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사랑합시다 -분별의 잣대는 예수님-2019.9.6.연중 제22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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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6.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콜로1,15-20 루카5,33-39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사랑합시다

-분별의 잣대는 예수님-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베네딕도 성인도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 했습니다. 어제는 오늘 말씀 묵상중 내내 예수님 사랑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30년전 제 사제서품식때 입당성가(445)와 더불어 제 좋아하는 성가(61)가 생각났습니다.

 

-“내 한평생을 예수님 안에/내 온전하게 그 말씀 안에

내 결코 뒤를 바라봄 없이/그분만을 따릅니다.”-445장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수는 없네/이 세상 부귀영화와 권세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예수의 크옵신 사랑이여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세상 명예 다 버렸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수는 없네/세상 어떤 것과도.”-61장

 

어제 저녁은 참 행복했습니다. 얼마전(8.11) 새벽 저녁놀에 이어 거의 한달만(9.5)에 참 많은 지인들에게 참 좋은 저녁 무지개를 선물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하늘길 예수님을 뵙는 듯 반갑고 행복했습니다. 그 시간은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었지만 저는 고백성사차 좀 일찍 나왔고, 하여 6:50분쯤 참 황홀한 무지개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여 “사랑의 무지개 선물입니다” 메시지와 더불어 참 많은 분들께 하늘길 무지개를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어제 저녁에 저는 하느님께 하늘길 무지개 선물과 더불어 사랑하는 손님 거주 사제에게 추석을 앞두고 뜻밖의 청포도 사탕과 볼펜이란 참 소박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마치 예수님께 선물을 받듯이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사랑의 무지개 같은 하늘길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입니다. ‘사랑’ 대신 ‘예수님’을 넣어 분별의 잣대는 예수님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예수님은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했겠는가 심사숙고해 보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닮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때 예수님을 닮아 올바른 분별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예수님을 한결같이 사랑할 때 관상의 선물에 마음의 순결이요 더불어 올바른 분별의 지혜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때 예수님을 닮아 지혜로워지고 자유로워집니다. 사랑-지혜-자유가 하나로 이어짐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단식논쟁과 새것과 헌 것’의 비유에서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단식의 부정이나 거부가 아니라 때에 맞는 단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단식은 사랑의 표현일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이자 겸손입니다. 평상시는 주님과 함께 축제처럼 지내고 신랑이신 주님을 빼앗길 날이 올 때에 단식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날에 단식하면 무난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단식의 원리를 명심하는 것입니다.

 

“너는 단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이어지는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도 분별의 지혜를 지니라는 말씀입니다. 새 부대의 상황에 맞도록 생각과 말과 행동도 새 포도주 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묵은 것이 좋다 합니다. 

 

여기서 옛것인 묵은 포도주는 유다교의 관습을, 새것인 새 포도주는 복음을 상징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이념이나, 습성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편견의 옛것들은 얼마나 바뀌기 힘든지요. 새 부대의 상황에 늘 새포도주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위해서는 예수님을 늘 새로이 만나 닮아 변화되는 길뿐이 없습니다.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통해서, 향해서 창조되고 구원된 세상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때 정신은 하늘처럼 높아지고 영혼은 하늘처럼 깊어지며 마음은 대지처럼 넓어지고 낮아질 수 있습니다. 내면은 한없이 비워지면서 예수님처럼 텅 빈 충만의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그리스도 찬가’는 얼마나 고무적인지요.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상이자 우리 인간의 원형입니다. 바로 우리가 평생 닮아가야 할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매주 수요일 저녁 성무일도 때 찬미가로 바치는 내용입니다. 길다싶지만 다시 깊이 묵상하시라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의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서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켜 주셨습니다.”-(콜로1,15-20)

 

너무 깊고 아름답고 풍부하여 전문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사랑하고 고백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세상 모두가 이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존속합니다. 황송스럽게도 바로 이런 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는 거룩한 미사시간이요 날로 주님 사랑을 닮아 지혜로워지고 겸손해지며, 자비로워지고 자유로워지는 우리들입니다. 끝으로 제 자작 ‘예닮기도문’ 일부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 예수님!/당신은 저의 모두이옵니다

제 생명, 제 사랑, 제 기쁨, 제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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