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5.7.12. 연중 제15주일                                                                                                  아모7,12-15 에페1,3-14 마르6,7-13


                                                                                              회개의 삶

                                                                                             -자유의 길-


세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상징성이 깊은 예화입니다. 


1.얼마전 피정을 다녀간 형제분이 전역을 앞두고 정장을 하고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알고보니 현역의 대령으로서 오랜 군생활의 마감을 앞두고 주님께 인사차 수도원에 들렸던 것입니다. 순간 '아, 무겁겠다. 착각할 수 있겠다. 자유롭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훈장들과 갖가지 번쩍이는 장식들인 단추, 계급장등 너무 무겁고 부자유로워 보였습니다. 다음 얼마후 전역을 하고 남방을 입고 온 모습이 참 경쾌하고 자유로워보였습니다. 정말 나에 맞는 마음의 옷을 입고 가볍고 자유롭게 살 수는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2.얼마전 단체피정을 계획중인 젊은 형제가 전화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피정 강론도 부탁했습니다. 그대로 현실의 어려움이 감지되는 듯 했습니다. 노년은 물론이요 젊은이들의 현실적 두려움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많은 이들이 불확실한, 불투명한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삽니다. 하여 '두려워하지 마라'는 강론 제목을 넣어 검색해 봤더니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같은 제목들이었습니다. 여기 수도원의 십자로 예수부활상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성구도 대다수 수도형제들이 찬성한 것입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오늘날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아, 어떻게 하면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다시 생각했습니다.


3.며칠전 일간지에 나온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마음 전문가들과의 대화-'라는 저명인사와의 인터뷰시 나눈 대화들입니다.


-(안희경)=제가 작년에 지그문트 바우만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인간의 역사는 '추의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88세 사회학자가 말하길, 젊어서는 진보를 '직선운동'이라 여겼는데, 나이들어 되돌아보니 계속 후퇴를 반복하는 추의 운동이라고요. 그 말을 듣고 매우 낙담했더랬습니다. 저는 그래도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해간다고 여겼거든요-


"(아옌데)=저 또한 나선형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 나선형 안에서 추의 운동 같은 반복이 나와요. 항상 후퇴하곤하죠. 그리고 무언가를 배우죠. 그래서 우리가 좀더 주의하지 않는다면, 과거에 있었던 실수투성이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변화를 이뤄내기도 하며 역사는 물러갔다 앞으로 나가요.“


여러분의 관점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역사는 물론 나의 역사는 '퇴보의 추의 운동'이라 여깁니까, 혹은 '진보의 직선운동'이라 여깁니까? 그렇지 않으면 '나선형'이라 여깁니까, 혹은 '나선형 안에서 추의 운동'이라 여깁니까? 우리 믿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답은 하나, '나선형 안에서의 추의 운동'입니다. 물러갔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보 후퇴했다 이보 전진하는 나선형 안에서의 추의 운동 같습니다. 바로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결정적 요소가 회개입니다. 제가 많은 식자들의 논의를 보면서 깨닫는 점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하느님을, 회개를 제외시킨다는 것입니다. 정답을 놔두고 계속 주변만 맴돈다는 느낌입니다.


오늘 복음의 중심 주제도 잘 들여다 보면 회개임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회개만이 나선형 안에서 추의 운동중에 끊임없는 전진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인류는 물론 나 개인이 살 길도 회개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파견 받은 제자들이 우선적으로 한 일도 '회개의 선포'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물론 예수님의 선포한 메시지도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였습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회개의 삶-자유의 길'입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길은 회개의 삶, 하나뿐입니다. 마음으로뿐 아니라 실천을 통한 회개입니다. 무엇이 회개의 삶입니까?


첫째, 성소聖召에 충실한 삶입니다.

회개는 성소(부르심)에 충실한 삶입니다. 한번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는 끊임없는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느님 앞 내 제자리에서 내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입니다. 내 삶의 중심을, 내 삶의 목표를, 내 삶의 방향을, 내 삶의 의미를, 바로 주님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중심을, 목표를, 방향을, 의미를 잃어 혼돈 중에 방황이요 점증하는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성소의 발견이며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오늘 1독서 아모스의 확신에 찬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자각한 아모스입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부르심을 받아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우리들입니다. 부르심이 없었다면 무명속에 살다가 무명속에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살다가 사라져갈 우리들입니다.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역시 아모스처럼 양상이나 정도는 달라도 모두 주님께 붙잡힌 축복된 사람들입니다. 세례 받아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 가고 있을 까요. 부르심에 충실하여 참 나를 살 때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이요 참 자유인의 삶입니다.


둘째, 존재存在에 충실한 삶입니다.

소유가 아닌 주님 안에서 존재의 삶이 바로 회개의 삶입니다. 존재에 충실할 때, 주님과의 우정도 깊어지면서 서서히 내려 놓게 되는 소유의 짐들입니다. 불필요한 가면도, 마음의 옷들도 벗어버리고 가볍고 홀가분한 자유인의 삶입니다. 존재에 충실할 때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니 실상 내적 부요의 삶입니다. 


