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안식처(安息處)이다 -몸과 맘은 하나; 온전함(wholeness)이 거룩함(holiness)이다-2021.1.15.금요일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들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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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5.금요일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들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 기념일                 

히브4,1-5.11 마르2,1-12

 

 

 

예수님이 안식처(安息處)이다

-몸과 맘은 하나; 온전함(wholeness)이 거룩함(holiness)이다-

 

 

 

어제도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위로 아래로 좌우사방으로 남녀노소할 것 없이 온통 몸과 맘이 아픈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참으로 복잡한 세상 건강한 몸과 맘으로 인생 마치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세상이 복잡하고 혼란하고 살기 힘드니 죄도 많고 병도 많은 것 같습니다.

 

죄와 병은 함께 갑니다. 마음과 몸은 하나요 함께 갑니다. 절대 죄따로 병따로가 아니듯, 맘따로 몸따로가 아닙니다. 맘과 몸이 안식처에서 쉬어야 하는데 제대로 쉬지 못하니 죄도 병도 많습니다. 참으로 아무리 살펴보고 들여다 봐도 쉴곳이, 안식처가 없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고향이. 가정이, 어머니들이, 보금자리 안식처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미 그 역할을 상실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제 좋아하는 매4주 수요일 저녁기도 시편139장 일부가 생각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 채십니다.

당신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제가 하늘로 가도 거기에 당신에 계시고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또한 거기에 계십니다.”-

 

답은 나왔습니다. 안식처를 찾을 필요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나 계신 주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습니다.”(시편90,1), 고백 그대로입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 주제도 안식처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그러니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언제나 오늘 지금 여기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 안식처입니다. 안식처인 예수님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몸과 맘이 치유되어 하나가 됩니다. 모든 몸의 병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등 서로간 ‘균형(balance)과 조화(harmony)’가 깨질 때 무질서와 혼란으로 생기는 병입니다. 사실 많은 병들이 ‘심신이 연관되어(psychosomatic)’ 생깁니다.

 

성서에서는 관계의 파괴가 죄라고 합니다. 그러니 관계의 회복을 통해 균형과 조화를 찾을 때 비로소 몸과 마음이 온전해지고 거룩해집니다. 온전함(wholeness)과 거룩함(holiness)은, 건강(health)과 치유(healing)는 같은 뿌리를 지닙니다. 그러니 우리 믿는 이들의 유일한 참 안식처인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이 온전함과 거룩함, 건강과 치유의 지름길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오늘 지금 여기가 안식처입니다. 예수님 친히 언제나 우리 모두를 안식처인 당신께로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바로 오늘 오늘 복음의 일화를 통해 그대로 입증됩니다.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동료들의 아름다운 우정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궁즉통窮即通, 사랑이 지혜라 동료들은 예수님께 접근할 길이 없을 때 눈이 열려 지붕에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 친구에 대한 동료들의 사랑에 이어 그들의 당신께 대한 믿음을 보시고 감동하시어 즉시 중풍병자 죄의 용서를 선언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바로 관계 회복의 선언으로 좌우간 모두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혼자 구원이 아니라 더불어 구원입니다. 중풍병자는 친구들과 좋은 우정관계를 지녔기에 참 안식처인 주님을 만나 우선 죄의 용서를 선언 받습니다. 중풍병자는 친구들과의 우정 관계에 이어 예수님과의 관계도 회복되니 영혼의 온전한 치유입니다. 제가 볼 때 중풍병자의 동료들 역시 중풍병자 동료 덕분에 동시에 죄의 용서와 더불어 영혼의 치유를 체험했을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어지는 결정적 육신의 치유 선언입니다. 영혼이 치유되니 저절로 육신의 치유요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고백합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통쾌한 장면입니다. 새삼 우리의 건강과 치유는, 온전함과 거룩함은 참 안식처인 예수님께 달렸음을 봅니다.

 

참 안식처인 예수님과 하나되어 사는 이들 역시 곤궁한 이웃들에게 주님의 안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믿는 이들의 궁극 목표이고 성인성녀들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오늘은 우리 분도수도자들의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들인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 기념일입니다. 

 

그레고리오 대 교황의 ‘베네딕도 전기’ 제7장에 나오는 두 어린 제자들에 관한 참 아름다운 일화가 생각납니다. 멀리서 영안靈眼으로 물에 빠져 물살에 허우적대는 쁠라치도를 본 사부 성 베네딕도는 제자 마오로에게 즉시 구출할 것을 명령합니다.

 

“마오로 형제여, 빨리 달려가 보시오. 물을 길으러 갔던 그 아이가 호수에 빠졌습니다. 물살이 벌써 그를 멀리 휘감아 갔습니다.”

 

마오로는 사부의 강복을 받고 지체없는 순종으로 호수위를 달려가 플라치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재빨리 끌어냅니다. 전광석화,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랑과 믿음의 기적입니다. 마오로의 쁠라치도 동료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사부 베네딕도의 대한 믿음의 기적입니다. 

 

여기서 참 아름다운 일은 베네딕도와 제자 마오로의 겸손입니다. 베네딕도는 마오로의 순종의 덕에 돌렸고, 마오로는 장상의 명령에 따랐을 뿐 이라며 사부 베네딕도에 공을 돌립니다. 그러자 구출된 쁠라치도가 서로 우호적인 겸손의 경쟁에 심판자로 나섭니다. 다음 쁠라치도의 고백에서 베네딕도는 이미 주님과 일치의 경지에 이르러 제자들의 참 안식처 역할을 했음이 잘 드러납니다.

 

“제가 물에서 끌려나올 때 제 머리 위에서 아빠스님의 모피 자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빠스님이 친히 저를 물에서 끌어 내신 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바로 쁠라치도를 구한 마오로는 성 베네딕도의 현존, 파스카 예수님의 현존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 버금가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일화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과 하나되어 제자들에게 참 안식처 역할을 한 성 베네딕도였음을 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과 하나되어 온전하고 거룩해진 우리 모두를 곤궁한 이웃들의 안식처로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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