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사랑합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2019.11.14.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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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4.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지혜7,22ㄴ-8,1 루카17,20-25

 

 

 

지혜를 사랑합시

-예수님은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제1독서 지혜서의 말씀이 참 풍부합니다. 의인화한 지혜에 대한 설명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참으로 인간 무지의 병에 대한 처방은, 답은 이런 지혜뿐임을 깨닫습니다. 지혜를 사랑합시다. 지혜를 항구히, 열렬히 사랑하여 공부하고 실천할 때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저절로 무지의 병도 치유됩니다. 

 

얼마전 타계한 차동엽 신부의 마지막 글과도 같은 '2019.11-12월호 사목정보' 잡지의 머릿글 “사람들은 내 얼굴에서 예수님을 본다”라는 제하의 서두 내용이 재미있었습니다. 죽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신부님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수의사는 개만 보고도 생면부지 개 주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개가 어딘지 모르게 주눅 들어 있으면, 그 주인이 난폭하리란 것쯤은 우리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개가 구김살 없고 애교가 넘치면 그 주인이 애정을 많이 쏟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개의 행동거지에는 곧 개 주인의 성격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와 예수님의 경우도 그대로 들어 맞는 이야기같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잘 따르며 사랑받고 있는지 믿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날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내 얼굴인지요. 예수님은 하느님의 지혜이자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지혜는 사랑입니다. 지혜와 사랑은 한 실재의 양면입니다. 참으로 항구히 열렬히 예수님을 사랑할 때 지혜로운 사람이, 사랑많은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혜서의 말씀이 모두 탐나지만 일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도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정말 탐나는 지혜의 본성들입니다. 말씀이신 성자 예수님이, 성령이 연상됩니다. 무지의 악에 대한 처방도 이런 지혜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지혜의 강생이 바로 파스카의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하여 예수님을 하느님의 지혜라 일컫기도 합니다. 이런 지혜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예수님 사랑과 일치합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두가지 충고 말씀을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해서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 저기에 있다.‘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닮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밖으로 하느님 나라를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삽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는 바로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권고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하더라도 너희는 결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결코 경거망동, 부화뇌동하지 말고 제 삶의 자리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최종적 성취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이 모두는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가 할 일은 늘 깨어 우리 삶의 자리에 충실하는 것뿐이겠습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현자의 말도 생각납니다.

 

새삼 부정적 비관론자가 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긍정적 낙관론자가 되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생각하는 대로, 보는 대로, 믿는 대로 됩니다. 부정적 비관론적으로 인생을, 세상을 보면 매사 그렇게 보이고, 긍정적 낙관론적으로 인생을, 세상을 보면 매사 그렇게 보입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말씀의 사람들이자 희망의 사람들이고 긍정적 낙관론자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지혜로운 '말씀의 사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희망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고, 하늘에 든든히 세워졌나이다.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은 깨치나이다.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시편119,89.130.13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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