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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18. 사순 제1주일                                                                         창세9,8-15 1베드3,18-22 마르1,12-15



광야廣野 인생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전사戰士’입니다-



광야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평생 삶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삶의 본질은 광야입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힘겹게, 그러나 힘껏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광야인생입니다. 광야 인생, 평생 영적전투를 치러야 할 우리 믿는 이들은 그대로 주님의 전사들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마디가 ‘주님의 전사’라는 말마디입니다. 주님의 전사라는 말마디만 들어도 새삼 힘이 나고 전의戰意가 살아나는 기분입니다. 주님의 전사는 바꿔 말해 평화의 전사, 믿음의 전사, 사랑의 전사라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광야인생-우리는 ‘주님의 전사’다”-로 정했습니다.


예수님 따라 우리는 평생 인생광야여정중 주님의 전사로 살아가게 됩니다. 죽어야 제대인 평생 현역의 영원한 전사로 살아가야 할 우리의 복된 운명입니다. 할 수 있다면 사고사事故死나 병사病死, 객사客死가 아닌, 예수님처럼 싸우다 전사戰死하는 전사戰士였으면 하는 것이 주님의 전사들의 소망일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하는 ‘주님의 여전사女戰士’에 대한 감동입니다. 저는 감히 두 자매들을 주님의 여전사女戰士라 칭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암수술 및 전이, 항암치료로 속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 절망하지 않습니다. 예전과 똑같이 열심히 일하며 한결같이 살아갑니다. 하여 사람들은 제가 건강한 줄 압니다. 주님 은총으로 마음은 평화롭고 기쁘고 희망찹니다. 몸은 불편해도 요즘 가장 행복한 나날들입니다. 남편과 자식들이 제 중심으로 너무 잘 해줍니다. ‘아픈 곳이 중심이다.’란 진리를 실감합니다. 신망애信望愛, 주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보다 더 좋은 약藥도 없습니다.”


이런 요지의 내용을 고백한 두 주님의 여전사 자매들의 고백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전사들에게 내려 주시는 주님 은총의 선물들입니다. 그대로 믿음의 승리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요, 이런 삶이 가족은 물론 지인들에게 무한한 위로와 희망을, 용기와 힘을 줍니다.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라는 대목은 예수님의 전 삶을 요약합니다. 예수님은 평생 광야인생을 사셨고 평생 사탄과의 영적전쟁에서 평생 믿음의 전사로 승리의 삶을 사시다가 십자가의 광야에서 전사하셨으나 부활하시어 영원한 승리의 전사가 되셨습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복음 대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 뒤에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한숨에 읽혀지는 대목입니다. 마태복음, 루가복음의 유혹사화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마르꼬 복음입니다. 너무 짧습니다. 여기서는 사탄의 구체적 유혹이 나오지도 않고 사십일 동안 단식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 루카 복음은 광야기간 끝무렵에 유혹을 받으신 것으로 소개되지만 여기서는 40일 내내 사탄에게 유혹을 받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전 광야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내보졌으니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신 삶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광야여정중 늘 함께 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사탄의 유혹 또한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사탄은 하느님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 따라 살면 사탄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의 전사들에게 사탄은 그대로 헛것들일뿐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통과해 가면서 영적성장과 성숙입니다. 유혹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지만 결코 유혹에 빠지지는 않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중에도 성령 충만한 삶을 사셨기에 들짐승들과 평화로운 공존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천사들도 40일 동안 계속하여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합니다. 여기서 시중은 주로 음식을 드렸다는 뜻입니다. 사탄의 유혹중에도 성령의 보호와 천사의 시중이 늘 함께 했던 예수님의 광야인생임을 보여줍니다.


혹자는 사탄의 유혹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질없는 상상입니다. 유혹이 없으면 영적전투도 없고, 영적승리도 맛볼 수 없습니다. 영적성장도 성숙도 없습니다. 짐승들이 유혹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자유가 주어진 인간이기에 유혹도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위대해 질 수 있는 유혹입니다. 사탄의 유혹이 없으면 더 이상 살아갈 힘도 사라져 무기력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사탄이 있기에 시중드는 천사들도 있습니다. 사탄이 사라지면 동시에 천사들도 할 일이 없어져 사라집니다. 어찌보면 복된 유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유혹을 없애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광야는 마냥 외롭고 쓸쓸한 곳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 안에 천국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미 토마스 머튼은 사막을 사막으로 받아들일 때 사막은 낙원이 된다고 갈파한 적이 있습니다. 역설의 진리입니다. 성령님이 늘 함께 계시고 천사들이 시중을 드는 광야 거기가 바로 낙원입니다.


