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심聖心예찬-2015.6.13.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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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3.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이사61,9-11 루카2,41-51


                                                                                                  성모성심聖心예찬


어제 예수성심예찬에 이어 오늘은 성모성심예찬입니다. 역시 아름답고 사랑스런 신심입니다. 정말 배워 닮고 싶은 성모성심의 사랑이자 믿음입니다. 예수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신심입니다. 1942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하고, 이 기념일을 온 교회가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런저런 묵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요즘 가뭄이 심합니다. 곳곳에 뿌리가 얕은 풀들은 서서히 누렇게 시들어 죽어 갑니다. 반면 뿌리가 깊고 넓게 퍼진 나무들은 독야청청합니다. 아, 믿음의 뿌리도 이러할 것입니다. 세상 온갖 시련과 풍파에도 뿌리 깊은 믿음의 사람들을 대하는 듯합니다. 아마 오늘 기념하는 성모님의 믿음도 이처럼 하느님 중심에 깊고 넓게 뿌리내렸을 것입니다.


믿음도 사랑도 보고 배웁니다. 머리로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삶을 통해 배웁니다. 얼마전 호스피스센타에 책임자로 일하는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1년에 무려 암환자가 180명 죽어나간다는, 늘 죽음과 함께 사는 수녀입니다. 과연 준비된 죽음으로 아름다운 선종을 맞이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습니다.


"어쩌다 간혹입니다.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을 당합니다. 믿는 이들이 좀 나은 편입니다. 죽음에 대해선 아무도 자신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 역시 보고 배웁니다. 예전 시골 어른들은 죽음을 그렇게 낯설어 하지 않았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제 아는 어른들만 해도 죽음을 대비해 수의를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했고 자신의 묘자리도 점검하는 것을 봤습니다. 어려서부터 늘 마을에서 죽음을 보고 배웠기에 옛 시골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유언도 남겼습니다. 이런 아름답고 준비된 죽음도 보고 배우는 것인데 이런 죽음의 체험과 단절되어 보고 배우지 못하니 지극히 낯설고 두렵고 무서운 죽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우리들은 교회 성인들을 통해 삶과 죽음을 배웁니다. 모전자전母傳子傳이라 아마 예수님 역시 마리아 성모님으로부터 고스란히 삶을, 믿음과 사랑을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미치는 삶의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믿음과 사랑 역시 그대로 부모의 삶을 통해 배우며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아무나 지닐 수 있는 믿음이나 사랑이 아니요 어려서부터 보고 배워야 하는 믿음이요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직을 맡은 어느 분은 국회에서 열린 혁신위원회 첫 회의에서 '새정치연합에게 필요한 건 자멸적 안주가 아니라 창조적 파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대로 우리의 영적 삶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자멸적 안주가 아닌 창조적 파괴를 통한 영적전투의 승리로 매일매일 새롭게 시작함이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는 이런 믿음과 사랑으로 평생, 매일 새롭게 사셨던 성모성심을 기립니다.


첫째, 성모님은 '믿음과 인내'의 어머니였습니다.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에 순례했으니 이런 영적 습관 역시 항구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순례 중 예수 아드님을 잃어 버렸다 찾았을 때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복음 마지막 묘사처럼 성모님은 침묵중에 마음 깊이 담아 두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술도 때가 되어야 어둠속에서 발효되어 익듯이, 인내로 기다려야 때가 될 때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래야 부패腐敗인생이 아닌 아름답고 향기로운 발효醱酵인생, 믿음의 인생입니다. 그러니 우선 필요한게 인내요 기다림입니다. 어느 자매가 영적지도 중에 받았다는 조언도 생각납니다. '순명하고 침묵하며 기도하라.' 순명, 침묵, 기도 역시 믿음의 삶에 필수적 요소임을 깨닫습니다. 


마음 깊이 담아두고 때가 될 때 까지 견뎌내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기다려 때가 되면 해결解決이 아닌 저절로 해소解消되는 문제는 얼마나 많은지요. 성모님의 과연 인내와 기다림으로 표현되는 믿음의 대가임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 성모님은 '찬미와 감사'의 어머니였습니다.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터져나온, 수도자들이 매일 저녁기도 말미에 바치는 그 유명한 성모찬가 마니피캇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느님 향한 사랑은 이렇듯 찬미와 감사로 표현되기 마련이며 이와 더불어 증진되는 사랑과 믿음의 내적 힘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고백은 그대로 하느님을 찬미할 때의 성모님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말 그대로 성모님은 찬미와 감사, '알렐루야'와 '아멘'의 어머니였습니다. 아니 누구든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때의 복된 체험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참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입니다. 이런 구절은 통째로 외워두는 게 좋습니다. 하느님 찬미에서 샘솟는 기쁨이요 즐거움의 선물입니다. 마치 미사에 참석한 우리의 찬미와 감사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세상에 찬미의 기쁨을 능가할 수 있는 기쁨은 없습니다. 이런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가 내적 힘의 원천입니다. 성모님의 경우도 우리와 똑같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성모성심을 예찬하는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주님, 성자의 어머니를 기리는 저희가 주님의 충만한 은총에 감사하며, 끊임없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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