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5.수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1217-1274) 기념일 

이사10,5-7.13-16 마태11,25-27

 

 

 

겸손의 여정

-너 자신을 알라-

 

 

 

새벽기도차 성전에 들어서는 순간 그윽한 향기에 눈을 들어 보니 고 이바오로 수사님의 빈자리였습니다. 빈자리에 놓은 '백합화-국화 꽃다발'에서 나는 그윽한 향기였습니다. 수사님 떠나신 그 빈자리에서 발하는 ‘겸손의 향기’를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께 어서 와 조배드리세.”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아침 성무일도 초대송도 마음에 위로와 평화를 주었습니다. 실로 겸손할수록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께 가까워져 지혜로운 사람이 됨을 깨닫습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3,19).

 

말씀을 실감한 어제 고 이바오로 수사님의 장례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장례미사후 화장터에서 화장하여 수도원에 돌아와 산골散骨할 때 참으로 숙연하고 겸허한 분위기였습니다. 산골 역시 수도자답게 수도원내 하느님과 수도형제들만이 아는 숨겨진 깊고 그윽한 ‘가난하고 겸손의 빈터’에 했습니다.

 

“+무덤에 묻히셨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으니 이곳에 묻히는 교우 이바오로 수사도 부활하게 하시어 성인들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산골후 기도를 바치며,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시편을 되뇌이며 주님의 위로를 받으니 더욱 겸허해지는 마음이었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흙에 어원한 겸손이요 사람입니다. 흙같이 겸손해야 참으로 사람입니다. 겸손의 아름다움이요 성덕과 영성의 잣대도 겸손입니다. 그러니 믿는 이들의 삶은 겸손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지난 겨울에 피정을 다녀간 어느 자매가 보내준 바오로 수사님 사진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습니다. 수도원 앞뜰 정원에서 노니는 개들을 사랑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바오로 수사님의 겸허한 모습이 참으로 마음 편안하게 했습니다. 한생애 욕심없이 겸허하게 사셨던 분입니다. 

 

겸손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두 일화입니다. 얼마전 70대 후반의 자주 보아오던 모습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동안 웬지 부자연스럽고 불편해 보였는데 말입니다. 

 

아, 바로 검정으로 염색해오던 머리칼을 염색하지 않고 본디 그대로 놔두니 반백半白의 휘날리는 머리칼이 참 멋있고 자연스러웠습니다. 가을의 단풍처럼 무욕無慾의 가을 인생에 참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또한 순리에 따른 겸손한 모습이겠습니다. 가을 단풍 계절의 나이에 봄 꽃의 계절을 탐한다면 참 꼴불견의 추醜한 모습일 것입니다.

 

겸손은 지혜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자가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바로 지혜는 눈과 같고 창窓과 같습니다. 겸손한 자만이 이런 눈과 창을 지닙니다. ‘용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찍는다’는 화룡정점畵龍點睛이란 사자성어도 생각납니다. 

 

사람에 눈이 없다면, 방에 창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제의방과 제 집무실 안에 있는 핀란드 흰 올빼미 도자기가 빛나는 것은 그 눈동자 때문입니다. 커다란 몸뚱이만 있고 눈이 없다면 존재 가치의 상실일 것입니다. 글도 삶도 말도 그렇습니다. 무지에 눈먼 참으로 답답하고 공허空虛하게 느껴지는 눈없는, 창없는 글이나 말, 삶도 많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 삶과 글과 말에 눈을, 창을 주는 것이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겸손이 없는 사람은 그대로 ‘지혜의 눈’이 없는, ‘지혜의 창’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의 아시리아가 상징하는 바 무지에 눈먼 자기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로 시작되어 하느님을 잊고 자기가 주어가 된 오만한 아시리아는 바로 무지의 교만한 자를 상징합니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자만하는 아시리아를 벌하시는 하느님이요, 마침내 오만으로 멸망하는 아시리아입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뽑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리라.”

 

자기를 몰라 무지로 인한 주객전도, 적반하장, 배은망덕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여 참으로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는 자기 ‘삶의 문장’에 결코 나를 주어로 하지 않고 하느님을 주어로 합니다. 내가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수도원에 보내셨다 고백합니다. 

 

그러니 참으로 겸손하여 지혜로운 자가 밝은 마음의 눈, 마음의 창을 지닌 자입니다. 지혜로 마음의 눈이 밝고 맑을 때 온몸도 환해질 것이고 마음의 방도 빛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겸손으로 마음의 눈이, 마음의 창이 활짝 열려 감사와 찬양기도를 바치는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바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마음의 눈밝고 마음의 창밝은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철부지들이 상징하는 바, 겸손으로 지혜의 눈, 지혜의 창이 활짝 열린 이들이요, 바로 예수님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대우大愚의 사람들같으나 역설적으로 대지大智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역시 겸손의 여정을 통해 주님과 일치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주님과 더불어 나에 대한 앎도 깊어져 무지에서 벗어나 참으로 지혜로운 ‘참나眞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13세기 프란치스코회의 위대한 주교학자, ‘세라핌 박사(Doctor Seraphicus)’라는 칭호의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당대 도미니코회의 위대한 학자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라는 칭호의 토마스 아퀴나스 학자와 쌍벽을 이루었던 참으로 두분 다 지극히 겸손하고 거룩한 성인이었습니다. 성 보나벤투라의 겸손한 일화도 인상적입니다.

 

성인이 로마로의 여행중 교황 사절이 추기경 임명 칙서를 가지고 왔을 때 마침 성인은 식사후 세기중이었다 합니다. 성인은 설거지를 다 마칠 때까지 추기경의 모자를 나무에 걸어두라고 명했다는 일화로 바로 성직에 대한 욕심의 전무함을 통해 참으로 초연하고 겸손하신 성인의 풍모風貌를 대하는 느낌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참으로 우리 모두 참 밝고 맑은 마음의 눈, 마음의 창을 지닌 겸자謙者와 현자賢者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아멘.

 

 

 

 

 

 

 

 

 

 

  • ?
    고안젤로 2020.07.15 07:11
    "우리 삶과 글과 말에 눈을, 창을 주는 것이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겸손이 없는 사람은 그대로 ‘지혜의 눈’이 없는, ‘지혜의 창’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 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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