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연중 제1주간 목요일 1사무4,1ㄴ-11 마르1,40-45
행복하여라, 교회의 성사(聖事)로 치유받고 양육(養育)되는
-“우리 믿는 이들!”-
오늘 밤 꿈중에 묵상중 떠오른 강론 제목입니다. 연중시기 초반에 맞갖게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이 활발히 펼쳐집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의 공생애 첫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늘 새롭게 회개하여 임박한 하느님 나라를 살라는 가르침이자 깨우침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복음선포와 더불어 온갖 치유활동이 펼쳐집니다. 앞서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시몬의 장모와 많은 병자를 고쳐주신후 전도여행중 또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신 주님은 고맙게도 오늘 나병환자를 고쳐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똑같은 주님께서 오늘 미사전례를 통해 우리를 만나주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비단 전례가 아니더라도 참으로 간절히 주님을 찾는 이들을 만나 치유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어제 열심한 50대 자매들이 눈에 밟힙니다. 낮기도때부터 저녁 끝기도때까지 참 오랜시간 동안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몇 달전에 피정을 다녀간 인천쪽에 사는 분들인데 주님이 그리울 때 수도원 성전을 찾아 마냥 머물며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다 가는 분들입니다. 이중 한분의 며칠 전 보낸 메시지입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가도가도 또 가고 싶은 곳
어제는 꾸르실료 분단 모임이 있었는데
실컷 자랑했더니 다들 가자고 해서 6월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가도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이 ‘주님의 집’ 성전이며,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분이, 만나고 또 만나도 만나고 싶은 분이 주님입니다. 날마다 주님 보고 싶은 설레는 마음에 한밤중 잠깨어 쓰는 강론입니다. ‘가도가도’란 말마디를 보니 떠오르는 제 가장 사랑하는 짧은 자작 애송시 ‘하늘’이란 시입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1997.2
호수하니 윤동주 시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향수'의 시인 정지용 프란치스코의 '호수'란 시도 떠오릅니다.
“얼굴 하나야
손가락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 밖에”
이래서 주님 그리울 때 묵상중 저절로 눈을 감게 되나 봅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는 바로 우리 믿는 이들 모두를 상징합니다. 나병이 상징하는 바, 각자 지닌 다양하면서도 고유한 병을 상징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건강한 이도 의인도 없습니다. 나름대로 모두가 병자요 죄인입니다.
그러니 치유의 구원을 위해 찾을 분은 예수님 한분 뿐입니다. 왜 나병환자가 되었나? 물음 부질없는 답없는 질문입니다. 세상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원인은 몰라도 답은 압니다. 바로 답인 주님을 찾아 만나는 것이요, 이점에서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를 제대로 주님을 찾아 만났으니 그대로 믿음의 표현입니다.
“스승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 마음입니다. 바로 가엾이 여기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요 이런 마음을 지녀야 비로소 주님을 닮은 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가엾은 마음에 손을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는 깨끗하게 치유됩니다. 주님의 1.가엾이 여기는 마음, 2.따뜻한 스킨쉽, 3.능력의 말씀이 삼박자가 되어 나병환자의 믿음과 만나 일어난 치유의 기적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주님은 침묵을 당부했지만 치유받은 나병환자는 이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니 저절로 복음 선포자가 됩니다. 나병을 통해 주님을 만나 치유받았으니 나병 역시 전화위복의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나병이 없었다면 그 병자는 주님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며 삶도 깊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주님은 대중의 인기의 중심에 서기를 원치 않았기에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십니다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분께 모여들으니 새삼 예수님은 우리 모든 병든 이들의 삶의 중심임을 깨닫습니다. 눈만 열리면 바로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하늘이신 주님을 만나 치유받는 우리들이요 저절로 나오는 다음 감격의 고백일 것입니다.
“자리찾지도
자리탓하지도 않는다
그 어디든
뿌리내려
하늘 사랑 송이송이
꽃피어내는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한
바로 거기가 꽃자리 하늘나라이다.”
오늘 제1독서 사무엘상 이야기가 깊은 충격과 더불어 참 귀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줍니다. 필리스티아인들에 참패한 이스라엘은 보병 삼만이 쓰려졌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으니, 엘리 아들들의 죄로 인한 업보요 그대로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입니다. 탓할 것은 이스라엘 자신들이요 하느님이 아님을 처절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회개하여 내적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하느님의 계약 궤도 무력함을 깨닫습니다. 안으로부터 부패하여 무너지면 하느님은 물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진리를 배웁니다.
아마도 이런 패전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하느님을 떠나 부패했던 삶에 깊은 회개가 뒤따랐을 것입니다. 주님의 참된 치유의 구원은 회개와 더불어 시작됨을 봅니다. 복음의 나병환자도 이미 주님을 찾았을 때 회개와 믿음으로 준비된 깨끗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를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어, 오늘 지금 여기서 꽃자리 하늘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교회의 성사(聖事)로 양육(養育)되는 우리 믿는 이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