넓은 바다라고 말들하지만, 나는나는 넓은게 또 하나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성모님 은혜, 푸른바다 저보다도 넓은 것 같애.”

 

요한복음, 요한 서신, 요한 계시록을 쓰며 96세까지 장수했던 사도 요한은 너무 노쇠하여 제대로 설교를 할 수 없어 항상 신도들의 부축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한이 매일 “자녀들이여, 서로 사랑하십시오.”반복하는 것에 대해 신도들이 불평을 하자 요한은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고, 이것만 지키면 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요, 사랑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 대답하였다 합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사랑의 사도”불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에 길이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날로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면 오래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요! 살아있는 동안 주님을, 이웃을 더욱 사랑하라 주어지는 하루하루의 날들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인생인데 미워하고 차별하고 화내고 큰 소리치고 싸우면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함은 너무 어리석고 억울하고 허망한 일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애제자 사도 요한의 뛰어난 사랑의 열정은 수제자 베드로를 능가합니다. 빈무덤을 향해 달릴 때도 베드로보다 앞섰고, 무덤에 도착해서도 겸손한 사랑의 사도 요한은 수제자 베드로 다음에 무덤에 들어섭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고, 이런 장면을 일별하는 순간, 애제자는 전광석화 “보고 믿었다.”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순간 체험한 것입니다.

 

구유와 십자가, 그리고 이어지는 빈무덤, 잘 개켜져 있는 수건과 아마포, 퍼즐이 순간 완성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직감했음이 분명합니다. 모세가 하느님을 뵙고 나올 때 너무 눈부신 얼굴빛에 너울을 썻듯이 평생 인성(人性)의 너울을 쓰고 지냈을 주님은 이제 너울(수건)을 벗으시고 신성(神性) 그대로 아버지를 뵙게 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은 어디에?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로 부활한 것입니다. 그러니 공동체를 이루는 형제들 하나하나의 얼굴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됩니다. 얼마나 심오하고 은혜로운 진리인지요!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 사랑은 구체적입니다. 요한 사도가 구체적 주님 체험을 면면히 계승하고 있는 사도적 교회요, 우리는 평생 미사전례를 통해 사도 요한의 주님 체험에 참여합니다. 오늘 요한1서 말씀은 그대로 사도 요한의 강론입니다.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생생한 체험의 내용들입니다. 아마도 96세 노령에도 생생했을 다음 고백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심금을 울리는 강론입니다. 영지주의 이원론자들의 이단들을 침묵케 한 참 장쾌하고 통쾌한 강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생명을 증언하고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이를 선포하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그 아드님이신 예수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과 나누는 친교의 사랑이, 충만한 기쁨이 우리를 더욱 주님의 애제자로 만들고, 주님을 사랑하는 참맛으로, 참기쁨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내리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쏟아진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시편97,1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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