오늘 2독서 에페소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진 은총은 얼마나 풍요로운지요. 주님 안에 머물러 존재에 충실할 때 누리는 넘치는 축복입니다. 그리스말 본문에서는 3절에서 14절까지가 한 문장으로 되어있습니다. 그야말로 숨을 멈추지 않고,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내리 노래합니다. 이 찬미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동사의 주어로 등장하고, '그리스도 안에서(8회)'란 말마디가 부단히 반복됩니다. 우리 삶의 제자리는 새삼 '그리스도 안'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물음이 바로 존재에 충실한 삶이요 충만한 기쁨이요 충만한 행복입니다.


여기 우리 삶의 최종 의미가 밝혀지는 대목이 셋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6절).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12절).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16절).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이자 신원이 환히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궁극의 진짜 신원입니다. 우리 인생 문장의 주어인 하느님을 모름으로 자기를 잊고, 잃고 살아가는 껍데기, 헛개비, 유령인생은 얼마나 많은지요. 수도원 정문을 들어서면서 돌판에 새겨진 분도회의 모토도 이와 일치합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바로 이런 파스카의 주님안에 머물렀다 파견 받기에 이런 자발적 기쁨에 무소유의 삶입니다. 이렇게 주님만으로 충만할 때 저절로 가면은 벗게 되고 불필요한 짐은 내려 놓게 됩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얼마나 가볍고 홀가분해 보이는지요. 이렇게 최소한의 소유에 만족할 때 삶은 짐이 아니라 선물이 됩니다. 충만한 존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안팎으로 버리고 비우고 떠나 주님을 따를 때 비로소 두려움 없는 자유인의 삶입니다.


셋째, 파견派遣에 충실한 삶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는 끊임없는 파견으로, 새로운 시작으로 직결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뿐 아니라 이 기쁨을 나누게 합니다. 아, 바로 이것이 앞당겨 체험하는 하늘나라의 기쁨입니다. 복음선포를 통한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요 본질적 사명입니다. 선교없는, 파견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우리만 가벼워져 홀가분한 자유를 누릴 게 아니라 이웃의 짐을 가볍게 해주고 홀가분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참 좋으신 주님을 만남으로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을 몰아 내게 해주는 것입니다. 파견된 제자들은 회개의 선포에 이어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서 병을 고쳐줌으로 이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고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내고 참 자유인이 되게 해줍니다. 그대로 회개의 열매입니다.


회개의 삶만이 자유의 길입니다. 부르심에 충실한 삶, 존재에 충실한 삶, 파견에 충실한 삶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가 이 셋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부르셨고, 당신 안에 머물러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며, 당신으로 충만케 하신 후 당신 평화의 일꾼으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끝으로 오늘 아침에 쓴 '축복'이란 자작시 나눕니다.


-하늘길/수도원길 걸어보라

 메타세콰이어/가로수들 사열 받으며


 눈들어/하늘 희망 가득 담고

 가슴 활짝 열어/초록빛 사랑 가득 담고


 힘차게/믿음의 두발로 걸어보라

 본래의 참 모습/땅이 되고 하늘이 되리라.-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93 소통疏通의 대가大家-2015.7.7.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15.07.07 204
3192 영적(내적)성장의 삶-2015.7.8.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15.07.08 216
3191 누가 '하느님의 사람'인가?-2015.7.9.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15.07.09 224
3190 하느님 중심中心의 삶 -하루하루 살았습니다-2015.7.10.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5.07.10 552
3189 성 베네딕도는 누구인가?-2015.7.11. 토요일 유럽의 수호자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480-547)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5.07.11 332
» 회개의 삶 -자유의 길-2015.7.12. 연중 제15주일 프란치스코 2015.07.12 257
3187 주님께 합당한 사람-2015.7.13.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5.07.13 199
3186 회개의 일상화-2015.7.14.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15.07.14 233
3185 주님과의 끊임없는 만남-2015.7.15. 수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1217-1274)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5.07.15 287
3184 환대의 품-2015.7.16.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15.07.16 215
3183 사랑의 기적 -파스카 축제-2015.7.17.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5.07.17 347
3182 탈출(脫出;Exodus)의 여정 -파스카의 삶-2015.7.18.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5.07.18 255
3181 자유인-2015.7.19.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프란치스코 2015.07.19 357
3180 신비감각의 회복-2015.7.20.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5.07.20 186
3179 삶은 축제다 -파스카 축제 공동체-2015.7.21.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15.07.21 373
3178 사랑의 중심 -파스카의 주님-2015.7.22.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5.07.22 406
3177 속도速度보다는 하느님 방향方向이다 -아름다운 삶-2015.7.23.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15.07.23 207
3176 말씀의 깨달음-깨달음 예찬-2015.7.24.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5.07.24 168
3175 섬김의 사랑, 구원의 사랑-2015.7.25. 토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프란치스코 2015.07.25 221
3174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2015.7.26. 연중 제17주일 프란치스코 2015.07.26 277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169 Next
/ 169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