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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16.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창세4,1-15.25 마르8,11-13


                                                                      하느님 마음 헤아리기

                                                                         -아담의 일생-


꿈깨니 현실입니다. 아, 강론을 잘 완성하고 흐뭇해 했는데 잠깨니 꿈이었습니다. 다시 강론을 써야 하는 현실입니다. '꿈이냐 생시냐?'하며 살을 꼬집어 확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꿈과 현실의 차이가 애매합니다. 한생을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비유하기도 하고 한생을 뒤돌아보면 꿈같은 인생같다고도 합니다. 도대체 꿈과 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꿈처럼 살기에는 너무 아까운 현실입니다.


하느님의 꿈을 살 때 진정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하느님만이 진정 꿈과 현실을 분별하는 잣대입니다. 하느님 빠진 인생,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환상(幻想)을 삶인양 착각합니다. 진정 살아있음의 표지는 하느님 의식, 하느님 믿음뿐입니다. 성서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느님 꿈의 사람들이자 현실적 인간이었습니다. 환상을, 헛된 꿈을 살지 않고 하느님 현실을 살았습니다. 고통과 아픔, 슬픔의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3번 통독했습니다.“

자신있게 말하는 제자에게,

"그래, 그러면 성경은 너를 몇 번 읽었느냐?“

스승의 물음에 답을 못했다는 제자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하느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하느님이 내 마음을 읽도록 하는 것이 바로 렉시오디비나의 요체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진정 살아있는 현실적 삶입니다. 내 중심의 삶은 환상이요 진정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창세기에는 하느님의 마음이 환히 드러납니다. 참 무능(無能)한 하느님입니다. 자비하기에 무능인 것입니다. 악의 신비 앞에 속수무책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왜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면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없었나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아담에게 '너 어디 있느냐?' 묻던 힘없는 하느님은 또 카인에게 동생 아벨의 소재를 묻습니다. 분명 하느님은 울먹이며 물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픔이 감지됩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뻔뻔한 카인의 모습, 이 또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은 무죄한 이들의 죽음에 대해 오늘도 끊임없이 이들의 소재를 우리에게 묻습니다. 아, 이런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이것저것 달라고 축복만 청하지 말고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 도와드리는 것이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실 성서의 모든 예언자들이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마음을 참으로 헤아렸던, 하느님 마음에 정통했던 분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한량없습니다. 살인자 카인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하느님입니다. 왜 사형제도가 잘못된 것인지 잘 드러납니다. 살아서 보속하도록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살해될 위험성을 호소하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신 하느님의 자상한 배려가 놀랍습니다. 오, 하느님의 마음은, 인내의 사랑은 얼마나 깊고 깊은지요. 이런 하느님의 마음을, 아픔을, 인내를 헤아리는 일이, 하여 이런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것이 우리 영적 삶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아담의 일생이 참으로 위대합니다. 이심전심, 자신의 아픔을 통해 하느님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헤아렸을 아담입니다. 자기 운명에 끝까지 충실했던 아담입니다. 자식들의 칼부림으로 인해 아벨이 큰 아들 카인에게 살해 되었을 때 아버지 아담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겠는지요. 이 모두를 묵묵히 참고 받아들여 끝까지 살아낸 아담의 일생이 참으로 위대합니다. 가끔 힘들어 하는 부부들에게 한 조언도 생각납니다.


"잘 살고 못 살고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렵고 험한 인생, 그저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냈다는 자체가 위대한 일이요 구원입니다. 하느님은 더 이상 묻거나 무엇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늘 창세기의 아담을 보십시오. 하느님을 믿었기에 이렇게 현실적 사람입니다. 진정 영적일 수록 현실적입니다.

'아담이 다기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합니다. 하느님을 믿었기에 이 엄청난 아픔의 슬픔을 겪어낼 수 있었던 아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아픔의 상처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비극의 아픔을 감당하고 꾿꾿히 살아 낸 아담의 위대함이 감동입니다.


'셋을 낳은 다음, 아담은 팔백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년을 살았다.'(창세5,4).

하느님을 참으로 믿었기에, 하느님 꿈이 늘 생생했기에 모든 아픔과 슬픔을 이기고 이렇게 현실적 인간으로 항구히 천수를 누린 아담임을 깨닫습니다. 진정 위대한 신앙의 사람, 현실적 인간 아담입니다. 이런 아담의 대를 잇는 영적 계보가 내일 등장할 주인공, '노아'입니다.


사람과 보조를 함께 하는 하느님 인내의 사랑이, 기다림이 놀랍습니다. 사람이 철이 나 하느님의 마음을 깨닫기는 얼마나 힘든지요. 마침내 하느님 마음에 정통한 예수님이 등장합니다만 철부지 사람들의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인데 눈이 멀어 보지 못하니 별난 표징을 요구합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 마음을 헤아지리 못해 표징을 보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에게 깊이 탄식하시며, 그들을 버려둔 채 홀연히 떠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 마음을 헤아려 눈만 열리면 모두가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이요 기적인데 하느님 마음에 깜깜하니 아무 것도 보일리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 하느님의 꿈을 현실화하며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시편31,20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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