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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4. 주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49,1-6 사도13,22-26 루카1,57-66.80



영원한 도반

-예수님과의 우정-



오늘은 참 자랑스런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아마 교회에서 탄생 대축일을 지내는 분은 예수님에 이어 요한 세례자 두 분뿐일 것입니다.이런 성인들의 축일을 지낼 때 마다 힘이 나고 위안을 받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희망의 표징이 바로 이런 성인들이며 우리 또한 성인이 되어야 겠다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도반이신 성 요한 세례자입니다. 예수님 없는 요한 세례자 생각할 수 없듯이 요한 세례자 없는 예수님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영원한 도반이신 두 분의 영적우정은 그 누구보다도 깊었을 것입니다. 마치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분 어머니와의 우정을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축일 아침 우리는 다음 초대송으로 하루를 열었고, 이어 아름다운 찬미가로 요한 세례자를 기렸습니다.


-“세자 요한이 즐겨 우리에게 일러분 천주의 어린양께 어서 와 조배드리세.”-


-“높은 덕 빛나시는 복되신 요한/죄없이 눈과 같이 깨끗하시네

  사막의 은수자요 크신 예언자/용감한 순교자로 빛나시도다


  꽃으로 곱게 꾸민 빛나는 화관/성인들 머리위에 올려지나니

  어떤이 이중화관 받아쓰지만/당신은 삼중화관 받아쓰셨네.”-


참으로 순교의 죽음후에도 영원한 감동을 주는, 예수님께서도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중에 요한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다’며 찬탄하신 예수님의 영원한 도반 요한 세례자입니다.


성인들은 기념하고 기억할 뿐 아니라 본받아 살라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의 선물들입니다. 마침 요한의 뜻도 ‘하느님의 선물’이니 우리 역시 요한 세례자를 닮아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성인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요한 세례자처럼 우리도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과의 우정을 깊이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마태복음 말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약속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의 우정을 깊이할 수 있을까요? 바로 그 모범이 요한 세례자입니다. 요한 세례자를 닮는 것입니다. 저는 네 측면에 걸쳐 깨달아 배웠습니다.


첫째, 성소에 감사하십시오.

바로 오늘 제1독서는 주님의 종인 예수님은 물론 세례자 요한, 그리고 무수한 예언자들과 성인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우리 모두의 성소를 보여줍니다. 결코 우연한 존재의 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르심의 성소를 통해 참으로 귀한 존재가 된 우리들입니다.


“나는 불림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유다인 랍비 여호수아 헤쉘의 말입니다. 불림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우리들입니다. 이런 성소에 대한 자각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되고 받은 성소에 저절로 감사하게 됩니다. 이사야서 다음 주님의 종의 고백은 바로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그러나 때로 살다 보면 삶에 회의도 올 수 있는 법입니다. 주님의 종의 다음 고백 역시 공감이 갑니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선 안됩니다. 즉시 일어나 주님을 고백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주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성소입니다.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기쁨, 나의 행복, 나의 생명, 나의 모두입니다. 요한 세례자처럼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과의 우정이 깊어질수록 비로소 참 나의 실현입니다. 예수님 없이 내가 누구인지 아무리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물음이라면 답은 예수님입니다. 날로 예수님과의 우정이 깊어가면서 예수님을 닮아 갈수록 비로소 참나의 실현이자 완성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하나 주님께 불림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만일 세례받지 않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런지요. 주님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살다 떠난 인생이라면 얼마나 허무하고 허망하겠는지요. 


그러니 성소에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바로 은총을 담는 그릇입니다. 감사하는 영혼에게 주님은 풍성한 축복을 담아 주시며 당신 향한 우리의 성소를 계속 키워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둘째, 광야의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마음에 와닿은 마지막 대목입니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 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가지 광야에서 살았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광야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굳이 광야를 찾아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내 삶의 자리가 영적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해도 여전히 외롭고 고독한 광야인생입니다. 바로 이 광야가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을 만날 자리입니다. 우리의 도반이자 광야인생의 수련장인 주님이십니다.


요한 세례자를 돌 본 주님의 손길은 여전히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광야의 수련중에 요한 세례자처럼 굳건해 지는 정신입니다.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의 침묵과 고독중에 주님과 함께하므로 정화되고 단련된 요한 세례자 였습니다.


광야의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바로 내 삶의 자리가, 내 마음의 내적 광활한 공간이 광야입니다. 광야의 침묵과 고독중에 주님을 만남으로 주님과의 깊어지는 우정입니다. 고독을 통해 역설적으로 내적으로 함께의 연대도 깊어집니다. 


