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 교회 공동체 -하느님의 참 좋은 치유와 구원의 선물-2023.12.31.주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3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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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1.주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집회3,2-6.12-14 콜로3,12-21 루카2,22-40

 

 

 

성가정 교회 공동체

-하느님의 참 좋은 치유와 구원의 선물-

 

 

 

오늘은 2023년12월31일 마지막 날이자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2023년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시작하여 2023년12월31일 '성가정 축일'로 한해를 마감하니 감개무량합니다. 참 놀랍고 감사한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1.1일부터 12.31일까지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한결같이 밤12-1시 사이에 일어나 1-4시까지 매일 강론을 써냈다는 것입니다. 참 좋은 기적같은 은총의 선물 강론에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 영광을 드리고 싶습니다. 1년 365일을 산것이 아니라 '영원한 오늘'의 '하루'만 산 느낌입니다.

 

불암산(佛巖山) 정상에 올라가, “하느님 만세!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만세!”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참 아름답고 고마운 성가정 축일입니다. 바로 제대앞에 아름답게 설치된 소박한 성탄구유 장식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물론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더 나아가 하나의 인류 가정 성 가정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싶습니다. 오늘 아침성무일도시 노래한 찬미가와 너무 잘 어울리는 제대앞 성가정 모습입니다.

 

“나자렛 오막살이 순박한 예배, 얼마나 감미로운 기억일런가.

 나자렛 예수님의 고요한 생활, 그생활 기억하며 노래들하세.”

 

강론준비중 이어지는 5절까지 내용을 읽어보니 정말 깊고 아름다웠습니다. 성가정 공동체의 진수를 만난 듯 했습니다. 바로 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야 말로 모든 교회 공동체의 원형임을 깨닫습니다. 흡사 혼돈에 빠진 세상 바다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노아의 방주”같은 성가정 교회 공동체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은 얼마나 흥겨웠는지요! 오늘 끊임없는 노래기도로 바치고 싶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자 얼마나 행복되리”

 

그러니 주님의 집, 성전에서 드리는 미사공동전례는 얼마나 행복된지요! 삭막한 인생 광야에 오아시스같은 성가정 공동체를 이뤄주는 미사전례은총입니다. 공동체의 보금자리 품을 떠나선 살 수 없는 인간입니다. 공동체의 기초가 가정공동체요, 사람들이 날로 거칠어지고 사악해 지는 근본적 이유는 보금자리 가정 공동체의 파괴에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많이 가난했지만 가정집이 있었고 집에는 어김없이 어머니의 따뜻한 눈길이, 손길이, 품이 있었습니다. 가정 공동체가 붕괴되어 가는 작금의 시대에 하느님께서 교회는 물론 온 인류에게 주신 참 좋은 선물이 성가정 교회 공동체입니다. 온 인류를 품에 안아야할 성가정 교회 공동체입니다. 우리 요셉 수도 가정 공동체만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품에 안고 있는지요! 얼마전 스크랩한 두 기사내용을 소개합니다.

 

“가난의 늪에 빠진 한국 노인들. 한국 노인 빈곤율이 여전히 경제협력 개발기구 오이시디 회원국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66살 노인 10명중 4명이 빈곤 상태였고, 나이가 많을수록 빈곤율도 더 높았다.”

 

“국민 10명중 3명이 ‘나는 고독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설문 조사에서 답했다. ‘가족-친척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채 홀로 살다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시간이 흐른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되는 고독사가 남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사회가, 나라가 성가정 역할을 해야 할 시대가 도래한 것이요, 우리 가톨릭 교회가 성가정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줘야할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제가 개탄하고 혐오하는 우리의 병든 사회의 단면은 반려견들보다 대접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성가정교회공동체에 반려견들도 속하지 않는가 하는 참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귀여운 아기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반려견들이 있다는 현실이 몹시 역겹고 불쾌합니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하지 않을까요? 얼마전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읽은 두 말마디에 감동했습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고 교회는 어머니이시니, 우리는 형제들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인데 이제 교회는 명실공히 온 인류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할 시대에 돌입한 듯 합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삼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하느님을 아버지로 삼을수 없다.”

