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하느님의 사랑을!” -신록의 기쁨, 신록의 건강-2016.4.24. 부활 제5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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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24. 부활 제5주일 

                                                                             사도14,21ㄴ-27 요한묵21,1-5ㄱ 요한13,31-33ㄱ.34-35


                                                                     “보라, 하느님의 사랑을!”

                                                                   -신록의 기쁨, 신록의 건강-


이런저런 예화들로 오늘 강론을 시작합니다. 여기 수도원은 계절마다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특히 신록으로 빛나는 요즘은 1년중 가장 아름답습니다. 우리 하느님의 사랑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온누리의 자연을 통해 표현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수도원을 찾습니다. 입술에서는 예전 불렀던 시편 화답송이 저절로 기도가 되어 흘러 나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오늘 화답송 후렴 역시 요즘의 분위기에 맞게 참 흥겹습니다. ‘내 하느님 임금님 기리오리다. 영원토록 당신 이름 기리오리다.’ ‘당신 이름’을 ‘당신 사랑’으로 바꿔 불러도 너무 잘 어울립니다.


“내 하느님 임금님 기리오리다. 영원토록 당신 사랑 기리오리다.”


어제 찾았던 어느 분과의 대화중 한 마디 말에 공감했고 잊혀지지 않습니다. ‘요즘 제 주변의 사람들중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온통 아프고 병든 사람들뿐입니다.’ 요즘 자연처럼 신록의 기쁨, 신록의 건강으로 살 수 는 없을까 깊이 생각했습니다. 


며칠전 수도형제와의 대화중 형제의 화답에 제 말에 제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은총으로 살아갑니다.’제 말에 ‘예, 그래요, 우리 형제들은 은총으로 살아갑니다.’ 화답의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은총으로 기적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깨달음에서 샘솟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가, 신록의 기쁨, 신록의 건강으로 살게 하는 최고의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건강해서, 능력이 출중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전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을 보며 써놓은 ‘배경의 역할은 이런 것’이란 글의 제목도 오늘 강론을 묵상하던중 ‘배경의 사랑은 이런 것’으로 바꾸니 잘 어울렸습니다. 읽어드립니다.


-수도원 배경의/신록新祿/연록軟綠/초록草綠

 온갖 색깔의 생명生命으로 충만充滿한 


 불암산/무언無言의/축복祝福/환호歡呼/격려激勵/응원應援

 배경의 사랑은 이런 것-


정말 배경의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두려움과 불안, 아픔에 위축된 이웃 형제들을 위한 무언의 축복, 환호, 격려, 응원의 배경의 사랑이 참으로 절실한 시대입니다. 젊은이들에게 ‘힘내라’는 말만하지 말고 ‘힘을 주라’는 시내 버스에 붙어있던 홍보글자도 생각납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신록의 기쁨, 신록의 건강으로 살 수 있는 비법을 나눕니다. 강론 제목은 ‘보라, 하느님의 사랑을!-신록의 기쁨, 신록의 건강-’입니다. 제2독서 요한 묵시록의 세 글귀가 강론의 바탕입니다.


첫째, “보라, 오늘 지금 여기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느님의 비전을!”이란 말씀입니다.


이런 하늘나라의 비전을 지니고 살아야 신록의 기쁨, 신록의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유독 자주 나오는 말마디가 새로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늘 새로움입니다. 


“나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가슴 떨리게 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인지요. 예수님은 물론 모든 예언자들이 평생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늘나라 비전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이어지는 요한의 환시 장면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대로 파스카의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되고 있지 않습니까?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파스카의 은총이 오늘 지금 여기서 새 예루살렘을, 새 하늘과 새 땅을 살게 하십니다. 그 비결은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입니다. 죽으시기 전, 주님의 유언같은 말씀이지만 역시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런 형제사랑은 그대로 이기적, 감정적 사랑이 아니라 연민의 이타적,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은 물론 우리 모두를 영광스럽게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항구한 서로 사랑의 노력과 더불어 실현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늘나라입니다. 지난 금요강론 때 마지막 글에 공감했습니다.


“신앙은 끝없는 자기와의 투쟁이다. 자신이 얼마큼 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기쁨도 그 크기가 달라질 것이다.”


어찌 신앙뿐입니까? 이타적 아가페의 사랑도 끝없는 노력을 필요로합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아가페의 사랑 있어 오늘 지금 여기서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늘나라 기쁨을 삽니다.



둘째,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우리들 가운데에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파스카의 은총입니다. 언제 어디에나 현존하시는 파스카 주님의 은총입니다. 저 하늘 위에 있는 하느님의 거처가 아니라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거처입니다. 파스카의 주님을 통해 실현되는 겸손한 사랑, 생명의 사랑이요, 이런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 신록의 기쁨, 신록의 건강을 살게 합니다. 


첫째 번 하느님의 새로움에 이어 이번은 하느님의 고마움입니다. 저절로 파스카의 주님이 고맙습니다. 4.13 총선 때 어느 낙선자의 현수막 글귀도 생각납니다. ‘참 아픕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유권자에 대한 고백일뿐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고백 역시 ‘고마움’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께 대한 고마움이 샘솟은 선교열정으로 표출됨을 봅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가 생생한 증거입니다. 얼마나 역동적인 분위기인지요. 다음 대목에서 마치 곳곳에 하느님의 거처인 교회가 탄생되고 강화되는 분위기를 느낍니다.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의 위탁하였다.’


마지막 두 사도의 보고 장면도 아름답습니다. 


‘그들은 도착하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 하였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믿음의 문을,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어 바로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거처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셋째,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놀라움입니다. 이런 주님 주시는 놀라움이 우리 모두 신록의 기쁨, 신록의 건강을 살게 합니다. 바로 파스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사랑으로 모두를 새롭게 만드십니다.


사랑의 성령입니다. 사랑의 성령이 우리를 부단히 새롭게 만듭니다.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부단히 새롭게 만드시며 평화와 기쁨을 선사하십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요 빛입니다. 말씀을 통한 성령이 우리를 신록의 기쁨으로 빛나게 하고 신록의 생명을 살게 합니다. 요즘 사도행전을 보면 마치 들불같이 번져가는 말씀처럼 느껴집니다. 어제 사도행전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을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퍼졌다.”(사도13,48-49)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주님의 살아있는 생명과 빛의 말씀이 세상을, 우리를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합니다. 요셉수도원에서의 제 29년 동안 삶은 다음 두 말마디로 요약됩니다.


“주님은 내 운명이자 사랑이었다.”

“한결같은 강론을 통한 말씀의 은총이 나를 지켰고 공동체를 지켰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주님은 부활 제5주일에 참 새롭고 고맙고 놀라운 깨달음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신록의 기쁨, 신록의 건강을 살 수 있는 평범한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보라, 오늘 지금 여기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늘나라 비전을!”

2.“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우리들 가운데에 있다!”

3.“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 오늘 지금 여기서 구원의 현실을 보기시 바랍니다. 위의 세 말마디는 오늘 강론의 제목 ‘보라, 하느님의 사랑을!’ 하나로 요약됩니다.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쁨을 선사하시며 우리 모두를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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