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0.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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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희망

-죽음은 마지막이 아닌 새생명의 시작이다-

 

 

 

우리는 방금 부활의 희망과 기쁨을 맛볼수 있는 화답송을 노래했습니다.

“주여 깨어나 당신을 뵈옴으로 내 흡족하리다.”

 

위령성월입니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달이자 우리의 죽음을 생각하며 삶의 각오를 새로이 하는 달입니다. 저는 위령성월을 우울한 회색빛 절망의 달이 아니라 희망의 달, 희망성월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또 성인다운 삶과 죽음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성인성월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참 아름다운,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 짙은 가을입니다. 나라 어디나 아름다운 천국처럼 느껴집니다. 저절로 이런 노년에, 이런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천상의 아름다움을 미리 맛보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상의 풍경이라면 하늘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겠는지요.

 

어제 낮에는 전 서강대 총장이었던 박홍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음을 듣고 참 착잡했습니다. 참 호방하고 넉넉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37년전 서강대 예수회 신학원에서 점심 식사 대접 받았을 때 신부님의 따뜻하고 푸근한 미소와 마음을 잊지 못합니다. 또 지난 한 밤중 깨어나 단체 카톡방을 열었을 때 메시지들도 가슴 아픈 충격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차동엽 로벨토 신부님께서 위독하시답니다. 알릴 수 있는 분들께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요즘 방송에 안 나오셔서 궁금했는데 편찮으셨나 봅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께서 차동엽 신부님을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멘.”

“차동엽 신부님께서 주님 품으로 떠나셨답니다. 신부님의 명복을 빕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미리 알았으면 기도라도 했을텐데. 주님 품으로 가셨으리라 생각되네요.”

 

얼마나 신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제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죽음의 끝은 새 생명의 시작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환이자 주님 안에서 새 삶의 시작입니다. 오래전 가을, 고운 단풍잎들 땅을 가득 덮었던 이 맘때쯤 써놨던 ‘죽음’에 관한 시 2편을 소개합니다.

 

1.-“땅위를 덮고 있는/고운 단풍잎들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귀환이다/해후다/화해다/구원이다

‘수고하였다. 내 안에서 편히 쉬어라’

들려오는/자비하신 아버지의 음성”-1998.11.10

 

2.-“별들이/땅을 덮었다/땅이 하늘이 되었다

단풍 나뭇잎들/하늘 향한/사모思慕의 정情 깊어져/빨갛게 타오르다가

마침내/별들이 되어/온 땅을 덮었다/땅이 하늘이 되었다

오/땅의 영광/황홀한 기쁨---

죽음도 축제祝祭일 수 있겠다.”-2005.11.

 

그렇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도 축제일 수 있습니다. 축제같은 죽음보다 남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더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인생사계로 내 삶의 여정을 압축했을 때 과연 내 나이는 어느 지점에 와 있겠는지요? 시간상 차이일뿐 누구나 인생겨울이 지나면 죽음입니다. 그러나 인생 겨울은 마지막이 아니라 곧 새 생명의 부활인 봄의 시작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저절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게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 항구히 충실히 기쁘게 살 수 있겠는지요. 희망이 답입니다. 부활의 희망입니다. 우리 궁극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희망보다 더 소중한 보물은 없습니다. 하느님 주신 최고의 명약이 희망입니다. 희망 없는 절망의 자리가 바로 지옥입니다. 

 

희망이야 말로 활력의 원천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부활의 희망이 죽음을 넘어 오늘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합니다. 며칠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 마지막 말씀도 생각납니다.

 

“노래하며 걸어갑시다. 삶의 투쟁과 걱정들이 희망이 가져다 주는 기쁨을 앗아가지 않도록!”

