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고 아름다운 평신도(성인聖人)의 삶 -찬미, 감사, 섬김-2022.11.6.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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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6.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2미카7,1-2.9-14 2테살2,16-3,5 루카20,27-38

 

 

거룩하고 아름다운 평신도(성인聖人)의 삶

-찬미, 감사, 섬김-

 

 

올해의 단풍은 유난히 곱습니다. 참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봄꽃보다 더 아름답고 고운 가을단풍입니다. 초연한 아름다움이 마음에 깊은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참 마음 넉넉하고 편안하게 합니다. 봄청춘보다 더 아름답고 황홀한 가을노년의 삶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까지 34년 동안 요셉수도원에 정주하면서 대자연 성전에서 아름다운 미사를 봉헌하기는 처음입니다. 어제는 아랫집 수녀님의 부탁으로 ‘성 바오로 호스피스 센터’에서 돌보다 돌아가신 분들의 위령미사를 아랫집 수녀원 아름다운 만추의 뜨락에서 봉헌한 날이었습니다. 

 

참 거룩하고 아름다운 만추의 가을에 아름다운 자연성전에서의 잊지 못할 미사였습니다. 지상의 아름다움이 이럴진대 천상의 아름다움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천상행복을 미리 맛보는 지상천국의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미사도중 뒤에서 그분도 함께 미사드리는 기분이라 햇살 환한 제대 뒤를 가만히 돌아보니 가을 빛나는 태양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흡사 하느님께서도 함께 미사드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미사에 참석한 분들이 모두 성인들처럼 보였고, 세상 떠난 영혼들도 함께 미사드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마지막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으니, 천상영혼들, 연옥영혼들, 그리고 지상영혼들인 우리가 함께 봉헌하는 미사인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17년전인 2005년 만추의 단풍 아름다운 위령성월, 성인성월에 써놨던 “마침내 별들이 되어”라는 시도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주저함없이 11월 위령성월은 성인성월聖人聖月이라 부릅니다. 우리 모두 성인의 삶을 살라 촉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별들이 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단풍나뭇잎들 하늘 향한 사모思慕의 정 깊어져

 빨갛게 타오르다가

 마침내 별들이 되어 온 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오! 땅의 영광, 황홀한 기쁨

 죽음도 축제일 수 있겠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선종의 죽음이요, 이런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의 진입인 천상탄일입니다. 이런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과 죽음보다 남은 이웃들에게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론 제목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평신도의 삶”으로 정했는데 ‘평신도’ 대신 ‘성인’을 넣어도 무방하겠습니다.

 

마침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오늘 12일(토) 오전 10시, 주교좌 명동 대성당에서 ‘기억하다-빛과 소금이 된 이들’ 두 번째 미사로 ’선우경식 요셉 원장 기림 미사를 봉헌한다 합니다. 

 

고 선우경식 요셉 원장(1945-2008)은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요셉의원’을 설립하고 평생 불우한 환자들을 보살피며 헌신적 삶을 살았던 성인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대로 오늘 평신도 주일에 걸맞는 평신도의 모범, 고 선우경식 요셉 원장입니다. 

 

‘기억하다-빛과 소금이 된 이들’은 한국 근현대사 신앙의 선조들을 기리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신앙의 모범을 실천하자는 취지로 마련됐으며, 첫미사는 지난 3월, 안중근 토마스(1879-1910) 의사를 기리는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땅에서 하늘의 별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평신도의 삶을, 성인다운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그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찬미의 삶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저절로의 표현이 찬미입니다. 영혼의 본능이 하느님 찬미입니다. 찬미할 때 살아나는 영혼입니다.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입니다. 지상에서 이런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찬미의 기쁨, 찬미의 사랑, 찬미의 행복, 찬미의 맛으로 살아가는 여기 수도승들입니다.

 

“하느님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한평생 주님을 찬미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내 하느님 기리리라.”(시편146,1-2)

 

이렇게 알렐루야 하느님 찬미의 삶을 살 때, 죽어서도 천사와 같은 찬미의 삶을 삽니다. 이들에 대한 복된 운명을 소개하는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천사들과 같아져서 찬미의 기쁨을 살아가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인들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자 기쁨입니다. 그러니 거룩하고 아름다운 찬미의 삶, 성인다운 삶에 전력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감사의 삶입니다.

영혼의 양날개가 찬미와 감사입니다. 이미 지상에서 찬미와 감사의 양날개를 달고, 하느님 창공을 나는 영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알렐루야’ 하느님 찬미로 살다가, ‘아멘’ 하느님께 감사로 인생 마친다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겠는지요!

 

너무나 감사를 잊고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은총이요 은총에 대한 응답이 찬미와 감사입니다. 감사의 기쁨, 감사의 축복입니다. 살 줄 몰라 불평이요 불행이지 살 줄 알면 감사와 행복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감사하는 삶, 역시 발견이요 선택이요 훈련입니다. 감사의 발견, 감사의 선택, 감사의 훈련, 감사생활의 습관화입니다. 왜 하느님께 감사해야 하는지 바오로 사도가 잘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분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는 좋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합니다. 찬미와 감사의 축복이 참 큽니다. 행복기도중 다음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주님을 만나니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물하시나이다.”

 

셋째, 섬김의 삶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라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신 주님이십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섬김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권위가 있다면 섬김의 권위,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베네딕도 성인도 당신의 수도승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학교’로 정의합니다. 평생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법을 배워 실행하는 배움터인 공동체입니다. 사랑의 섬김을 통한 겸손과 순종입니다. 섬김 또한 선택이요 영성훈련입니다. 섬김의 삶을 생활화, 습관화하는 것이 구원의 첩경의 지름길입니다. 참으로 부활의 파스카 신앙이, 희망의 샘솟는 섬김의 원천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마카오베오 상권에 일곱 아들의 순교를 통해 이들이 얼마나 하느님 섬김의 삶에 충실했는지, 또 부활희망이 생생했기에 섬김의 삶에 항구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며 일곱 아들의 순교에 이어 어머니까지 순교합니다. 이렇게 죽기까지 섬김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음의 비결은 바로 부활신앙, 부활희망임을 깨닫게 됩니다. 셋째의 마지막 고백, 임종어만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부활신앙과 부활희망을 선물하시어 우리 모두 한결같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인다운 삶을, 찬미와 감사,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시편17;8,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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