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 은총의 강 -성전 정화; 마지막 보루인 교회-2021.11.9.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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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9.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에제47,1-2.8-9.12 요한2,13-22

 

 

생명의 강, 은총의 강

-성전 정화; 마지막 보루인 교회-

 

 

“만군의 주님이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

그 안이 그리워, 내 영혼 애태우다 지치나이다.

이 마음, 이 살이 생명이신 하느님 앞에 뛰노나이다.”(시편84,2-3)"

 

"하느님 아버지, 어머니 교회(Deus Pater, Mater Ecclesia)”, 제대로 된 아버지가, 어머니가 없는 작금의 세상에 참 따뜻하게 느껴지는 인상적인 말마디입니다. 바로 지난 10월28일 오후 7시(로마 현지시각 낮 12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의 사목 표어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참으로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와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어머니 교회를 모시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은 천복天福의 사람들입니다. 만추晩秋의 요즘 역시 이런 하느님 아버지와 어머니 교회를 느끼는 수도원 분위기입니다. 마침 어제 써놨던 짧은 ‘노년의 향기’란 시도 생각납니다.

 

-“참/편안하고/넉넉한/초연하고 담백한

  가을/낙엽의 향기/노년의 향기”-

 

참 편안하고 넉넉한 하느님 아버지, 어머니 교회 같은 수도원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삶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같은 장엄한 아름다운 불암산을 배경한 어머니 교회같은 수도원입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마음을 다잡아 온 이 말마디 또한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간절한 소망은 예수님처럼 이런 하느님 아버지의 부성애와 어머니 교회의 모성애를 닮았으면 하는 것 하나뿐입니다. 수도원의 청원자 형제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수사님은 휴가 가지 않습니까?”

“갈데가 없습니다. 휴가 다녀온지 수십년은 된 듯합니다.”

“수사님은 수도원이 집이 되었네요.”

“그렇습니다. 주님 계신 주님의 집 수도원 여기가 바로 제 고향집입니다.”

 

새삼 33년 동안 정주한, 늘 편안하고 따뜻하고 넉넉한 여기 수도원 성전이 제 참 고향집임을 깨닫습니다. 사찰寺刹의 두 빛나는 보물같은 자산은 노승과 노목이란 말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절이나 수도원에 가면 우선 확인하는 것이 셋이니 절이나 수도원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노승老僧과 노목老木과 오래된 건물입니다. 노승老僧이자 고승高僧이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참으로 이런 셋을 갖춘 절이나 수도원이라면 저절로 경배敬拜, 감복感服하는 마음이 됩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로마에 있는 최초의 바실리카 대성전입니다. 바로 오늘 축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무려 1700년 역사의 건물입니다. 이런 건물은 그대로 역사 교과서요 보고 배우는 바도 참으로 클 것입니다. 

 

이 라테라노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면서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거의 천년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각 지역 교회가 로마의 모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널리 알리고자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미사를 드립니다.

 

노목과 노승이 절이나 수도원 역사를 반영하듯 이런 건물 역시 장구한 역사를 반영하며 최고의 역사 교과서가 되어 줍니다. 계속 부수고 짓는 짧은 역사의 신축 건물들뿐이라, 전통의 깊이와 뿌리를 상실한 현대인들의 날로 천박淺薄해지는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도대체 보고 배울 노목이나 노승, 오래된 건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노인들은 많아도 대부분 요양원에서 치매로 무거운 짐이 된 분들이 대부분이고 참으로 존경과 신뢰의 어른들은 절대 부족한 현실입니다. 

 

요셉 수도원은 설립후 34년이 지난 젊은 수도원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서서히 벌써 노령화 되는 느낌이 듭니다. 33년 동안 정주해 오면서 불암산과 수도원은 그대로 인데 주변 가까이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는지 모릅니다. 오늘이 특히 감회가 깊은 것은 코로나로 인해 1년 훨씬 지난후 처음으로 코이노니아 자매회가 피정 모임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6년 역사의 자매회이지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병고로 많이 노쇠해진 여러 자매들의 모습도 목격합니다.

