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인식 -무지, 심판, 회개, 겸손, 진실-2020.6.22.연중 제12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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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22.연중 제12주간 월요일                                    2열왕17,5-8.13—15ㄱ.18 마태10,26-33

 

 

 

자기인식

-무지, 심판, 회개, 겸손, 진실-

 

 

 

"보소서, 당신을 떠나는 자는 망하오리니,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이외다"(시편73,27ㄱ.28ㄱ)

 

가장 힘든 것이 자기를 아는 일이요 가장 쉬운 것이 남 판단하는 일이라 합니다. 자기를 모르는 무지로 인한 판단이지 정말 자기를 안다면 절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정말 자기를 아는 것이 겸손이요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하느님을 갈망하고 배움을 사랑합니다. 하여 평생 늘 자기를 활짝 열고 배우는 ‘배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합니다.

 

자기를 알아가는 자기인식이 깊어짐과 더불어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하여 끊임없는 회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 비로소 자기를 알아 겸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하권은 북 왕국 몰락에 대한 반성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삶의 중심인 하느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경외함으로 무지의 늪에 빠지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빛이신 하느님을 떠나 배은망덕의 삶을 살 때 무지의 어둠의 늪으로 떨어짐은 필연입니다. 얼굴을 수시로 드려다 보는 거울처럼 내 영혼의 얼굴을 드려다 보는 하느님 거울이 없으면 자기를 몰라 본의 아니게 무지의 늪에 빠질 수 뿐이 없습니다. 

 

주님의 거울에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니 겸손히 자기 영혼의 얼굴을 하느님 거울에 비춰보며 회개하는 고백성사 시간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인지요. 이렇게 자기인식에 철저한 이들은 절대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자들과 선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보내 모든 율법대로 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습니다. 바로 무지의 죄, 교만입니다. 누구 탓도 아닌 무지의 죄요 결국은 자기탓입니다. 회개를 통해서만이 무지의 죄에서 벗어나 심판을 면할 수 있는데 무지의 죄의 결과는 심판뿐입니다. 주님의 경고를 업신 여긴 이스라엘에게 주님은 크게 노하시어 이들을 물리치시니 결국 자기의 무지의 죄로 인해 자초한 심판임을 깨닫습니다.

 

여전히 반복되는 무지의 죄입니다. 불가佛家의 삼독三毒인 탐진치貪瞋癡(욕심, 성냄, 어리석음)도 결국 무지의 산물입니다. 무지의 인간, 바로 인간에 대한 부정적 정의같습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입니다. 한번뿐의 회개가 아니라 끊임없는 회개요, 하여 우리 삶의 여정은 회개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을 통해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알아가는 자기인식의 심화와 더불어 겸손과 진실이요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오늘 복음도 이런 무지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확연해집니다. 무지로 인한 심판이요 주님은 거두절미하고 남을 심판하지 마라 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심판하실 유일한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아는 겸손한 이들은 절대로 하느님 자리에서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르는 무지로 인해 하느님 자리에서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심판과 분별은 구별해야 합니다. 미움에서 나온 심판이나 판단인 반면 사랑에서 나온 분별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있는 그대로’ 분별하지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남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감정적 미움의 심판이요 사랑의 분별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만이 사랑으로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티와 들보의 비유가 참으로 적절합니다. 참으로 무지의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몇이나 될까요? 누구나 지닌 무지의 들보입니다. 자신의 무지의 들보를 빼내어야 비로소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텐데 과연 여기에 해당될자 몇이나 될런지요.

 

우리 눈에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들보가 상징하는 바, 바로 무지입니다. 마음따라 보는 눈인데 마음이 무지로 눈이 멀면 무지는 들보가 되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 끊임없는 회개를 통한 마음의 순수와 겸손이 무지의 들보를 점차 없애는 길이 될 것이니 평생 수행의 끊임없는 회개임을 깨닫게 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눈에 무지의 티는 물론이요 무지의 들보가 완전히 사라진 이들이 바로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요 맑은 눈으로 하느님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끊임없는 회개로 무지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순수와 사랑, 겸손과 진실에 도달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도달한 사람은 아마 예수님뿐일 것입니다. 

 

그러니 날로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을 통해 무지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이 우리의 평생과제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무지의 어둠을 밝혀 주시어 모두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분별하고 받아들이며 평화공존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편90,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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