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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10.부활 제5주일                                                             사도6,1-7 1베드2,4-9 요한14,1-12

 

 

 

더불어 순례 여정중인 공동체

-중심, 균형, 영성, 본향-

 

 

 

어제 저녁 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과 오늘 아침 성무일도 즈카르야 노래 후렴이 오늘 복음을 요약합니다. 내용도 곡도 은혜롭고 흥겹습니다. 이어지는 방금 부른 미사중 화답송 후렴도 깊은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우리가 당신께 바랐던 그대로, 주여 어여삐 여기심을 우리 위에 내리소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이웃의 도움을 필요로 함을 뜻하는 속담으로 저 역시 실감하는 진리입니다. 어느 스님의 말대로 2주마다 머리 깎는 재미(?)로 삽니다. 정기적인 이발은 나에게 성사聖事와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 토요일 부원장 수사와 서로 이발을 해주는데 이발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도저히 진행할 수 없자, “도미니코, 이리 와봐!”, 소리치자 수사님이 쏜살같이 달려와 도와 줘 간신히 이발을 끝냈습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체험을 통해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형제들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생각해보면 고마운 점이 한 둘이 아닙니다. 각방마다 형제들이 있기에 옆 형제들을 생각하면 자면서도 든든한 생각이 듭니다. 외롭다거나 고독하다거나 두렵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젠 완전히 편한 수도가정공동체가 되어 휴가를 잊고 산지 수십년이 됩니다. 딱히 갈곳도, 가고 싶은 곳도, 특별히 만날 분도, 만나고 싶은 분도 없기에 그저 수도원 공동체내에 정주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자주 쓰는 말입니다만, 밖에서 볼때는 평화로운 천국같아도 내적으로는 영적전투 치열한 최전방이라 함이 맞습니다.

 

안주가 아닌 정주의 공동체입니다. 무기력한 안주의 공동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하느님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공동체의 배처럼, 더불어 순례 여정중의 역동적 공동체입니다. 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시 한연이 이를 잘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공동체 생활은 답이 없습니다. 공동체 생활 자체가 참 쉽지 않은 본질적이자 필수적인 수행입니다. 함께 사는 것이 고행이자 보속이요 치유이고, 함께 끝까지 살았다는 자체로 성인이요 구원입니다. 어려움도 많지만 참으로 공동체 형제들에 대한 고마움은 끝이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체험하는 진리입니다. 이런면에서 어디서 살든 이렇게 함께 사는 이들은 수도자요 수행자라할 수 있습니다.

 

하여 하루하루, 주님의 전사로,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형제로 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영성만이 답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자각에서 탄생된 제 자작 좌우명시입니다. 교황님의 어제 강론에 공감했습니다. 교회공동체에 관한 내용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위로와 세상의 박해중에 앞으로 나아간다. 교회가 어려움이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악마가 잠잠하다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부유와 편안함속에 안주해 가면서 조용히 부패해갈 때 악마는 할 일이 없어 잠잠할 것입니다. 참으로 문제있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요, 끊임없이 어려움을 타개해 가면서 살아 있는 영적 진보의 순례 여정중의 공동체가 됩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더불어 순례 여정중인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세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중심입니다.

파스카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제자 공동체를 보십시오. 제자들의 공동체에 예수님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평생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비단 수도자들만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의 중심에 파스카의 예수님 살아 현존하십니다. 필립보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하느냐?”

 

평생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데, 예수님을 뵙는 것이 아버지를 뵙는 것인데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참으로 항구하고 충실해야 함을 봅니다. 저는 참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분들을 통해 예수님을, 아버지를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중심이 되시는 파스카의 예수님의 정체는 다음 말씀을 통해 분명히 드러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참으로 우리 삶의 중심이신 예수님을 따라 배우고 섬기며 닮아갈 때 우리는 탈선하여 방황하는 일 없이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께 돌아감으로 성공적 더불어 순례여정이 될 것입니다.

 

둘째, 균형입니다.

균형잡힌 삶이듯 균형잡힌 공동체입니다. 모든 어려움의 문제는 삶의 중심과 균형을, 질서를 잃음에서 발생됩니다. 하여 매일 삶의 중심과 질서, 균형을 잡아주는데 매일미사가 그리도 중요합니다. 매일미사가 아니더라도 하루의 시작전 제 ‘행복기도’를 바쳐도 유익할 것입니다. 

 

공동체의 불화나 어려움은 공동체의 중심과 질서, 균형이 깨졌을 때 발생합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공동체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식량 배급 문제로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히브리계 유다인들 사이에 분열이 생긴 것입니다. 일곱 봉사자를 뽑아 기민하게 문제를 해결해 공동체의 중심과 질서, 균형을 회복한 열두 사도의 분별력의 지혜가 참 놀랍습니다. 이 또한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열두사도의 기도와 말씀 봉사. 일곱 부제의 식탁 봉사로 역할을 분담하여 균형과 질서, 공정을 회복함으로 비로소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번영입니다. 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입니다. 문제 없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들은 분별력의 지혜로 해결하여 균형을 찾도록 해줘야 할 것입니다.

 

셋째, 영성입니다.

가장 중요합니다. 영성없는 공동체는 사상누각, 즉 모래위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여 평생, 매일, 끊임없이 성전에서 미사와 시편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베드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영적 공동체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선택된 값진 모퉁이돌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 살아 있는 돌이 되어 영적 집의 공동체를 이룸은 물론 거룩한 사제단이 되어 매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참으로 영적 집의 공동체 건설에 미사은총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고무적이요 영적 공동체에 속한 우리 신원을 분명히 자각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적 집인 주님의 공동체에 속한 우리의 모든 공동전례활동은 물론, 우리의 모든 삶이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속으로 이끌어 주신 주님의 위업을 선포하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더불어 순례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지금 여기가 궁극의 정주처가, 안식처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궁극의 희망은 아버지의 집, 천상 본향입니다. 바로 이곳을 향해 순례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제자들의 불안을 불식시키는 다음 주님의 말씀이 궁극의 미래와 희망을 보여줍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 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아, 바로 믿는 이들의 선종善終의 죽음은 이렇게 아버지의 집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파스카의 예수님은 동시에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미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지금 여기서 아버지의 나라를 앞당겨 살게 된 우리들이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일편단심 사랑하고 믿는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의 집에서의 천상 삶을 앞당겨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게 해 주십니다.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루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시편33,18-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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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0.05.10 07:24
    교회는 하느님의 위로와 세상의 박해중에 앞으로 나아간다. 교회가 어려움이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악마가 잠잠하다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교황님의 강론중에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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