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의 예수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2024.1.15.연중 제2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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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5.연중 제2주간 월요일                                                             1사무15,16-23 마르2,18-22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의 예수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주님께 바라는 너희가 모두,

 굳세게 굳세게 마음들을 가져라.”(시편31,25)

 

밤마다 잠깨면 주님을 확인하듯 맨먼저 눈들어 확인하는 밤하늘 언제나 거기 그 자리의 북두칠성과 북극성입니다. 어제 면담성사중 한 자매와 나눴던 시가 생각납니다. 법정(法頂)스님이 극찬했던 시요, 어느 사제는 수페이지에 걸쳐 쓸 내용을 시에 담았다고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저 역시 참 좋아하는 시입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이런 분이 있으십니까? 저에겐 늘 저와 함께 계셔서 밤마다 매일강론을 쓰게 하는 예수님이 바로 그런분입니다. 끊임없이 그리움과 갈망의 대상인,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단식논쟁을 말끔히 정리해 주시는 예수님은 삶에서 무엇이 우선적인지 새롭게 상기시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의 분별의 잣대는 사람이나 사랑이 아닌, 단식 자체에 있음을 봅니다. 절대적 가치는 사랑뿐이요, 분별의 잣대는 사랑인데 이들은 단식을 그 잣대로 들이댑니다. 예수님의 명쾌한 답변으로 상황을 말끔히 정리해주십니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단식할 것이다.”

 

아무 때나 단식이 아니라 단식의 때가 있다는 것이요, 지금은 주님과 함께 기뻐해야할 축제의 때라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하는 축제인생을 고해인생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이지 단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어 주님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십니다. 구태의연한 사고를 참으로 유연하게 할 것을 바라십니다. 한마디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늘 새 포도주의 현실을 담기 위해 늘 새 부대의 마음이, 사고가 전제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이래야 꼰대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일일우일신(日新又日新), 끊임없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이요, 사랑이 분별의 잣대가 되어야 하는 일상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절대적 법은 사랑뿐이요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해서는 안됨을 배웁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분별의 잣대로 삼아야 함을 배웁니다. 

 

예수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셨을까 생각하면 답은 곧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평상시 예수님 공부가, 사랑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평생공부가 예수님 공부요 하느님 공부요 사랑공부입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로 고백할 수 있는 주 예수님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마침 그 자매와 나눈 “사랑”이란 오래전 제 자작시도 나눕니다.

 

“사랑은

 하느님 안에서

 제자리를 지켜내는

 거리를 견뎌내는

 고독의 능력이다

 지켜냄과 견뎌냄의 고독중에 

 순화되는 사랑

 깊어지는 사랑

 하나되는 사랑이다”-1997.3

 

27년 시이지만 여전히 애송하는 사랑이란 시입니다. 제자리를 지켜내는, 거리를 견뎌내는 사랑입니다. 결코 값싼 사랑이 아니라 늘 제자리를, 거리를 견뎌내는, 지켜내는, 버텨내는 고독한, 그러나 감미로운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분이 바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고백하는 주님이십니다.

 

삶은 선물이자 평생과제라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방심해선 안됩니다. 말그대로 죽어야 인생 졸업이요 죽어야 인생 제대입니다. 공부는, 영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한결같이 깨어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전사로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늘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하느님 중심으로 한결같은 삶을 살았어야 하는데 오늘 제1독에서 사울은 이점에 실패했습니다. 성소가 선물이자 평생 과제임을 잊었습니다. 사무엘을 통한 사울에 대한 하느님의 질책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였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그러니 깨어 늘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경청하는 겸손한 자세가, 순종의 자세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주님의  가르침이자 깨우침입니다. 새삼 하느님 중심의 삶에 늘 최선을 다해야 함을 배웁니다. 늘 예수님을 삶의 잣대로, 분별의 잣대로 삼고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며칠전 금요강론시 나눈 대목이 생각납니다.

 

“규칙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분은 우리가 따라야할 법이다. 성서에 의하면 법은 하느님의 선물로 백성들을 평화롭게 더불어 살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우리를 수고스런 우회로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표지판이다. 그것은 힘든 여정중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철로와 같다.”

 

살아 있는 하느님의 법인 예수님을 늘 삶의 잣대, 분별의 잣대로 삼아야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이야 말로 최종 분별의 잣대임을 깨닫습니다. 늘 우리를 깨어 당신께 귀기울이게 하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고백하는 주님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새 부대의 마음에 새 포도주의 영적 현실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고해인생중에도 빛나는 분별의 지혜, 분별의 사랑으로 축제인생을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시편50,23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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