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처럼-2015.11.28.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2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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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8.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다니7,15-27 루카21,34-36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루카21,34ㄴ-35)


오늘 복음 중반부의 말씀입니다.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아야 합니다.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이은 연중 마지막 성서주간에도 어울리는 복음입니다. 


우리 요셉수도원은 요즘 연중피정중입니다. 늘 마지막 주간의 연중피정의 위치가 참 적절하고 절묘합니다. 성서주간과 겹치면서 성서의 정점이자 절정인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새롭게 불붙이는 절호의 기회도 됩니다. 특히 올해부터의 피정은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 저녁기도부터 시작하여 11.29일 대림1주일 미사로 끝나며 매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연피정입니다.


그렇습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죽음이 새생명의 시작임과 같은 이치입니다. 배밭농사를 봐도 한 눈에 들어오는 진리입니다. 배수확이 끝나자 마자 배나무 전정剪定으로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수히 쳐낸 크고 작은 가지들로 새롭게 꼴잡힌 나무들을 보며, 매일, 매달, 매년 우리도 삶의 전정剪定을 통해 새롭게 꼴잡아 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여 삶의 전정을 위해 전례력으로 한해의 끝자락에 잡힌 연피정이 참 고맙습니다.


요 몇일 간은 방안과 집무실의 책과 책상 서랍을 정리했습니다. 사제수품후 26년간 거의 빠트리지 않고 써온 강론자료들로 가득한 책장이었습니다. 자신 생각에도 너무도 치열히 살아 온 삶에 저절로 터져나오는 신음이었습니다. 정말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봉헌해 온 미사요, 써온 강론들이요, 살아온 삶이었음을 확인하며 전의戰意를 새로이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의 그날이 아니라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바로 제1독서 다니엘 마지막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 그날의 오늘입니다. 오늘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왕을 모심으로 이미 실현되기 시작한 제1독서 다니엘의 예언입니다.


“나라와 통치권과 온 천하 나라들의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되고,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하리라.”


참 원대하고 고무적인 꿈의 실현입니다. 바로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그분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고 있는 자랑스런 우리의 신원이며 이를 새롭게 확인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거룩한 피정기간이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남한산성’(김훈)을 읽으며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고난의 역사요,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적이요, 이스라엘 나라에 버금가는 하느님 섭리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조선을 침략한 청태조 칸(누르하치)에 대한 묘사가 강렬했습니다.


‘칸은 붓을 들어서 문장을 쓰는 일이 없었으나, 문환관들의 붓놀림을 엄히 다스렸다. 칸은 고사를 끌어 대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칸은 문체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칸은 늘 말했다. “말을 접지 마라. 말을 구기지 마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지극히 간결담백한 꾸밈이 없는 글과 말을 선호한 칸임에 분명합니다. 삶은 글이자 말입니다. 간결담백한 삶에서 간결담백한 말과 글입니다. 삶의 전정을 통해 삶을 간결담백하게 하라 있는 연중 마지막 성서주간에 주님께서 주시는 세가지 가르침입니다.


첫째. 늘 깨어있는 삶(vigilant life)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듯이 늘 깨어있는 삶입니다. 깨어있음은 빛입니다. 깨어있음은 자유입니다. 깨어있을 때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은 물러나 비로소 자유롭고 건강한 영혼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마음을 지키는 최선, 최상, 최고의 방법이 깨어있음입니다. ‘마음이 짓눌리지 않도록’ ‘마음이 물러지지 않도록’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성경번역도 다 달랐습니다만 마음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일인지 깨닫습니다.


둘째, 끊임없이 기도(constant prayer) 하는 것입니다.

저절로 깨어있는 삶이 아니라 끊임없는 기도가 있어 깨어있는 삶입니다. 끊임없는 기도가 목표하는 바도 깨어있는 삶입니다. 비움기도, 향심기도, 반추기도, 명상기도 등 성구를 반복하는 짧은 기도의 수행들 모두가 깨어있는 삶을 목표로 합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의 내공을 쌓는 일이 바로 끊임없는 기도요, 매일의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그날을 앞당겨 오늘 미사중 사람의 아들이신 주님을 직면하는 우리들입니다.


셋째, 항구한 자기 훈련(consistent self-discipline)입니다.

깨어있음도, 기도도 자기훈련입니다. 세상에 훈련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매일 쓰는 강론 역시 자기훈련입니다. 우리의 모든 반복되는 수행이 자기훈련입니다. 하루의 일과표가 우리의 자기훈련의 과정과 요소를 환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 노동, 성경묵상 등 자기훈련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항구한 자기훈련이 있어 깨어있는 삶, 자유로운 삶입니다. 진정 믿는 이들은 주님의 영원한 훈련병들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영원한 훈련병으로 깨어 기도하며 충실히, 항구히, 기쁘게 살게 해주십니다.


“주님,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시편145,15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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