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3. 연중 제4주간 화요일(뉴튼수도원 85일째)                                                      히브12,1-4 마르5,21-43


                                                                           믿음의 여정(旅程)

                                                                        -삶은 기도요 믿음이다-


2월2일 오전 8시, 봉헌 축일 미사가 끝난후(한국시간 2.2일 오후 10시), 축일미사의 감동을 첨가합니다. 신자가 없는 수도 공동체 형제들만의 미사전례도 단순하면서도 그 고유의 맛과 향기가 있음을, 그리고 전례가 수도 공동체 삶의 중심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미사 전, 초 축복과 행렬 예식의 아름다움을, 촛불이 상징하는바 얼마나 심오한지를 또 새롭게 체험합니다. 


"Behold, our Lord shall come with power,

 he will enlighten the eyes of his servants.“

(보라, 우리 주님은 권능을 지니고 오시어, 그분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실 것이다.“

"Christ is the light of the nations and the glory of Israel his people.“

(그리스도는 민족들의 빛이시오, 그분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시로다.)


촛불 행렬시 아름다운 영어 후렴곡도 잊지 못합니다. 우리 믿음의 눈을 밝혀 주시는 그리스도는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심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강론 쓰는 지금 이 시간은 미국시간으로 2015년 2월2일 02:10분, 내일 모레면 뉴튼수도원을 떠나 귀국길에 오릅니다. 2014년 11월11일에 도착하여 85일을 지내고 86일째 떠납니다. 좀 과장하여 말하면 절박하기가 죽음을 앞둔 심정입니다. 행복했고 충만했던 사막같은 뉴튼수도원에서의 내적여정의 삶이었습니다. 참으로 여기 수도원과 형제들을 사랑했습니다.


삶은 기도요 믿음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언제 어디서나 영육의 건강입니다. 사실 이런 자세로 저는 매일 강론을 썼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믿음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좋고 아름다운 사진들은 지체없이 카톡으로 전송했습니다. 어떤 때는 강론이 기도처럼 느껴졌고 제 삶처럼 느껴졌습니다. 여기 사무엘 원장신부님의 극진한 배려와 사랑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신부님이 떠나시면 빈자리가 너무 커서 어떻게 하지요?“

"제가 오기 전에도 언제나 빈자리였었는데요. 하느님이 채워주실 것입니다.“


말하고 보니 제 말이 옳았습니다. 우리 안에는 늘 빈자리가 있고 그 빈자리는 주님이 채워주고 계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라고 주님은 분명 약속하셨습니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어진 원장신부님의 말에 웃었지만 깊은 울림을 준, 결코 잊지 못할 말이었습니다. 예전 수도생활 초창기를 회상하며 한 말입니다. 선배의 부족을 탓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 삶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은 지혜가 고마웠습니다. 


삶보다 좋은 스승은 없습니다. 부모와 스승, 선배와 동료의 삶은 그 자체가 스승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다 보고 배웁니다. 참 신기한 것이 부모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자녀들입니다. 문제 부모에 문제 자녀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내 자신으로 귀착됩니다. 교사로 삼든 반면교사로 삼든 평생 배우는 학인(學人)의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기도와 믿음의 평생학인으로 말입니다. 어찌보면 삶은 기도의 학교이자 믿음의 학교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합니다'와 '삽니다'가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기도와 믿음은 함께 갑니다. 기도 없이는 믿음도 없습니다. 살기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영양실조, 믿음의 골다공증은 순전히 기도가 부족할 때 생기는 영혼의 질병입니다. 


삶이 간절하고 절실할 때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기도 역시 간절하고 절실합니다. 사제와 수도자의 치명적 결함은 보장된 의식주(衣食住)로 말미암아 이 간절하고 절실한 치열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여 비현실적인 뜬구름 잡는 감상적이 언행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생사(生死)의 기로에서 생존(生存)에 허덕이는 세상 형제들을 대하면 저절로 침묵(의 기도를)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야이로라는 회당장과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를 보십시오. 참으로 간절하고 절실합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린 회당장 야이로의 절박한 이 한마디는 그대로 기도요 믿음의 표현입니다. 회당장의 믿음에 감동하신 주님은 마침내 그의 딸을 살려 냅니다.

"탈리타 꿈!(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간절한 우리의 믿음에 응답하여 우리를 살려내어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이십니다.


하혈병을 앓던 여자의 주님과 만남도 감동입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사실 이런 절실한 믿음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실 때 치유와 위로의 은총입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것은, 하여 주님의 능력을 끌어내는 것은 이런 믿음뿐입니다.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여자를 향한 주님의 응답 말씀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일방적 구원은, 기적의 치유는 없습니다. 여자의 믿음에 주님의 은총이 만날 때 비로소 치유의 구원입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한 믿음이 있어 주님의 은혜로운 응답입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기도는, 혼자만의 믿음은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회공동체에 깊이 뿌리 내린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여 미사중 영성체에 앞선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늘 들어도 감동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중심으로 한 교회공동체의 무한한 믿음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을 흡수해야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상징하는 바입니다. 히브리서의 권고는 얼마나 고무적인지요. 말그대로 오늘의 우리 모두를 용기백배하게 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면서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히브12,1-2).


과연 예수님만이 우리 믿는 이들의 영원한 롤모델입니다. 문득 예전 초등학교 시절, 온통 마을의 축제였더 운동회때의 달리기 경주가 생각납니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자들 옆에 열렬히 박수를 치며 격려하던 관중들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연상케 하는 위의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면서 완성자이신 예수님의 목표를 바라보며 달리는 우리를 지금도 곁에서 응원하고 계신 구름떼 같은 믿음의 성인들!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인지요.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평생 '믿음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 모두를 격려하시고 필요한 은총을 풍성히 내려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네."(마태8,17참조). 아멘.




  • ?
    부자아빠 2015.02.03 05:52
    아멘! 신부님 항상 감사합니다.
    건강히 귀국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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