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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연중 제28주일                                                  2열왕5,14-17 2티모2,8-13 루카17,11-19

 

 

 

참 아름다운 삶

-믿음의 삶-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하느님은 참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세상은 어지러워도 하느님은 한결같이 사랑을 베푸십니다. 올해는 우리 요셉수도원에도 근래 보기 드문 풍작으로 배들이 크고 잘 생기고 색깔도 좋고 맛있고 수확량도 많으니 이 또한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탓할 바 사람인 우리들이지 하느님은 전혀 탓할바 못됩니다. 참으로 우리를 감사, 감동, 감탄케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요즘 그림처럼 아름다운 가을 날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한량없이 크고 깊은 사랑은 온통 아름다운 자연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랑할 수록 아름다운 인생이 됩니다. 어제 역시 참 아름다운 날, 산책중 써놓은 글이 있습니다.

 

-“오/사랑스러워라/아름다워라/황홀한 기쁨!

하느님 손수 만드신/살아 있는 그림 성경책/자연!

행복하여라/자연 감상鑑賞시간/자연 관상觀想 시간!

하느님을 뵙는 시간/주님과 함께 걷는/산보散步 시간!”-

 

반면 일간신문 1면 기사가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울분으로 가득 차 있다는 어둡고 우울한 기사였습니다. 일반인 43.5%가 만성적 울분을 경험하고 있다 합니다. 

 

-‘조국 대전’에 참여해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울분을 토하는 이가 수십 수백만이고, 직장에서 쫓겨나 분노한 노동자, 손님한테 갑질을 당하고도 울음을 삼켜야 하는 콜센터 직원, 학력과 계급의 대물림에 좌절하는 특성화고 학생들 사방에서 들려 오는 울분의 목소리입니다.

 

울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울분이 사회의 부당함이나 불공정함을 경험하며 느끼게 되는 감정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때문에 울분에는 분노와 억울함, 실망감과 복수심, 무기력감, 슬픔등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울분, 이것이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왜 여기다 행복을 놔두고 밖에서 찾습니까? 지금 여기 있는 행복을 못보고 밖에서 찾기에 불행한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하느님을 떠나, 자연을 떠나 자초한 불행도 큽니다. 하느님에게서, 자연에게서 멀어질수록 인간성도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궁극의 믿음, 궁극의 희망, 궁극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 버립니다. 불신, 절망, 미움이 우리 마음을 차지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과의 연대가 우선입니다. 환경 탓만 하면 역시 답이 없습니다. 우선 믿는 나부터 내적혁명의 자세로 살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참 나를 회복하여 건강한 영혼, 건강한 육신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참 아름다운 삶-믿음의 삶-’에 대해 나눕니다.

 

첫째, 겸손하십시오.

겸손한 삶이 아름답습니다. 참 믿음은 겸손함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워 질수록 겸손이요 멀어질수록 교만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에 나오는 주인공,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겸손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하느님은 인종, 국적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분이시고 회개한 자, 겸손한 자,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과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나 겸손해진 나아만입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일러 준 대로,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여 요르단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급니다. 그대로 믿음의 겸손, 믿음의 순종입니다. 그러자 나병환자 나아만은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습니다. 피부와 더불어 마음도 치유되어 깨끗해 졌음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요르단강이 상징하는 바 우리 일상의 모두입니다. 그러니 그 멀리 요르단강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일상의 강물에 몸을 담그는 마음으로 살 때 심신의 치유와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굳이 성지순례 안해도 됩니다. 세상 그 어디나 하느님 계신 성지이니 오늘 지금 여기 거룩한 일상의 강물에 심신을 담글 때 심신의 치유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 시간 역시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 미사 은총의 강물에 심신을 담금으로 치유, 구원받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깨끗한 속살은 바로 몸의 치유와 더불어 나아만의 마음도 깨끗해 졌음을 상징합니다. 교만했던 마음도 순종의 겸손으로 깨끗해 졌으니 심신의 치유와 구원입니다. 이어지는 나아만과 엘리사가 주고 받는 대화도 참 아름답습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둘 다 참 멋진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종으로 고백하는, 흙처럼 겸손히 하느님을 섬기겠다는 나아만, 참 순수한 인간입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것은 시리아 사람 장군 나아만이 아니라 이런 순수한 인간 나아만입니다. 

