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과 겸손 -참여형과 은둔형-2015.1.15. 연중 제1주간 목요일(뉴튼수도원 66일째) 히브3,7-14 마르1,40-45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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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5. 연중 제1주간 목요일(뉴튼수도원 66일째)                             히브3,7-14 마르1,40-45

 

                                                                                        연민과 겸손

                                                                                   -참여형과 은둔형-

 

제 한평생 이렇게 뉴튼수도원에서 만큼 행복하게 지냈던 적은 없습니다. 제가 여기 뉴튼수도원에 와서 확실히 배운 두 가지 기쁨을 다시 나눕니다. 

 

'그때에 어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마르1,40ㄱ).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처럼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의 기쁨이요, 기도전 주님을 기다리는 사랑의 기쁨입니다. 미사나 기도가 시작되기 10분 전쯤, 미리 무릎을 꿇고 기다리거나 또는 성전 입구에서 서서(스타시오) 기다리며 성찰할 때 고요히 피어나는 기쁨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혜입니다. 제 시간에 맞춰 가거나 혹시 늦을 경우 불안 초조해 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나 영성적으로 백배 낫습니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가다보면 계속 시간에 질질 끌려다니는 여유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적 삶은 습관입니다. 이런 작은 실천이 영성생활의 튼튼한 토대가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실행할 수 있습니다. 비단 주님뿐 아니라 반가운 이와의 약속 때도 10분전 쯤 가서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릎을 꿇는 겸손을 통해 드러나는 믿음이요 이것이 진정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오늘 나병환자의 겸손이 감동적입니다. 나병환자는 바로 병든 우리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사실 영육으로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양상으로든 상처나 병을 지닌 자신을 아는 것이, 하여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예나 이제나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스승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무릎 꿇은 나병환자의 겸손한 청원의 기도입니다. 삶이 간절하고 진실할수록 기도 역시 짧고 순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무한한 연민의 사랑에서 나오는 주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우리의 무릎을 꿇는 겸손한 믿음과 주님의 연민의 사랑이 만날 때 치유의 기적입니다. 탓할 것은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겸손한 믿음의 부족입니다. 전화위복, 천형(天刑)이라는 나병이 주님을 만나 치유되니 천복(天福)이 되었습니다.

 

연민의 주님이시자 겸손한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요즘 마르꼬 복음에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외딴곳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연민의 사랑이 넘쳐 복음을 선포하고 질병을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일에 온 힘을 다한 후에는 꼭 외딴곳에 물러나시어 겸손히 기도하시며 관상적 휴식을 취하십니다. 참여형이자 은둔형인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아니 '참여의 활동'과 '은둔의 관상'은 영적 삶의 리듬임을 깨닫습니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도록 하여라.“

주님의 분별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연민의 사랑에서 나오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치유 받은 환자는 물론 주님께 미칠 부정적 일들을 염려한 주도면밀한 충고입니다. 치유 기적의 은혜를 입은 나병환자는 이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기 시작하니 비밀은 없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의 겸손한 은둔형의 면모가 잘 들어나는 대목입니다. 외딴곳에 은둔해 있을지라도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으니 결국 주님은 '세상의 중심'이 되어 버립니다. 저 역시 미국 뉴튼수도원 외딴곳에 머무르고 있지만 매일 강론을 써서 올리니 결국 '세상의 중심'이 된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인터넷의 기적이 놀랍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연민과 겸손, 참여와 은둔은 영적 삶의 리듬이며 우리의 완고함을 치유합니다. 하느님께는 언제나 '오늘'입니다. '그러니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우리는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히브3,13-14ㄱ). 

주님은 오늘도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안식처에서 완고함의 영적나병을 치유해주시어, 우리 모두 연민과 겸손의 사람으로 살게 해 주십니다.

 

"주님, 거룩한 잔치에서 천상 진미로 저희를 기르시니, 참생명을 주는 이 양식을 언제나 갈망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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