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6.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신명4,32-34.39-40 로마8,14-17 마태28,16-20
복되신 삼위일체 하느님
-늘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은 영광받으소서”(묵시1,8)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기도가 무엇일까요? 날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바치는 성호경 기도입니다. 이 기도와 더불어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일치도 알게 모르게 날로 깊어집니다. 미사 역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과 함께” 삼위일체 하느님 고백의 인사로 시작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바칠 수 있는, 온몸에 삼위일체 하느님을 각인하며 바치는 이 짧고 강력한 기도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된 이후 얼마나 많이 바쳐온 자랑스러운 성호경인지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람임을, 우리 신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기도요, 우리 삶의 방패이자 하느님과의 일치를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는 성호경 하나로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끄럼없이 성호경을 그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는 기도를 바치십시오! 저 역시 날마다 기상하자마자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 성호경과 더불어 만세칠창을 바치며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는 만세삼창에 이어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성 요셉 수도원 만세!”
이어지는 만세사창, 도합 만세칠창을 바치기 시작한지 9개월이 됩니다. 작년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인 8월15일부터 시작됐고 살아 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기도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오늘 성무일도시 아침 찬미가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성삼의 그신비는 깊고도깊어 누구도 알아들을 길이없으니
하늘의 시민들은 성삼뵈옵고 드높이 노래하며 기뻐하도다”
하늘의 시민들인 우리 역시 믿음의 눈으로 성삼의 하느니 뵈오며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 안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어렵다고 하는데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온누리가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해 있다는,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고백이 삼위일체 하느님 고백입니다.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은 공동체 하느님이요, 우리 누구나 만날 수 있는 활짝 열려있는 개방의 하느님이요, 성령안에서 성자의 인도하에 성부를 향한 인생 여정을 살게하는 하느님입니다. 그러니 삼위일체 하느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우리들이요, 이렇게 살아있다는 자체가 바로 살아 있는 삼위일체 하느님 체험인 것입니다.
체험으로 이해하여야 할 삼위일체 교리를 머리로 이해하려니 그리도 어려운 것입니다. 죽은 화석같은 삼위일체 교리가 아니라 이미 우리와 하나되어 살고 계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세 개의 말씀의 배치가 참 고맙습니다. 모두가 생생한 체험적 고백입니다.
첫째, 살아 계신 성부 하느님을 체험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1독서 신명기의 모세는 당대의 백성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불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당대의 백성들에게는 정말 실감나는 살아계신 하느님 체험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당대의 백성들의 체험을 오늘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기에 이렇게 장구한 세월 기적같이 살아온 한민족입니다. 곳곳에 순교성지들 가득한 나라, 순교성인 숫자로도 손꼽힐 순위의 대한민국이요, 하느님을 찾는 구도적 열정은 산티아고 순례지에서도 손꼽힐 순위의 대한민국 사람들입니다. “오늘”부터 하느님 신앙을 새롭게 하여 살아가라는 모세의 말씀이 신선한 충격입니다.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강조되는 바,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오늘입니다. 오늘 바로 이런 하느님을 마음 깊이 새기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며 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하느님을, 계명들을 잊고 살아온 우리들이요 바로 이것이 재앙의 근원입니다. 늘 새롭게 바로 “오늘” 체험하고 살아야 할 성부 하느님입니다.
둘째, 살아 계신 성자 예수님을 체험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당대의 열한 제자는 물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자 예수님 말씀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성부 하느님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신명기의 모세와 흡사합니다. 모세를 통해 성부 하느님을 새롭게 체험했듯이, 우리는 성자 예수님을 통해 성부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성부 하느님을 환히 드러내는 성자 예수님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성자 예수님이심을 잊지 맙시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성자 예수님의 이 약속 말씀은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정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날로 깊어지는 일치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성자 예수님 역시 모세처럼 신신당부하는 바, 우리가 명령받은 바를 잘 배워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 계명의 실천입니다. 계명의 실천, 말씀의 실천을 통해 풍요로운 하느님 체험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셋째,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 사랑의 성령입니다. 늘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고 인도하시고 깨달음을 주시고 자유롭게 하시는 참 고마운 성령입니다. 성령을 통해 일하시는 성부 하느님, 성자 예수님입니다. 바오로의 가르침이 참 고맙습니다. 한숨에 읽혀지는 주님의 말씀이요 우리의 복된 신원을 깨닫게 하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상속자입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공동상속자로 만드는 성령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값싼 영광, 값싼 은총, 값싼 구원은 없습니다. 그분의 영광에,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 성령의 인도하에 사는 것, 그리고 주어진 계명을 질 지키며 책임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이자 청소년 주일입니다. 참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람들은 하느님을 닮아 그 영혼은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한 청춘의 청소년입니다. 성서 곳곳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흔적이 널려 있습니다. 신비가들은 물론 우리에게도 삼위일체 하느님 교리,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아니 한없는 위로와 평화를 주는 복되신 삼위일체 하느님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충만한 행복을 살 수 있음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은총이요, 이렇게 사랑 중에 살고 있음이 삼위일체 하느님 체험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사랑의 성령 안에서 성자 예수님을 따라 성부 하느님께 이르는 “하닮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구원의 약속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