성 치프리아누스의 말씀인데 이젠 모든 인류가 교회를 어머니로 삼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삼고 살아야할 시대에 돌입한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고 교회는 어머니이며 우리는 모두 한 성가정교회공동체에 속한 형제자매들입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 어머니 성가정 교회 공동체인지요! 그렇다면 참 좋은 성가정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하느님 중심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입니다.

서로 좋아서, 마음이 맞아서, 성향이 같아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중심이 같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몇날은 살 수 있어도 평생 하느님 중심없이 살아가기는 불가능합니다. 바로 성가정 교회 공동체의 모범인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공동체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 복음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도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그 아드님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예루살렘성전을 찾았으니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바로 하느님 중심 자리에서 만난 시메온과 안나입니다. 시메온이 마리아 성모님에 대한 예언이 섬찍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할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인지요! 결코 온실속의 안락하고 편안한 온실같은 성가정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자 환상입니다. 문제없는 이상적 유토피아 공동체가 아니요 속된말로 참 팔자사나운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치유와 구원이 되는지요! 고통과 시련중인 성가정 교회 공동체의 바로 그중심 자리에 성모님이, 예수님이 계시고 바로 거기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러니 일치의 중심인 하느님을 향한 공동전례기도는 필수입니다. 기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이 비로소 성가정교회 공동체를 마련해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니 하느님의 총애 덕분입니다. 

 

둘째, 사랑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입니다.

오늘 제2독서 콜로새서의 아름다운 말씀에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성가정 교회 공동체 성립을 위한 대헌장같습니다. 말그대로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리나오는 동정, 호의, 겸손, 온유, 인내를 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와 사랑입니다.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는 것입니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그리고 평화와 감사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정, 호의, 겸손, 온유, 인내, 용서, 평화, 감사 등 참 좋은 모든 덕목이 사랑안에 다 수렴됨을 봅니다. 

 

새삼 사랑도 선택이자 부단한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결코 사랑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는 값싼 은총의 선물이 아니라 은총과 더불어 주님 “사랑의 전사”로서 분투의 노력을 다한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한결같은 사랑의 훈련에 결코 좌절함이 없도록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끝까지 온힘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서로의 구체적 관계에 충실한 성가정 교회 공동체입니다.

최고의 그러나 미완의 예술작품이 공동체요, 공동체는 관계의 예술입니다. 부부간, 부모와 자녀간, 노부모와의 관계에 깨어 섬세하게 응답해야 함을 봅니다. 바오로 사도의 지혜로운 조언을 통해 일방적인 권위적 사랑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쌍방향의 보완하는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고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부모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들의 기를 꺾을까 두렵습니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이며,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배려하는 사랑, 순종하는 사랑입니다. 새삼 순종의 사랑 역시 부단한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도대체 영성생활에 훈련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영성훈련의 열매가 자유요 마음의 순수입니다. 죽을때까지 계속될 사랑의 훈련에 지치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노부모를 대하는 집회서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가난의 늪에 빠진, 가난과 병마와 싸우는 불쌍한 한국 노인들에겐 더욱 그러합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지며,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한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비단 노부모뿐 아니라 사회 일반 노인들에 대한 자세도 이렇게 효성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어린 자녀들은 그대로 보고 배웁니다. 노부모한테 잘한 분들치고 잘못된 자녀들을 제가 본적이 없습니다. 정말 성가정 교회 공동체의 가슴의 품은 날로 넓어져 모든 인류를 품에 안아야 할 것입니다. 깊이 잘 들여다 보면 모두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둔 성가정 교회 공동체에 속한 형제자매들이니 말입니다.

 

어제의 신선한 충격도 잊지 못합니다. 2월달에 피정왔다가 다시 12월에 피정온 개신교 목사님입니다. 면담이지만 고백성사처럼 해달라기에 경청한 후 말씀처방전에 강복을 드렸고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복사본 책도 선물했습니다. 신자가 아니면서 미사신청을 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온세상, 온인류, 온피조물에 활짝 열려있는 위로와 구원, 치유의 “힐링(healing) 센터”와 같은 가톨릭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미사 참여보다 더 좋은 힐링도 없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전인적 치유의 구원과 더불어 이런 성가정 교회 공동체 건설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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