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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7. 연중 제3주간 토요일                                                                     2사무12,1-7ㄷ.10-17 마르4,35-41



감사하라, 죄도, 약함도 은총이다

-빛과 어둠-



제 집무실이 어제 한 수도형제의 창의적 발상의 사랑의 표현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그대로 회개를 통한 내적혁명을, 내적변화를 상징합니다. 제 집무실은 기도, 묵상, 강론 준비및 집필, 독서, 공부, 면담, 고해성사, 손님접대, 10명 안팎의 소규모 피정강의, 운동, 휴식등 전천후 다목적용으로 쓰입니다. 하느님과 이웃과 내 자신에게 활짝 열려있는 환대의 공간이 제 집무실입니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만, 누구나 다윗의 대죄가 무엇인지 알지만 어제는 오늘 제1독서 나탄이 다윗을 꾸짖는 장면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일입니까? 정말 승승장구 잘 나가던 어둠은 추호도 없었던 빛만이 가득했던 다윗의 삶이 아닙니까?


그 누구도 다윗이 이런 죄를 지으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여 순간 ‘아, 죄도 은총이구나!’하는 깨달음이 빛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도 은총입니다. 죄를 지어도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죄에 좌절하지 말고 회심을 통해 곧장 일어서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라는 것입니다.


죄가 어둠이라면 은총은 빛입니다. 빛과 어둠, 선과 악이 점철된 우리 인생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안에서 빛과 어둠, 선과 악이 어울러지면서 깊어지는 인생입니다. 죄의 회개를 통해 더욱 깊어지는 우리 인생입니다. 


천연색 사진보다 흑백사진이 깊어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천연색 사진 같은 화려한 인생이 아니라 깊이 들여다 보면 흑백사진 같은 깊은 인생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삶의 깊이이지 삶의 넓이가 아닙니다. 빛만의 순탄대로의 삶만으로 인생은 결코 깊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삶의 넓이가 아닌 깊이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빛과 어둠, 선과 악이 교차하면서 회개의 여정을 통해 깊어지는 우리 삶입니다. 어둠과 선연히 대비되는 은총의 빛입니다. 죄의 어둠이 없으면 은총도 알아보기 힘듭니다. 어둠의 죄있어 빛의 은총이요, 빛의 은총있어 어둠의 죄입니다. 회개의 여정을 통해 점점 커지는 은총의 빛이요 점점 작아지는 죄의 어둠입니다.


하여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합니다. 사진만 아니라 빛과 어둠이 조화된, 렘브란트의 어둠을 배경한 빛의 그림을 보노라면 그림도 빛의 예술임을 깨닫게 됩니다. 빛과 어둠이 어울러져 하느님 은총의 빛을 깨닫게 하는 렘브란트의 그림은 그대로 깊고 깊은 복음서입니다.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이는 죄없는 의인이 아니라 회개한 죄인입니다. 다윗이 죄와 회개의 과정이 없었다면 결코 하느님 자비의 깊이를 몰랐을 것이며 삶도 깊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죄와 회개는 우리 죄인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이 되는지요. 


회개한 죄인의 경우는 다윗뿐만이 아닙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은총입니다. 은총의 빛입니다. 삶은 참으로 깊어지고 하느님의 자비는 넘치도록 드러납니다. 베드로, 바오로, 막달라 마리아, 아오스팅, 무수한 성인들의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무죄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있습니다. 죄의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갑니다. 죄없이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죄를 지으라는 말이 아니라 죄에 좌절하지 말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회개의 디딤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죄의 유혹에 떨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누가 다윗이 이런 대죄를 지으리라 생각했는지요. 그러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의 인간, 바로 이게 사람입니다. 바세바를 차지하기 위해 다윗의 저지른 악행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말그대로 천인공로할 대죄입니다. 온통 눈과 귀가 되어 모두를 보시고 모두를 들으시는 하느님 눈에 완전범죄는 불가능합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즉각적인 회개에 있습니다. 나탄의 질책에 다윗의 즉각적인 회개입니다. 권력자의 죄를 질타하는 나탄이야 말로 예언자의 모범입니다. 나탄이 무자비한 부자가 가난한 자의 하나뿐인 암양을 잡아 손님을 접대한 경우를 예로 들면서 다윗의 심중을 탐색했을 때 다윗의 반응입니다.


“주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그는 그런 짓을 하고 동정심도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


자기를 빗댄 예화임을 아직도 알아 채지 못한 다윗에게 즉각적인 나탄의 지적입니다. 죄질로 말하면 예화의 부자는 다윗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 새발의 피입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에 이어 그의 악행에 대한 결과가 어떠할지 하느님의 계획을 길게 나열하며 마지막으로 “너는 그 짓을 은밀하게 하였지만, 나는 이 일을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할 것이다.” 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죄의 결과가 너무 끔찍합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다음 죄의 고백에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정말 하느님이 바라시는 바 이런 회개입니다. 공동체 형제들간의 관계에서도 구구한 변명이나 핑계보다는,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잘못했다’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회개의 표현이 백배 낫고 효과적입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가 “내가 잘못했다(I was wrong)!”의 명수였다는 데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죄의 회개를 통해 용서받는 다윗이지만 죄에 대한 보속은 남았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라면 하느님의 일은 용서하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사람이 죄짓이 않으면 하느님은 실업자(?)가 되신다 할까요. 


죄를 지을 때 즉각적으로 하느님 자비에 의탁하고 회개함이 참으로 지혜로운 삶의 첩경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우리 삶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여 평생성사인 성체성사와 더불어 화해성사가 있습니다.


다윗의 죄를 지어 회개했기에 놀라운 하느님 자비가 계시 되었고 모든 죄인들에게는 놀라운 선물, 다윗 통회 시편 51장을 선물 받게 되었습니다. 시편 51장을 1 절은 다윗의 시, 2절은 ‘그가 밧 세바와 정을 통한 뒤 예언자 나탄이 그에게 왔을 때’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세세대대 만천하에 공개된 다윗의 죄와 회개가 죄인들에겐 경각심을 갖게하고 한없는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도 51장 시편의 일부입니다. 다윗의 죄와 회개를 통해 이런 불후의 시편을 얻게 되었으니 정말 죄도 큰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죄와 더불어 오늘 복음을 통해 약함도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약함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강함으로 보완하는 믿음의 전기轉機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바로 믿음 약한 우리 인간들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풍랑의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이들은 결코 자신의 약함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호수 한가운데 항해여정중인 제자들의 모습은 세상 바다 한 복판 항해 여정 중인 우리 교회공동체와, 우리 각자 삶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풍랑의 시련을 통해 자신들의 약함과 구원을 체험하면서 깊어지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애당초 타고난 믿음은 없습니다. 이런 주님의 구원체험을 통해, 회심체험을 통해 깊어지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일련의 제자들과 주님과의 주고 받는 대화가 우리에게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제자들;“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습니까?

 예수님;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호수를 권능의 말씀으로 고요케 하시고 제자들의 믿음 약함을 꾸짖는 주님이십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제자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제자들에게 화두처럼 주어진 이분은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내외적 풍랑을 고요케 하시고 약한 믿음을 굳세게 하십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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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젤로 2018.01.27 09:45
    주님 저희가 죄에서 이겨낼수있는 강건한 믿음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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