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8. 주님 공현 후 목요일(뉴튼수도원 59일째)

                                                                                                                       1요한4,19-5,4 루카4,14-22ㄱ

 

                                                                                       사랑의 공동체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뉴튼수도원에서 뚜렷이 터득한 두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의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이요, 사랑의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기쁨입니다. 또 '사랑'이 강론의 주제입니다. 주님께 큰 깨달음을 안겨준 복음의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근거로 '사랑의 출사표(出師表)' '사랑의 오도송(悟道頌)'으로 강론 제목을 할까 하다가 '사랑의 공동체'로 정했습니다. 계속되는 성탄 축제입니다. 

 

인류의 '큰 빛'으로, '큰 사랑'으로, '큰 사랑의 빛'으로 탄생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탄생으로 인해 비로소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가 '의미의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공현 후 주간의 말씀 배치도 참 적절합니다. 사랑의 애제자 요한의 독서와 예수님이 주인공인 복음이 계속 짝을 이룹니다. 스승과 제자의 궁합이 기가 막히게 맞도록 배치된 말씀의 배열입니다.

 

어느 수도공동체를 묵상하든 우선 떠오르는 것은 하느님의 한량없이 넓고 깊고 큰 자비심입니다. 하늘같이, 바다같이, 크고 넓고 깊은 하느님의 대자대비의 사랑입니다. 

 

"당신은 바다에다 길을 내시고, 많고 많은 물에다 작은 길을 내시어도,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나이다.“(시편77,20).

 

눈에 보이진 않지만 주님의 자비의 무수한 발자국들입니다. 한 하늘 아래, 한 공기를 숨쉬며 살아가듯, 이런 하느님 자비의 품 안에서 하느님 자비를 숨쉬며 살아가는 수도형제자매들입니다. 잘 살아서 구원이 아니라 이런 하느님 자비로 구원입니다. 서로 좋아서 제 힘으로 함께 사는 수도공동체가 아닙니다. 좋아서 제 힘으로 살기로 하면 함께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이요, 이런 깨달음이 겸손입니다.

 

하여 '수도생활은 공동생활이고, 수도생활의 어려움은 공동생활에 있고, 함께 사는 자체가 '도를 닦는(修道)'것이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함께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이다.'라는 것이 바로 저의 지론입니다. 사랑에는 왕도도 첩경도 없습니다. 늘 날마다 새롭게 노력하고 배워 시작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거창하거나 비상한 사랑도 아닌 그저 판단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한없이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평범한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축하합니다. 수사님이 기도와 미사에 나오니 정말 좋네요.“

사랑은 용기입니다. 심신이 불편하여 어제 기도와 미사에 나오지 못한 형제가 반가워 미사 전 용기를 내어 축하의 악수를 하니 형제는 계면쩍은 듯 싱긋 웃었습니다. 미사 후 미사복사한 수사님에게 미소를 지으며 던진 덕담입니다.

"수사님이 미사 중 제일 많이 복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오후에는 수도형제에게 성물방에서 구입한 책을 선물하니 마음은 나를 듯 가벼웠습니다. 

 

며칠 전 사무엘 원장 신부님에게 한 말도 생각이 납니다.

"나에 대해 하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여기 수도원에 머무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그저 2.4일 서울발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뉴욕 공항에 태워다 주면 됩니다.“

이어 문득 떠오른 요한복음 말씀(13,1)을 제 식으로 바꾸보며 새롭게 뉴튼수도원에서의 얼마 안 남은 제 자리를 확인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신부는 뉴튼수도원을 떠날 날이 가까워진 것을 알고, 사랑하던 뉴튼수도형제들을 끝까지 사랑했다."

정말 이렇게 지내다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하지만 함께하는 것이 실질적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공동체나 그렇겠지만 수도원은 말 그대로 하느님이 주신 '자비의 시험장' '인내의 시험장'입니다. 매일매일 자비와 인내의 시험을 치르는 수도자들입니다. 바로 끊임없이 주입되는 하느님의 사랑이 이런 나와의 사랑 의 전쟁에 항구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여 우리의 유일한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사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사랑받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성무일도를 통해 끊임없이 주입되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사랑을 일깨웁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출사표가, 사랑의 오도송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아버지께 받은 사랑의 성령으로 충만한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영이 그분 위에 내리는 순간 한 눈에 들어온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 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평생 이 깨달음의 오도송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은 신선한 충격의 해방감으로 인해 예수님을 주시합니다. 바로 위 말씀은 우리에게 오늘 그대로 이루어졌고 우리 또한 이 말씀대로 자유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구원의 동사들로 이루어진 주님의 출사표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루카 복음에 자주 나오는 '오늘'이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느님께는 오직 '오늘'의 영원한 현재만 있기 때문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진 주님의 출사표입니다. 오늘 지금이 은혜로운 해요. 해방과 자유가 이 이뤄지는 결정적 구원의 시간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이 바로 형제 사랑의 샘솟는 원천입니다. 더욱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고 형제 사랑의 계명에 항구하게 하며 또 그렇게 힘겹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사랑으로 태어난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우리의 승리는 사랑의 승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바로 주님의 승리에 참여함으로 가능해진 우리의 승리입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패한 세상이요 이미 승리를 확보하고 싸우는 우리의 영적전쟁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세상을 이길 사랑의 힘, 믿음의 힘을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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