 

참 좋은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바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노래보다 희망을 북돋우는 것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주님은 참 좋은 희망과 기쁨의 은총을 선물하십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죽어서는 찬미도 감사도 못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죽음 맞이에는 제일입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희망입니다. 부활의 희망이 현세의 고통과 죽음의 시련을 넘어서게 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마케베오 하권의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에 관한 감동적인 일화가 이를 입증합니다. 몇 대목을 소개합니다.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이 지체들을 하늘에서 받았지만, 그분의 법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들까지도 하찮게 여기오. 그러나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고 희망하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다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

 

세 아들들의 참으로 잔인 혹독한 천인공노할 고문중에 나온 임종어같은 고백입니다. 오늘 독서엔 생략되었지만 나머지 네 형제들과 어머니 역시 이런 꿋꿋한 자세로 순교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대한 부활의 희망이 있어 이런 장엄한 감동적인 순교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에서 샘솟는 부활에 대한 희망이 현세의 온갖 시련은 물론 죽음의 관문도 잘 통과할 수 있게 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런 희망이 있습니까? 희망의 진가는 시련중에, 특히 죽음의 시련중에 드러납니다. 과연 부활의 희망 중에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얼마나 될까요? 참 드물 것입니다. 평상시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사랑을 표현하고 ‘희망 운동’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희망운동입니까?

 

넘어지면 곧장 희망으로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늘 넘어지면 곧장 희망으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바로 삶의 희망 운동입니다. 이래야 죽는 그날까지 믿음의 영적탄력 잘 유지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 희망의 정체를 보여줍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과 내세, 천사와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아주 현세적인 사람들로 종교의 특권 귀족층에 속합니다. 이들이 믿는 성서는 모세오경뿐입니다. 이런 이들이기에 전혀 가능성이 없는 예를 들면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일곱형제들 모두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때 일곱형제의 아내가 되었던 여자는 사후 부활시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참 괴이하고 기분 나쁜 물음이지만 예수님은 친절히 해명해 주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더 이상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비로소 부활 희망의 정체가 환히 드러납니다. 이런 부활은 우리의 상상을 완전히 초월합니다. 지상 삶의 연장이 아니라 완전히 변형된 모습입니다. 모두가 영광스러운 부활이 아니라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된 이들만이 부활입니다.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천사들과 같아져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니 바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일뿐 아니라 지상에서 살았던 모든 성인성녀들의 하느님입니다. 실로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습니다.

 

사람 눈에 산사람들, 죽은 사람들이지 하느님 안에는 모두가 살아있습니다. 이래서 살아 계신 하느님께 끊임없이 생미사와 연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입니다.천상 영혼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는 연령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이요, 살아계신 하느님은 당신 안에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주십니다.

 

이 또한 우리의 부활 희망입니다. 아니 이미 파스카의 신비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이미 생사를 넘어 영원한 삶을, 부활의 희망을 앞당겨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얼마전 수녀원 고백성사 때 원장 수녀의 말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재임중 6섯분 수녀들이 선종하셨습니다. 다들 잘 준비한 아름다운 선종의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정말 공동체에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 같은 선종의 죽음이었습니다.”

 

듣는 순간 ‘아, 여섯분 수녀님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수녀원 공동체 안에, 하느님 안에 영원히 살아 계시구나’ 하는 확신이 들면서 마음이 희망으로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섯 분들 대부분 성사를 드렸기에 선명히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눈에 죽음이지 하느님 사랑 안에, 사랑하는 이들, 사랑하는 공동체 안에 영원히 살아 있는 세상 떠난 이들입니다. 그러니 공동체나 사랑하는 형제들 없이 외롭게 살다가 홀로 떠난 불쌍한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하여 자모이신 교회는 이 불쌍한 이들을 위해 매일의 미사때 마다 기억하며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분명히 ‘세상을 떠난 다른 모든 불쌍한 이들에게’ 하느님 자비의 은총을 청하는 자모이신 교회입니다. 삶은 죽음의 요약이요 죽음은 삶의 반영입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으로 직결됩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 앞에 환히 두고 하루하루 깨어 부활의 희망을 앞당겨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힘을 붇돋우시고 우리을 악에서 지켜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우리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말을 하게 해 주십니다.

 

좋으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희망을 풍성히 선물해 주십니다. 사실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미사 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알렐루야-찬미’로 살다가, ‘아멘 –감사’로 죽음을 맞이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11.10 07:46
    사랑하는 주님, 주님 주신
    이 거룩한 시간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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