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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5. 주님 공현 후 화요일                                                                  1요한4,7-10 마르6,34-44


                                                            사랑만이 답이요 모두이다

                                                                  -사랑 예찬-


오늘은 사랑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강론 제목은 ‘사랑만이 답이요 모두이다’입니다. 오늘 제1독서 요한1서를 일별一瞥하는 순간 사랑의 흰눈 덮인 들판을 보는 듯, 무수한 사랑의 별들이 반짝이는 듯한 착각을 했습니다. 무려 사랑이란 단어가 짧은 1독서 안에 10회 들어 있었습니다.


1.사랑은 모두입니다. 사랑만이 답입니다. 사랑은 생명입니다. 만병의 근원은 사랑 결핍에 있고, 만병통치약은 사랑뿐입니다. 사랑, 삶, 사람이 모두 같은 어원에서 기인한다는 제 확신입니다.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삶의 존재이유이자 삶의 의미입니다. 삶에서 사랑빼면 허무이지만 삶에 사랑이 더해 지면 의미 충만한 삶입니다. 사랑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요, 모든 빛을 잃어버립니다.


2.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프고 두렵고 무서운 것이 고립이요 망각입니다. 끊어져 섬처럼 고립될 때, 잊혀질 때 바로 이것이 현세의 지옥이요 살아있다 하나 실상 죽음과 같습니다. 손을 내밀어 고립된 이를 잡아 주는 것이, 잊혀진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를 잡아 주시고 우리를 기억하시며 우리 또한 주님을, 많은 이들을 잡아드리며 기억합니다.


3.지난 주일 오후의 영적체험도 잊지 못합니다. 수시간 동안 독서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독서도중 머릿속이 하얘지는 듯, 마치 텅 빈 진공상태 같았습니다. 사람도 하느님도 없는 순수진공상태의 공간입니다. 순간 하느님과 형제들이 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공동체 없이는 하느님도 사람도 없는 추상의 진공상태에서 폐인으로, 괴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평생 졸업이 없는 사랑의 영원한 초보 학생이 몸담고 사랑을 배워가는 학교입니다. 가톨릭 공동체의 시스템 자체가 겸손을, 사랑을 배워아만 살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습니다. 죽은 시스템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랑의 시스템 공동체입니다.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 하는데 혼자 살면 어떻게 사랑을 배우며 실천할 수 있겠는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없이는 사랑은 애매모호한 추상이 되고 사랑 확인도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추상명사의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랑과 하느님 사랑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라지면 하느님께 이르는 길도 없고 하느님을 만날 길도 없습니다. 사람 사랑을 배우고 하느님 사랑을 배우는 공동체가 얼마나 축복된 사랑의 학교인지 깨닫습니다. 공동체를 떠나선 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공동체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습니다. 바실리오 규칙도 온통 성경의 사랑말씀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복음서 같습니다.


4. 사랑, 깨달음, 자유, 치유, 이 넷은 영적 삶의 요약이자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할 때 솟아나는 영감에 빛같은 깨달음이요, 이 깨달음이 우리를 내적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깨달음을 통한 자유가 진정한 자유요 이런 자유와 더불어 영육의 치유입니다.


5.어느 지인으로부터 좋은 책을 소개해 달라 하여 ‘신의 위대한 질문’이란 책을 소개해 드렸고 감사의 카톡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무지하고 무뢰한 제게 ‘신의 위대한 질문’을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 감사—묵언”. 독서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깊이 체험했음이 분명합니다.


6.수도원의 쓰레기장의 쓰레기별로 잘 분류된 모습이 저에겐 또 하나의 깨달음이었습니다. 똑같은 쓰레기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로 분류된 쓰레기였습니다. ‘아, 사람도 쓰레기처럼 분류할 수 있겠다.’하는 불경한 생각과 더불어, 쓸모없이 버려지는 쓰레기 같은 삶은 살지 말아야 겠다는 자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모두가 시랑의 껍데기로, 사랑의 쓰레기로 사라져 영원한 사랑이 됩니다.


아,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쓰레기는 그대로 사랑의 흔적, 사랑의 껍데기였습니다. 알맹이를 보호해 주는 사랑의 포장으로, 사랑의 껍데기로 있다가 알맹이가 빠져 나가자 버려진 사랑의 흔적이 쓰레기라는 깨달음입니다. 곳곳의 버림 받은 쓰레기 같다 여겨지는 이런저런 인생들 깊이 들여다보면 사랑의 흔적들입니다. 하여 하느님의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와 약자에 대한 사랑은 각별할 수 뿐이 없습니다.


7.어제 읽은 어느 작가의 일화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사랑의 끝에는 무엇이 있어요?’

어느날 한밤중에 딸에게서 온 문자다.

“뭔가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했어요. 밤새 잠을 잘 수 없었죠. ‘사랑에 완성이 있겠니…’라고 답장을 했지만 밤새 걱정을 했지요. 아침에 아내에게 물어봤어요. 당신이라면 뭐라고 답했겠느냐고. 그랬더니 아내가 단호하게 말했어요. 


“사랑의 끝에는 사랑이 있지!” 

사랑의 끝에 사랑이 있다고 믿는 여자는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내는 거 같아요. 사랑에 있어서 단 한 번도 아내를 이겨본 적이 없어요. 자궁을 가지지 못한 자의 한계라고 할까요? 자궁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어요. 사랑을 지키고 희망을 접지 않는 것은 남자들이 이를 수 없는 경지죠.”-


사랑의 끝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길이 있듯이 말입니다. 어디나 하느님께 이어져 있는 사랑의 길입니다.


8.코린도 1서 13장 사랑의 대헌장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1코린13,13).


9. 어느 작가의 인터뷰 중 한 대목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그 갈망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한때 히말라야를 돌면서 그걸 극복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사랑이 최고의 에너지고 권력이었죠.”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연민과 자비로 드러나는 온 세상 모두에 미치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가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최고 결정체가, 하느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사랑의 선물이 바로 예수님이요 성체성사 미사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그대로 미사의 요약입니다. 앞부분은 말씀의 전례에 해당되고 후반부는 성찬전례에 해당됩니다. 복음의 서두가 하느님의 가이없는 측은지심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이어 주님은 말씀의 사랑으로 영혼들을 배불리시고, 빵과 물고기로 상징되는 성체의 사랑으로 육신을 배불리십니다. 바로 이 장면이 미사의 원형입니다. 예수님 친히 미사를 집전하시는 오늘의 복음의 장면같습니다. 새삼 전례만으로 끝나는 반쪽 미사가 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사는 하루로 확산되고 하루는 미사로 수렴되면서 '삶의 미사화', '삶의 사랑화'가 되어야 온전한 미사, 완전한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성가정聖家庭 공동체의 ‘사랑의 학교’에 성실하고 충실한 학생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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