 

일체의 선물을 거부한 대신 참 좋은 선물, 흙을 나아만에게 선물한 셈이니 참 멋진 예언자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입니다. 겸손과 순수는 함께 갑니다. 참으로 겸손할 때 몸의 치유와 더불어 마음도 치유되어 깨끗한 마음, 순수한 마음이 됩니다.

 

둘째, 기억하십시오.

기억과 믿음은 함께 갑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억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늘 잊지 말아야 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영성생활에 망각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습니다. 보고 기억하라 눈에 보이는 온갖 성물들이요 잊지 말고 늘 기억하라 있는 전례입니다. 평생 매일 끊임없이 예수님을, 하느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매일 미사와 시편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 고백의 기도는 필수입니다. 고백과 기억은 함께 갑니다. 우리가 바치는 시편성무일도, 그대로 주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 희망의 고백, 사랑의 고백입니다. 절대 고백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특히 사랑의 고백입니다. 하느님은 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필요하다 느낄 때마다 하시기 바랍니다. 고백따라 가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의 고백은 초창기 교회의 신앙고백문으로 우리 역시 바쳐도 좋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성실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기억할수록 우리도 언제나 성실하신 예수님을 닮아 성실한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갑니다. 

 

셋째, 감사하십시오.

믿음의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의 선물에 저절로 감사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감사요 하느님께 멀어질수록 원망이요 불평불만입니다. 감사 또한 발견임을 깨닫습니다.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감사할 때 기적입니다. 천형이라 칭하는 나병도 감사할 때 치유되어 천복이 됩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천형같은 질병도 천복으로 변합니다. 우선 나병환자 열처럼 우리도 끊임없이 주님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비송을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마치 복음의 나병환자처럼 자비송의 청원기도로 미사를 시작한 우리들, 영적 나병과도 같은 탐욕, 교만, 무지, 두려움, 편견, 이념, 광신도 치유받으리라 믿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말씀에 치유되어 각자 삶의 자리로 복귀한 나병 환자들입니다. 

 

물론 주님의 일방적인 치유의 기적은 없습니다. 주님 말씀의 은총과 나병환자들의 믿음이 만나 일어난 치유의 기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게 됩니다. 치유 받은 열명 나병 환자중 감사와 찬양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던 사람은 단 하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바로 이런 자세로 미사를 드릴 때 영육의 전인적 치유입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표현되는 사마리아 사람의 믿음입니다. 제1독서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겸손한 믿음의 본보기였듯이 오늘 복음의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는 믿음의 본보기입니다. 둘 다 이방인입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열중 한 사람만이 감사와 찬양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왔으니 1/10입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하는 지요. 제가 볼 때 아홉은 반쪽짜리 육신의 치유일 뿐이고 영육의 전인적 치유의 구원을 받은 자는 사마리아 사람 하나라 생각됩니다. 감사와 찬양에서 샘솟는 기쁨이요 온전한 전인적 영육의 치유입니다. 이런 기쁨이 진정 우리의 힘이 됩니다. 바로 다음 말씀이 사마리아 인에 대한 전인적 영육의 치유의 구원선언처럼 들립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사마리아 사람은 물론 이 거룩한 미사에 믿음으로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감사와 찬양의 믿음있어 영육의 온전한 치유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상경의 여정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최종 목적지이자 초월적 거점인 하느님의 자리를 상징하는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온 인류의 영적 중심지임을 상징합니다. 

 

사람 눈에 유다인과 이방인들인 시리아인, 사마리아인의 구별이지 하느님 눈엔, 예수님 눈엔, 예루살렘에서 보면 모두가 한 인류 가족에 속한 누구나 똑같은 인간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종파에 관계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겸손과 감사의 믿음으로 당신을 찾는 모든이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바로 다음 시편 화답송 후렴과 이어지는 시편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겸손과 기억, 감사와 찬양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참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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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10.13 08:38
    사랑하는 주님, 세례성사로 주님을 알았고 견진성사를 통해 주님과 일치를 이룬
    저희들이 오늘 주신 말씀으로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주님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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