 

요즘 많이 생각나는 것이 불교의 폐사지廢寺址들이나 시골의 빈집들, 그리고 옛 초등학교 빈 건물들입니다. 혹자는 ‘폐허의 미학’을 이야기 하지만 저는 참 비애감과 쓸쓸함에 가슴 시림을 느낍니다. 자꾸 눈길이 가는 예전 스님들이 많았을 폐사지들과 사람들이 정답게 살았던 시골집들, 학생들로 붐볐던 열기를 뿜던 초등학교 건물들 분위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특히 한창 때는 80여명 미국 수도자들이 살았던, 그러나 지금은 한국 왜관 수도자들이 파견되어 살고 있는 미국 뉴저지주의 뉴튼수도원의 옛 건물과 거기 머물 때 매일 찾았던 숱한 수도자들이 묻힌 수도원 묘지를 보면서 마음 아릿했던 슬픔과 아픔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람이 보물이자 희망입니다. 희망의 보물인 사람입니다. 때론 낡은 빈집이나 수도원, 절간 같은 곳에서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는 얼마나 반갑고 고맙고, 기쁘고 신기하게 생각되던지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건물도 급속히 무너져 죽어갑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 살아 있는 집들입니다. 아무리 자연환경이 좋고 건물이 좋고 전통이 좋아도 그 안에 살아 있는 보물, 수행승 수도자들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여기 요셉 수도원에 수도자들이 없다 생각해 보시면 금방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세상의 마지막 보루인 교회가, 세상을 끊임없이 성화시켜야 할 교회가 세상에 속화된다면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열화와 같은 의노가 이해가 됩니다.

 

-“이것들을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라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는 성경말씀을 생각했다.-

 

성전정화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중입니다. 성전정화는 3차원에 걸쳐 동시적으로 일어납니다. 교회 성전 건물 분위기의 정화와 더불어 교회 공동체 성전, 그리고 각자 몸의 성전입니다. 우선적인 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 성전의 정화입니다. 

 

보십시오. 믿음의 한 몸 공동체가 빠지면 껍데기 교회 건물은 참 무의미한 죽은 건물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형제들이 끊임없이 날마다 찬미와 감사의 시편기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기에 비로소 동시에 정화되고 성화되어 살아나는 건물 성전, 공동체 성전, 개인 성전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사흘만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 바로 진짜 성전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된 그리스도의 한 몸 교회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가 교회 공동체를 만듭니다. 성체성사 미사를 통해 양육 성장 성숙되는 그리스도의 한 몸 공동체 성전입니다. 미사중 아름다운 감사송이 참 은혜롭게 이 진리를 요약합니다.

 

“아버지께서는 기도하는 집에 자비로이 머무르시며,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시어, 저희가 성령의 성전이 되고, 거룩한 생활로 주님 영광의 빛을 드러내게 하시나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이 집으로 교회를 드러내시고,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가 나날이 거룩해져, 무수한 자녀들과 함께 기뻐하며, 하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나이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서 말씀은 그대로 성전 미사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성전 미사의 강물같은 은총이 세상 바다에 끊임없이 흘러가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보루같은 성전에서 끊임없이 샘솟아 세상으로 흘러가는 강물같은 은총입니다. 

 

“주님의 집에서 샘솟는 이 물은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말그대로 생명의 강, 은총의 강을 상징하는 미사은총입니다. 다음 장면 역시 미사은총으로 인한 낙원의 현실을 환상적으로 눈에 보이듯 표현합니다.

 

“이 생명의 강, 은총의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 성전인 우리를 정화, 성화시켜 주시며, 말씀의 양식과 성체의 약으로 우리를 건강케 하시어, 우리 모두 당신 생명의 강, 은총의 강으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주여, 당신의 집에 사는 이는 복되오니,

길이길이 당신을 찬미하리이다.

 

실로 당신의 궐내라며느 천날보다 더 나은 하루,

악인들의 장막 안에 살기 보다는, 

차라리 하느님 집 문간에 있기 소원이니이다.”(시편84,5.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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