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하나? -신뢰, 꿈, 시야, 한결같음-2021.3.5.사순 제2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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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5.사순 제2주간 금요일 

창세37,3-4.12-13ㄷ.17ㄹ-28 마태21,33-43.45-46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신뢰, 꿈, 시야, 한결같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요즘 작년에 이어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묻게 되는 절박한 공통적 질문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이미 어제 오늘 말씀을 보면서 택한 강론 제목입니다. 복음의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의 주인공인 예수님과 제1독서 ‘이집트로 팔려가는 요셉’의 이야기에서 착안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이 흡사 수난당하는 예수님의 예표처럼 생각됩니다. 다음 이어지는 요셉의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드로 끝나고 예수님 역시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해피엔드로 끝나는 말그대로 궁극엔 ‘하느님의 승리’로 끝나는 두분의 인생 여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웁니다. 본격적 가르침에 앞서 몇가지 예화를 나눕니다. 

 

1.3월5-8일 까지 역사적 이라크 사목 방문 여정에 오르게 된 교황님의 메시지가 감동적이었습니다. 문득 1968년 아시아 순례 여정에 올랐던 토마스 머튼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형제애와 화해를 찾아 평화의 순례자로 왔습니다. 친애하는 이라크의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며칠동안 나는 마침내 여러분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를, 여러분의 얼굴을 보기를, 아주 오래되고 특별한 문명의 요람이었던 여러분의 땅을 방문하기를 갈망해 왔습니다.”

 

흡사 교황님의 3박4일 이라크 방문 여정이 교황님의 삶의 여정을, 평화의 여정을 압축한듯 보입니다.

 

2.어제 면담고백성사차 방문했던 마리 레몽 수녀님의 전달 말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여주에 노수녀님들 귀는 거의 들리지 않아, 매달 보내주는 신부님의 강론집을 그렇게 기다리고 좋아합니다. 어제도 ‘고맙다’는 인사 전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듣는 순간 아무리 나이들어 노화로 신체 기능은 떨어져도 결코 늙지 않는 하느님 찾는 열정의 영혼임을 깨닫습니다. 영혼 깊이 각인된 살아있는, 결코 늙지 않는 하느님 향한 ‘그리움’임을 깨닫습니다. 아니 세월 흘러 죽음에,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더 간절해지고 절실해 지는 주님 향한 그리움에 열정같습니다.

 

3.놀랍고도 신비로운 실화입니다. 국내 수족관에서 부화해 제주에서 방류된 푸른바다거북이 석달간 약 3850km 거리를 이동해 거북이들의 고향, 주 서식지인 베트남 해안까지 간 사실이 확인되었답니다(2.24.경향). 또 한 경우는 국내 번식 여름철새인 ‘벙어리뻐꾸기’의 월동경로가 확인되었다합니다(경향.3.3).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 동부까지 하루 43km, 109일 동안 무려 4691km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놀랍고도 신비로운 기사였습니다. 말그대로 목숨을 건 사투死鬪와도 같은 새들의 이동 여정임을 봅니다. 하느님 심어주신 본능 깊이 각인된 고향 찾는 동물들의 DNA처럼 우리 영혼 깊이 각인된 본향인 하느님 찾는 영혼의 DNA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하느님 찾는 여정중인 우리들에게 오늘 예수님과 요셉의 인생 여정은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을, 깨우침을 줍니다.

 

첫째는 신뢰입니다.

예수님이나 요셉의 자질중 우선적인 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절대적 신뢰였습니다. 백절불굴의 인생여정을 가능하게 한 두분 삶의 원동력은 이런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이고 항구한 신뢰였습니다.

 

둘째는 꿈입니다.

꿈있어야 살아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꿈을 꿉니다. 꿈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요, 꿈이 사라진 곳 바로 거기가 죽음이요 지옥입니다. 인간 품위를 지켜주는 것도 꿈입니다. 몸은 노쇠해가도 하느님 찾는 꿈은 날로 생생해야 할 것입니다. 요셉은 꿈쟁이라 불릴 정도로 늘 하느님을 꿈꿨던 사람이었고, 예수님 또한 평생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며 살았던 분입니다.

 

셋째는 시야입니다.

두분은 결코 꽉막힌 우물안 개구리가, 자폐의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늘 하느님을 꿈꿨던 참으로 깊고 넓은 영적 시야를 지녔던 분들입니다. 영적고공비행靈的高空飛行의 여정처럼 참으로 하느님을 닮아 넓고 깊은 영적시야를 지닌 분들이었습니다. 수난과 죽음 넘어 부활에 까지 열려 있었던 예수님의 영적 시야였고, 이집트에서의 성공으로 금의귀향錦衣歸鄕까지 내다봤을 요셉의 영적 시야였음이 분명합니다. 이 또한 절대적 주님 신뢰에 대한 은총의 선물이겠습니다.

 

넷째는 한결같음입니다.

두분은 결코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좌절挫折하지도 않았고 절망絶望하지도 않았고 끝까지 기다리고 인내忍耐하며 하느님의 꿈을 실현시켰습니다. 또 삶의 여정에서 오는 온갖 시련중에도 한결같이 제자리에 충실하셨으니 하느님 섭리의 은총이 늘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의 온갖 박해를 한결같이 견뎌내며 승리의 여정을 살았던 요셉이요,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께서도 온갖 박해와 수난을 묵묵히 견뎌냈기에 부활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입을 빌려 초대 교회 신자들의 시편에 근거한 다음 고백은 예수님과 요셉뿐 아니라 파스카의 신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승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결론이요 평생 화두로 삼아 묵상할 구절입니다.

 

“집짓는 이들이 내 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시편118.22-23)

 

이어지는 시편도 참 좋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구절로 하루하루 이렇게 승리의 기쁨, 파스카의 기쁨을 고백하며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주여, 우리를 살려 주소서

아아 주여, 우리를 잘 살게 해 주소서.”(시편118,24-25)

 

새삼 예수님과 하나된 우리 하나하나가 수도공동체의 모퉁이의 머릿돌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섭리에 대한 절대적 신뢰, 하느님을 꿈꾸는 삶, 깊고 넓은 영적시야를 지니고 한결같이 살아갈 때 승리의 여정에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승리의 인생 여정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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