오늘 복음의 광야는 그대로 낙원입니다. 에덴동산 낙원에도 뱀의 유혹이 있었듯이 현세의 낙원같은 광야인생중에도 사탄의 유혹은 있기 마련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통과해가면서 튼튼해지는 영혼이요 내적성장에 성숙입니다. 모든 것이 보장되고 모든 유혹이 사라졌을 때 무기력하게 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진정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아주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악마는 열심히 살아가는 매력적인 주님의 전사들을 유혹하지, 결코 게으르고 나태한 매력없는 사람들을 시간낭비하면서 유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혹하지 않아도 저절로 망할 것이기에 굳이 유혹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이들에게 유혹도 많겠지만 그만큼 영적성장과 성숙의 계기도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온통 광야의 유혹만 묵상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유혹사화에 곧장 이어지는 갈릴래아 전도 대목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미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겪으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저 멀리 있는, 죽어가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지금 광야인생중에 도래하기 시작한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광야의 유혹이 없었더라면 이런 하느님의 나라 체험도 없었을 것입니다.


광야 유혹의 여정중에 하느님 나라를 사는 데 필수적이 전제 요소가 회개와 믿음임을 통절히 깨달았던 주님이심이 분명합니다. 광야유혹의 초점은 바로 오늘 후반부, 하느님의 나라와 회개와 복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복음의 선포 내용은 무엇입니까?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의 전 삶을 요약합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 하느님 나라를 살 때입니다. 평생 광야인생중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고 궁극의 승리로 이끈 것도 바로 이런 삶의 자세에 있음을 봅니다. 하느님 나라의 비전과 꿈, 희망의 상실보다 결정적인 폐해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비전과 꿈, 희망이 회개를 촉발시키고 복음을 믿게 합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의 생생한 비전과 꿈이 영성생활의 원동력이자 마르지 않는 샘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 비전과 꿈의 상실이 곧장 사탄의 유혹에 떨어지게 합니다. 비전과 꿈이 있어 비로소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의 비전이 우리의 회개를 촉발시키고 더욱 복음을 믿게 함으로 영적승리, 믿음의 승리를 살게 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전사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비전과 꿈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또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의 삶을 통해 믿음을 두터이 하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제2독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사필귀정, 평생 하느님의 전사로 승리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제1독서 창세기와 관련되어 있는 다음 대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옛 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창세기에서 보다시피 노아와 그 가족들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들이 물로부터 구원받았듯이 우리 역시 세례의 물로 구원받았습니다. 제1독서 창세기의 새계약의 표징인 무지개에 대한 설명이 참 은혜롭습니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


계약의 표징, 구원의 표징인 무지개를 보고 기억할 때마다 우리와 연대를 새로이 깊이 하겠다는 하느님의 각오입니다. 창세기의 계약의 표징 무지개와 견줄 수 있는 것이 신약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까?


파스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십자가가 무지개를 능가하는 계약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됩니다. 예수님의 결정적 영원한 승리를 보여주는 새계약의 표징 십자가입니다.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볼 수 있는 영원한 계약의 표징인 ‘십자가와 무지개’는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에겐 샘솟는 힘의 원천인 영원한 비전이자 꿈처럼 생각됩니다. 


하느님의 영원한 전사, 예수님의 승리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결정적 고백입니다. 새계약의 표징이자 구원의 표징은 주님의 십자가를 볼 때 마다 다음 대목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저 위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 쪽에 계신 예수님은 오늘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초월과 내재의 주님이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확약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전사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영원히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광야여정중에도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삶을, 하늘나라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 모두를 당신 성령으로 무장시켜 주시어 광야인생여정중 언제나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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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젤로 2018.02.18 09: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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