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이콘(living icon) -신원확립을 위한 세 질문-2015.4.3. 주님 수난 성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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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3. 주님 수난 성금요일 

                                                                                                                                    이사52,13-53,12 히브4,14-16;5,7-9 요한18,1-19,42


                                                                                           살아있는 이콘(living icon)

                                                                                            -신원확립을 위한 세 질문-


얼마전 '이콘과 우상(icon and idol)'이란 글을 의미 깊게 보았습니다. 얼핏보면 비슷한 단어 같지만 내용은 극과 극입니다. 이콘은 눈으로 보는 성서와 같아 기도와 묵상에 도움이 되지만 우상은 우리를 살아계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정적 장애물입니다. 10년전 로마에서 베네딕도회 시토회 트라피스트회 수도자 모임 시 미사 중 좋은 반응을 보였던, 생전 처음으로 했던 '살아있는 이콘(living icon)'이란 제목의 제 영어 강론 내용도 생각이 납니다. 


믿는 이들 모두의 얼굴이 하느님의 살아있는 이콘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이지만 세상에 똑같은 얼굴은, 살아있는 이콘은 없습니다. 얼굴의 신비입니다. 제가 요즘 면담성사를 주면서 부쩍 관심을 갖게되는 얼굴들입니다. 믿음이 투명히 반영되는, 주님을 닮은 '살아있는 이콘' 같은 얼굴을 보면 마치 성모님의 얼굴을, 예수님의 얼굴을, 하느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정말 진짜 이콘은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들입니다.


"신부님 주신 큰 말씀의 처방전 때문에 한달은 잘 견디며 지냈습니다. 신부님 늦은 시간인데도 답답해서 하느님 같으신 신부님께 또 하소연 드렸습니다.“


"신부님께서 주신 책 남동생에게 주었더니 좋아하더라구요. 잘하면 수도원에 갈 것 같기도 해요. 신부님 기도 부탁드립니다.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시는 신부님, 건강하시고 행복한 부활 맞이하세요.“


어제와 며칠 전 받은 카톡 편지입니다. '하느님 같으신 신부님'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시는 신부님'이라는 대목을 잊지 못합니다. 새삼 사제는 하느님의 살아있는 이콘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살아있는 이콘의 원형이 예수님입니다. 사랑할수록 닮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서 주님을 닮아갔던 얼굴들이 바로 성인들의 얼굴이요 우리가 희망하는 주님을 닮은 우리의 얼굴입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성형수술이나 화장이 아닌 사랑공부와 실천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여 옛 성인교부들은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기도하면서 신학을, 하느님을 공부했습니다. 


나이 4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자기 얼굴 관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얼굴 관리에 앞선 마음 관리입니다. 살아있는 이콘의 원형인 주님을 사랑하여 닮아가는 것이 참 나의 얼굴을 찾는 지름길입니다. 오늘 수난 금요일, 말씀을 중심으로 신원정립을 위한 '세 물음(3 W)'을 통해 '살아있는 이콘'의 내 얼굴을 찾아 보도록 합시다.


첫째, "누구를 찾느냐(Whom are you looking for)?"라는 물음입니다.

오늘 수난복음 서두 부분에서 당신을 찾아 나선 성전 경비병들을 향한 예수님의 물음이 심오합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근본적 물음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찾습니까? 평생 찾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성전 경비병들은 제대로 찾았습니다. 제대로 찾았지만 무지에 눈이 가려 예수님이 세상의 구원자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요.“

정답입니다. 평생 하느님을 찾는 우리들이요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찾고 따르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하느님의 살아있는 이콘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자 하늘 위로 올라 가신 위대한 대사제이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신 분,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넷 째 노래에 나오는 분처럼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신 분 역시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걸어갈 때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예수님 바로 그분께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폭로되는 우리의 온갖 죄악입니다. 아, 바로 우리가 찾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원한, 살아있는 이콘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 거푸 물었고 성전 경비병들의 대답도 똑같았습니다. 다음 예수님의 답변 역시 심오합니다.


"나다(I AM).“

바로 하느님의 이름이 'I AM'입니다. 언제나 영원히 있으신 분, 존재하시는 분, 하느님 같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환히 드러나는 대답입니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이 말씀에 성전 경비병들은 뒷걸음 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합니다. 진정 찾아야 할 분은 세상 우상들이 아닌 하느님의 이콘인 예수님뿐입니다. 


어제 아침성무일도 본기도 첫대목의 말씀도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주여,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오니“

주님을 사랑함이 구원입니다. 주님을 사랑할수록 주님을 닮아 우리 역시 주님의 살아있는 이콘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진리는 무엇인가(What is truth)?"라는 물음입니다.

이 또한 평생 화두와 같은 물음입니다. 회의주의, 상대주의, 혼합주의가 만연된 시대일수록 절실한 물음입니다. '진리는 무엇인가?'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한 질문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를 향한 물음입니다. 여러분은 이 단도직입적 물음에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다음 예수님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이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아둔한 빌라도는 동문서답식 질문을 합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예수님만 아니라 이 또한 우리의 성소요 존재이유입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이기에 우리는 진리를 압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천명하신 예수님 말씀을, 또 우리 모두 진리에 몸바치게 되는 사람들이 되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간곡한 기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진리는 자유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사랑으로 진리이신 주님과 일치할 때 진정 자유인입니다. 진리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바로 진리에 대한 사랑입니다. 다음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 사랑이 눈물겨운 감동입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바로 주님이 사랑하던 애제자 요한의 자리가 우리의 자리입니다. 늘 십자가 주님 아래서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의 복된 운명입니다. 이런 항구하고 한결같은 사랑을 통해서만 비로소 진리의 실현, 진리의 증언이 이루어집니다.


셋째, "당신은 어디서 왔소(Where are you from)?"라는 물음입니다.

이 또한 평생화두로 삼아야 할 물음입니다. 빌라도가 두려움 중에 예수님께 한 질문은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우이독경,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임을 직감했음이 분명합니다. 


"네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으면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

바로 예수님이 이 말씀이 힌트입니다. 빌라도 역시 깨닫지는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수중에 있음을 봅니다. 위에서,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았기에 도저히 진리와 더불어 예수님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빌라도입니다.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어느 수녀님의 유명한 정답을 기억합니다.

"I am from nowhere“

'나는 아무 곳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수수께끼 같은 대답입니다. 어느 불가의 고승은 임종시 '어디로 가느냐?' 물었을 때 '온 곳이 없는데 갈 곳이 어디 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답하면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가는 우리의 인생 순례 여정입니다. 분명 어제 주님 만찬 미사 복음중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요한13,3ㄴ) 라는 구절이 이 진리를 입증합니다.


평생화두로 삼아 자문해야 할 세가지 근본적 질문들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두 임종어가 또 감동입니다.

"목마르다.“

평생 하느님 아버지를, 진리를 목말라 했던 예수님의 삶을 요약합니다.

"다 이루어졌다.“

이 또한 평생 삶의 요약입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아버지의 뜻에 충실했던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사랑과 진리, 자유의 완전 실현을 의미합니다. 아침기도 세 번째 후렴의 고백으로 오늘 강론을 마칩니다.


"주의 십자가를 경배하오며 주의 거룩하신 부활을 찬양하나이다. 십자가 나무를 통하여 온 세상에 기쁨이 왔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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