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만세!” -오늘 지금 여기 지상(地上)에서 천국(天國)을 삽시다-2024.1.18.연중 제2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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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8.연중 제2주간 목요일                                                    1사무18,6-9;19,1-7 마르3,7-12

 

 

우리의 모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만세!”

-오늘 지금 여기 지상(地上)에서 천국(天國)을 삽시다-

 

 

여러 단상들로 오늘의 강론을 시작합니다. 수도원의 식사는 대부분 침묵중에 말씀을 들으며 이뤄집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들은 거룩한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깁니다. 수도규칙 독서중 마음에 새롭게 와닿은 다음 구절입니다.

 

“모든 이는 모든 일에 있어 규칙을 스승처럼 따를 것이며, 아무도 이것을 경솔하게 위반하지 말 것이다. 아무도 수도원 안에서 사사로운 마음의 뜻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성규3,7-8)

 

규칙을 스승처럼 따르라는 말씀이 참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잘 들여다보면 사랑의 규칙이요 규칙중의 규칙이, 영원히 살아 있는 규칙이, 우리 모두의 중심이신 주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규칙의 준수를 통해 사랑의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서 이런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오늘 새벽에 읽은 두 성인의 말씀도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현재의 교회는 미래의 교회가 생겨나기 전까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 것이며, 의로운 이들은 그 안에서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초기 교회는 영원한 본향을 늘 목말라하며 절제된 삶을 살아갔으며, 마음을 흩어놓는 온갖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와 내밀하게 하느님의 법을 날마다 묵상하면서 살았습니다. 이 시기를 기억하여 우리도 우리의 집을 떠나, 다시 말해 세상의 관심사들과 즐거움을 포기하고, 천막에 살아야 합니다.”-존자 베다

 

일상의 내 삶의 꽃자리에서 평범한 성인이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부터는 성인이 되어야 비로소 살 수 있는 날로 거칠고 험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성인의 삶입니다. 2024년 2월호 생활성서의 특집은 “옆집의 성인들”이었습니다. 사소한 일을 거룩하게 여기며 이웃의 아픔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우리 가까이 살고 있는 옆집 성인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몇해 전 누구나 옆집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교황 문헌을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즐겨 행하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성화되십시오.”

“성인이 되십시오.”

 

성인이 없다 탄식할 것이 아니라 내가 성인이 되는 것이 더 빠를 것이요 지혜로운 대책이 될 것입니다. 성인중의 성인이, 성인들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 예수님입니다. 어제 미사시 입당성가 61장도 새로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수는 없네. 이세상 부귀영화와 권세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 사랑이여,

 세상 즐거움 다-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어제 오랜만에 병상에서 일어나 공식 집무를 시작한 어느 정치인의 환한 얼굴로 수없이 고백했던 “새롭다”란 소박한 말마디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따라 닮아가는 성인들의 삶이라면 날로 새로워져 늘 새하늘과 새땅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즐겨 늘 자주 고백하는 고백기도중 일부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모두입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만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미사중 우리가 모시는 분과 똑같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혼신을 다한 사목현장을 만나는 기분입니다. 군중이 호숫가 예수님께 모여드니 새삼 세상 모두의 중심이 되신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도대체 이런 예수님이 부재한 인류요 세상이라면 그 어둠은 얼마나 짙겠는지요!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길을 잃어, 

방향을 잃어, 

목표를 잃어,

빛을 잃어, 

희망을 잃어, 

중심을 잃어, 

진리를 잃어, 

생명을 잃어 

 

무지와 죄악의 어둠중에 병들어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사람들입니다. 예나 이제나 반복되는 똑같은 악순환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길을 찾는, 방향을 찾는, 목표를 찾는, 희망을 찾는, 중심을 찾는, 진리를 찾는, 빛을 찾는 영혼의 근본적 욕구요, 이를 일거에 충족시켜 주실 분은 단 한 분 예수님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 하루 삶의 요약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병고에 시달리던 이들은 그분을 만나 치유를 받았고,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만 보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고백하며 달아납니다. 인기의 절정에 있지만 예수님은 이를 지극히 경계하십니다. 적대자들이 호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리기 때문이며, 군중들이 미몽에서 깨어나 참된 메시아이신 당신을 만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 없는 메시아가 얼마나 위험스러운지 깨달았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침묵을 신신당부합니다. 더러운 영들의 고백이 진짜가 아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백인대장의 고백을 통해 입증됩니다. 감동적인 대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하고 말하였다.”(마르16,39)

 

이처럼 우리가 고백하는 메시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 파스카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분투의 노력을 다하시는 파스카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영원한 감동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예표와 같은 제1독서 사무엘 상권에서 고군분투하는 다윗의 삶도 인상적입니다. 충천하는 인기와 더불어 사울의 정적으로 부각되니 그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흡사 복음의 예수님을 연상케 합니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네.”

 

사울은 강력한 라이벌로 부각한 다윗에게 쫓기는 기분이었을 것이며 그의 시기와 질투도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올랐을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최선을 다한 다윗 곁에는 하느님이 예비하신 사울의 아들 요나단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구원 섭리가 참 오묘합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길이 회자되는 요나단과 다윗의 아름다운 우정입니다.

 

적대자들의 끊임없는 생명의 위협중에도 그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보호하에 최선을 다하는 예수님과 다윗의 삶이 감동적입니다. 평생 고난과 시련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힘차게 살아가신 두분 예수님과 다윗과 모든 성인들이 우리 삶의 귀감이 됩니다. 온실속의 화초같은 삶을, 평탄한 꽃길같은 삶을 살았던 성인은 결코 없었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다시 한 번 영적 전의(戰意)를 새로이 하고 거칠고 험한 광야(廣野) 지상 삶중에도 주님과 함께 천국(天國)을 사시기 바랍니다. 바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고백기도 마지막 두연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여기 주님의 집 교회에서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주님의 가정 교회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형제들과 더불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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