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歡待)의 성모 마리아-환대 예찬-2015.2.7. 토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 3일째)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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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7. 토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 3일째)     

                                                                평화의 모후 복되신 마리아 신심 미사

                                                                                                                  이사9,1-3.5-6 루카1,26-38

 

                                                                      환대(歡待)의 성모 마리아

                                                                             -환대 예찬-

 

2015.2.7일 성모영보수녀원 피정 3일째인 오늘 우리는 '평화의 모후 복되신 마리아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오늘의 복음도 각별한 느낌입니다. 바로 성모영보수녀회 수녀님들의 좌우명과도 같은 성모영보대축일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은 제 66회 생일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통해 '환대의 성모님'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환대의 기쁨, 환대의 행복, 환대의 아름다움입니다. 환대의 하느님이자 환대의 성모님입니다. 환대의 하느님을 닮을 수록 환대의 사람이 됩니다. 환대의 성모님을 닮은 '환대의 성모영보수녀회 수녀님들'입니다. 귀국과 더불어 저는 지금 성모영보수녀회 수녀님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행복하게 피정지도하며 저도 피정을 합니다. 환대 받고 있음을 온몸과 온맘으로 느낍니다. 

 

어제 미사중 체험이 새로웠습니다. 미사 중 입당시 얼떨결에 슬립퍼를 신지 않고 양말만 신은 채로 제대에 올라갔는데 참 잘했다 싶었고 기분도 나를 듯 했습니다. 순간 제대에서 저를 가슴 활짝 열고 환대해 주신 주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어 미사 중 수녀님들의 활짝 열린 환대의 얼굴들과 마음들이 제 마음을 활짝 열어줬습니다. 이렇게 어제처럼 웃음띈 얼굴로 미사시작하긴 처음입니다. 

 

새삼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을, 동시에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환대하는 우리임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아, 환대의 사랑, 환대의 아름다움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환대를 많이 체험할수록 환대의 사람, 평화의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바로 이에 대한 생생한 증거가 성모마리아는 물론 성모영보수녀회 수녀님들입니다. 

 

오늘 주님의 천사를 통해 주님을 환대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평소 주님의 환대를 깊이 체험했던 성모 마리아이심이 분명합니다. 성모님의 환대와 천사의 잉태고지의 수락을 통해 마침내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됩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아니 한 번뿐이 아니라 매일의 미사를 통해 우리의 순종의 응답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 새롭게 잉태되어 탄생하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매일이 영적으로 성모영보대축일입니다.

 

주님은 사막같은 삶에 오아시스와 같은 연중피정을 통해, 또 사막같은 나날 오아시스와 같은 매일미사를 통해 우리를 환대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환대의 성모님'을 찾아 오신 주님은 성모님이 얼마나 축복 받은 존재인지를 일깨우십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아, 바로 주님을 닮은 환대의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환대 자체가 축복입니다. 사람 환대는 바로 주님 환대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제가 처방전 보속 말씀으로 가장 많이 써드린 구절 중 하나입니다. 얼마나 주님의 신뢰와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성모 마리아인지요!

 

막연한 환대가 아닙니다. 성모님의 환대를 통해 분명히 들어납니다. 성모님은 활짝 깨어 열려있는 침묵 중에 주님 천사의 말에 귀를 열고 듣습니다. 환대의 우선적 요소가 바로 침묵이자 들음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성모님의 관상(觀想)과 배려, 공감이 놀랍습니다. 이래야 원활한 소통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천사의 복된 말씀에 몹시 놀라지만 곧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며 되새기는 성모마리아는 '관상의 대가'이자 '렉시오 디비나의 대가'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성모님은 주님의 천사의 말을 고요히 경청, 공감, 배려하며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여기 수녀원에서도 이런 배려와 공감, 환대를 많이 체험합니다. 인터넷의 불통, 카톡의 불통으로 답답해 할 때 비비안나 비서수녀님은 즉시 제 마음을 헤아려 적극적으로 해결해 줬습니다. 양크리스티나 주방책임수녀님은 식사때마다 정갈하고 정성껏 식탁을 차려주었고 저는 이 식탁의 조화가 아름다워 카톡 사진을 찍은 후 전송하며 사랑하는 분들에게 음식 대접(?)도 했습니다. 이 또한 제 환대의 표현,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 여기서 깨달은 진리가 있습니다. 수도회의 장상을 비롯한 모든 책임자들은 심부름꾼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 진정한 권위가 있습니다. 다스리고 지배하는 권위가 아니라, 봉사하는 권위, 섬기는 권위, 심부름꾼의 권위입니다. 제가 볼 때 여기 총원장 요안나 수녀님, 비비안나 비서 수녀님, 또 피정집 주방 책임자 크리스티나 수녀님은 그대로 주님의 사랑의 심부름꾼입니다. 제 강론을 가톨릭 굿뉴스에 정성을 다해 올리는 김명혁 명준 다미아노 형제님 역시 말씀의 심부름꾼입니다. 

 

예전 저희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도 아빠스로 선출되었을 때 일성이 '공동체의 심부름꾼 역할을 잘 하겠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니 정말 나라나 사회, 공동체의 지도자를 뽑을 때는 밝은 눈으로 진짜 주님과 형제들을 잘 섬길 수있는 심부름꾼을 뽑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교회나 수도회의 진짜 심부름꾼 지도자들은 모두가 환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환대했고 형제들을 환대했으며 겸손히 주님과 형제들을 섬기며 심부름꾼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겸손과 섬김, 순종의 사람들을 대하면 저절로 감동, 감복하게 됩니다. 

 

성모님의 환대의 절정은 다음 순종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느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는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모영보수녀회 수녀님들의 모토와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할 때 주님도 우리에게 순종하십니다. 일방적 순종이 아니라 상호순종입니다. 권위가 있다면 오직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권위가 있을 뿐이며, 영성이 있다면 종과 섬김의 영성만이 있을뿐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가슴 활짝 열고 우리를 환대하시며, 우리 역시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을 환대하는, 환대와 환대가 만나는 복된 시간입니다. 주님은 성모 마리아처럼 당신을 환대하여 순종을 고백하는 우리 모두에게 한량없는 평화의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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