현대인들에게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 갈파했던 토마스 머튼입니다. 광야의 침묵과 고독속에서 주님을 만나 깊어지는 주님과의 우정입니다. 사막교부 압바 포멘은 말합니다. “만일 너희가 침묵한다면, 너희는 어디 살아도 평화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겸손의 수련에 항구하십시오.

모든 덕의 어머니가 겸손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 참 사람입니다. 광야 수련의 열매가 겸손입니다. 예수성심성월 겸손과 온유로 요약되는 예수성심의 사랑입니다. 참된 영성의 징표가 겸손입니다.


무지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나를 모르는 무지의 병보다 심각한 마음의 병은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겸손이 무지에 대한 유일한 처방임을 봅니다.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하기 위해 겸손은 필 수입니다. 요한 세례자야 말로 겸손의 대가요, 겸손의 달인입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겸손의 아름다움, 겸손의 매력, 겸손의 향기, 겸손의 감동입니다. 문득 수도원 정자옆에 요즘 피어나기 시작한 보일 듯 말 듯 연한 흰분홍 자귀나무 꽃이 생각납니다. 향기맡고 찾아내는 꽃이 바로 겸손의 향기를 상징합니다. 참으로 겸자무적이라 겸손한 자를 대적하여 이길 자 아무도 없습니다. 역시 사막의 테오도라 암마가 들려주는 예화도 생각납니다.


-“금욕도, 밤샘기도도, 어떤 고통도 구원할 수 없다. 오직 참된 겸손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악마들을 물리친 은수자가 있었다. 그는 악마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너희를 달아나게 만들었느냐?” “단식인가?”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 “밤샘기도인가?” 그들은 말했다. “우리도 잠자지 않는다.” “그러면 무슨 힘이 너를 쫓아냈는가?” 그러자 그들은 대답했다. “겸손만을 제외한 그 무엇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만족하고, 언제나 나누고, 언제나 주고, 언제나 감사합니다. 사실 불행하다 하더라도 감사하길 배우는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의 감사하는 텅 빈 내적공간의 마음 안에 가득한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니 광야인생중 모든 어려움이나 시련을 자기 비움의 겸손의 계기로 삼아 겸손의 수련에 항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찬미의 기쁨으로 사십시오.

찬미의 삶도 보고 배웁니다. 성서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찬미의 사람들입니다. 마리아가 그렇고 엘리사벳이 그렇고 오늘 즈가리야가 그렇습니다. 겸손한 영혼, 감사하는 영혼에게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하느님 사랑의 찬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쓰는 순간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감격에 벅차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바로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신자들이 매일 아침기도 끝무렵에 신바람나게 바치는 즈카르야의 찬미가입니다.


바로 찬미의 사람이 즈카르야입니다. 아마 요한도 즈카르야, 엘리사벳의 하느님 찬미를 보고 배웠음이 분명합니다. 세상에 찬미의 기쁨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찬미의 기쁨이 마음을 순결하게 하고 열정이 샘솟게 합니다. 간혹 수도원을 찾는 이들이 묻습니다.


“수사님은 이 수도원에서 무슨 맛, 무슨 재미, 무슨 기쁨으로 살아갑니까?”


저는 지체없이 대답합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수사님들의 공통적 고백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맛으로, 재미로,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얼마전 읽은 명설교로 금구라 불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마지막 임종어도 감동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 찬미받으소서.” 바로 성인의 전 삶을 요약합니다. 수도원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편 바위판에 새겨진 분도회의 모토, “하느님은 모든 일에 영광받으소서.” 말씀과 흡사한 느낌입니다. 이런 하느님 중심의 삶이 날로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의 우정을 깊게 합니다.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데 모범이 되는 삶의 좌표와도 같은 참 좋은 희망의 표징들인 성인들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요한 세례자는 물론 모든 성인들이 예수님을 영원한 도반으로 삼아 우정을 깊이했습니다. 


주님은 참 고맙게도 성 요한 세례자 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 우정을 깊이할 수 있는 참 귀한 삶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성소에 감사하십시오.

2.광야의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3.겸손의 수련에 항구하십시오.

4.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가십시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시편139,14ㄱ). 아멘.






  • ?
    안젤로 2018.06.24 06:27
    주님 주님이 주신 귀한 삻의 길을 잊지않고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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