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같은 사람이 됩시다 -경외fear와 섬김serve- 여호24,14-29 마태19,13-15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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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17.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여호24,14-29 마태19,13-15

 

 

 

어린이 같은 사람이 됩시다

-경외fear와 섬김serve-

 

 

 

방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건져 올린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어느 유명 인사의 평범하나 간결한 말마디입니다. 얼마전 수도형제와 대화중 재미있는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주교님들 강론은 건질 것이 없어요.”

 

국을 먹다 보면 건질 것이 없는, 건데기가 없는 멀건한 국처럼 강론도. 책도, 대화도, 신문도, 사람도 건질 것이 없으면 참 허전합니다. 건질 것을 찾아 부지런히 헤매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건질 것이 풍부한 영적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매력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어 생각나는 몇가지 예화입니다. 마침 어제 면담성사가 끝난 후 자매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은 아들이 하나지요? 어머니는 몇남매를 두셨나요?”

“일곱입니다. 80대 중반에 돌아가셨어요. 참 성녀같은 어머니셨어요. 나는 애 하나인데도 쩔쩔매는 편인데 어머니는 늘 집안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으셨고, 자녀들 뒷바라지에, 매끼 식사준비에, 빨래, 집안일등 눈코 뜰새 없었어요.”

 

마침 남편과 함께 왔고 이름도 물었더니 ‘성덕’이라 하기에 “아 형제님은 성덕에 도달한 분입니다!”했더니 ‘거룩할 성聖’이 아니라 ‘이룰 성成’이라 했고 이어 다시 덕담을 드렸습니다.

 

“성덕成德에 성덕聖德이니 형제님의 성소입니다. 그러니 성인이 되십시오!”

 

정말 인간 진보가 아니라 인간 퇴보와 퇴행이 현세의 추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참 편리해진 세상인데 사람들은 날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약해 져 가는 것 같습니다. 요즘 노트북을, 휴대폰을, 세탁기를, 내비게이션을 보면 예전 이들이 없었던 시대에는 어떻게 생활했었나 상상이 안 됩니다. 

 

저 역시 사제서품후 2001년도 까지 12년 동인 매일 강론을 참으로 줄기차게 손으로 썼고 또 제본하여 정리해놓은 것이 책장 가득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쓸 수 있겠는지 지금 생각하면 역시 상상이 안 됩니다. 또 어제 우울증으로 요양원에 잠시 거주하는 분을 동료 자매들이 저에게 면담차 안내했습니다. 웃음이 많고 명랑해 보였지만 고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돌아간 후 충격으로 잠도,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내다 보니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때로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 생각도 들고 두렵고 불안하고 외롭고 삶의 의욕도, 의미도 못 느낍니다.”-

 

성가책을 드리며 좋아하는 성가를 부르길 권했더니 자매님은 기꺼이 두 편을 고운 목소리로 불렀고, 가라 앉은 마음이 떠오르는 듯 기뻤다 고백했습니다.

 

“아, 정말 영혼이, 정신이 튼튼해야 합니다. 요양원에는 성가책이 없다니 그 성가책을 가지고 가셔서 매일 외롭고 불안하고 두려울 때는 자주 마음과 감정을 담아 성가를 부르며 주님을 찬미하세요. 나눠드린 세 기도문도 꼭 소리내어 읽기 바랍니다.”

 

조언 후 강복을 드렸고 ‘말씀 처방전’에 “웃어요!” 붉은 색 스탬프도 선명하게 찍어 드렸습니다. 정말 자매님은 활짝 웃었습니다. 이어 저녁 성무일도 공동전례 찬미기도에 참석한 후 떠났습니다. 가톨릭 신자들만큼 강복을 많이 받는 분들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강복을 청했고 예수님은 기꺼이 강복을 주시고 떠나십니다. 영혼 건강에 마음 활짝 열고 강복받는 것보다 더 좋은 영약靈藥은 없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것도 강복입니다. 면담성사후든, 산책중 만나는 이든, 수도원을 방문한 이든, 가능한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강복을 주려 노력합니다. 매일 수차례 수도원 경내를 산책하면서도 하늘에, 산에, 밭에, 배열매들에 강복을 줍니다.

 

날로 약해져 가는 영력靈力이요 체력體力입니다. 영혼이, 정신이 건강하고 튼튼해야 육신도 건강하고 튼튼해 집니다. 어떻게 건강하고 튼튼한 영혼으로, 정신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복음이 답을 줍니다. 어린이처럼 사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 세월 지나도 늘 새로워야 하는 동심童心입니다. 어제 50대 후반의 지인이 방문했기에 “아, 형제님은 청년같습니다!” 덕담을 드렸더니 무척 기뻐했습니다. 순수하게 맡은 일에 정진하는 분이시라 동안童顔에 동심의 형제였습니다.

 

어린이는 단순하고 열려있고 유연하고 신축성이 좋고 의문도 많아 배우기를 즐겨 합니다. 또 편견에서 자유롭고 변화의 적응에 능합니다. 한마디로 탄력이 좋습니다. 정말 나이들어도 영적탄력이 좋아 여전히 신망애信望愛, 진선미眞善美의 삶을 살아가는 매력적인 이들이 어린이같은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어린이를, 어린이같은 이들을 사랑하셨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 자신이 ‘어린이 영성’을 그대로 체화體化한 분입니다. 다음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그러니 회개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동심의 어린이성의 회복입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로 제1독서 여후수아서가 답을 줍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비롯한 오늘 제1독서의 주인공, 여호수아는 물론 성서와 교회의 모든 성인들이 어린이같은 분들이셨습니다. 주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어린이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현대판 이교의 잡신들이나 우상들이 아닌 갈림없는 하느님 중심의 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항구하게 하느님만을 경외하고 섬길 때 참으로 건강하고 튼튼한 영혼에 정신이요 어린이같은 영성입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것은 세상 잡신들이나 우상을 섬김으로 마음이 갈릴 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무수히 나오는 ‘섬긴다’라는 말마디입니다. 거푸 백성들의 확인과 다짐을 받아내는 여호수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섬김의 영성이요, 권위가 있다면 섬김의 권위요,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뿐입니다. 여호수아는 섬김의 삶에 전념하며 어린이처럼 살다가 죽으니 역시 모세의 후계자 답게 모세처럼 멋진 삶에 멋진 죽음입니다. 여후수아는 백성을 저마다 상속 재산으로 받은 땅으로 돌려 보낸 후 거룩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주님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죽었다. 그의 나이는 백열 살이었다.”

 

참 거룩하고 아름다운 해피엔딩의 여호수아의 죽음입니다. 어린이처럼 섬김의 삶에 정진했던 사필귀정의 행복한 죽음입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오늘로서 여호수아는 끝나고 이제 다음 주 부터는 판관기의 시작입니다. 

 

오늘은 우리 수도원의 고故 정훈만 세례자 요한 수사의 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어린이처럼 살다가 농장일을 하던중 불의의 사고로 무수히 아름다운 추억들을 남기고, 2013년 8월17일 오늘과 똑같은 토요일에 하늘 나라에 간 정훈만 세례자 요한 수사입니다.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사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늘 새롭게 어린이처럼 섬김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도록 도와 주시어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주님,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시편16;8.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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