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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29.월요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                                                                   1요한4,7-16 요한11,19-27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예찬-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비상한 사랑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있는 평범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배려입니다. 사랑은 존중입니다. 사랑은 무시하지도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깨어있음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마음도 무디어지고 굳어지기 마련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끊임없는 회개 역시 사랑을 살아나게 합니다.

 

몇가지 예화들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평범하지만 새로운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엊그제 고향 신자 자매님의 초대에 응했던 경우입니다. 80대 중반의 자매님 초대는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토요일 오후 외출이 너무 불편해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후에 미사중 깨달음처럼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나, 마지막 부탁일 수도 있겠다.’ 마음에 무척 걸렸고 다시 전화를 드리고 가겠다고 1차 번복했습니다. 

 

이어 자매님으로부터 아랫집 잘 아시는 노 수녀님과 동행했으면 하는 부탁이었고 또 여러 사정상 불편하다 거절했지만 또 마음이 걸렸습니다. 역시 성전에서 공동성무일도중 떠오른 생각이었고, 2차 번복하여 수녀님을 만나 함께 가기로 했고, 결과 너무 잘했다 싶어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수도형제도 정말 잘 하였다고 격려했습니다. 참 옹졸하고 편협했던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평범한 사실 같지만 이 또한 회개의 은총입니다. 잘못됐다 싶으면 즉시 번복하는 것도 용기요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자매님의 초대에 응답함으로 사랑의 깨달음이 참 풍부했던 체험이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해하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사랑은, 행복은 수도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언제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비내리던 중 산책하다 며칠전 잃어버린 손수건을 발견하고 참 기뻤습니다. 흙색깔이라 거의 구별이 안되고 흙물에 젖어 말이 아니었습니다. 즉시 주어다가 세탁해 말리니 완전히 새 손수건이었습니다. 하느님의 회개의 은총도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새로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일상의 죄에 물들고 찌든 우리를 부르시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품위있는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이들이 가장 아프게 한다 합니다. 가까운 부부 사이는 물론이고 수도공동체 형제들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거리, 섬세한 배려와 존중, 예의의 사랑이 참 관계를 부드럽게 함을 봅니다. 하여 요즘은 카톡의 메시지를 활용하여 적절하다 싶을 때는 꼭 표현하니 사랑의 윤활유 역할처럼 알게 모르게 관계도 훨씬 부드러짐을 실감합니다. 또 이런 작은 사랑의 실천이 자신에게도 경계가 되어 무례와 불손을 사전에 예방해 줍니다.

 

얼마전 본 라틴어 두 글귀도 생각났고, 깊이 공감했습니다.

“Cantare amanis est(노래는 사랑하는 자에게 전형적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입니다. 하여 오늘 화답송처럼 주님 사랑하는 이들이 즐겨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시편34,2-3).

 

분도규칙의 정신을 요약한 어느 수도승 학자의 라틴어 말마디 역시 고무적입니다. “Currere amantis est(달림은 사랑하는 자에게 전형적이다)”, 예수님 빈무덤 소식을 듣고 달리던 베드로와 요한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중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달리듯 빨랐던 제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산책중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강론에 보충하려고 빨랐던 발걸음도 기억합니다. 하여 사랑하는 이들은 역동적이요 부지런하기 마련입니다.

 

사랑은 삶의 의미이자 삶의 전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삶의 허무와 무의미에 대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만병의 근원이 사랑 결핍이요, 만병통치약도 사랑입니다. 어제 글을 읽으며 ‘인내patience’의 사랑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딤으로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받아들여 흡수함으로 이웃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내로 담아 두지 못하고 그대로 이웃에게 쏟아냄으로 분위기를 오염시키고 마음에 깊은 상처와 나쁜 기억을 심어주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함께의 생활에 인내의 사랑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하여 침묵의 인내를 많이 강조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경청하기 위한, 말잘하기 위한, 말로 죄짓지 않기 위한, 사랑의 침묵, 인내의 침묵인 것입니다. 

 

결국은 사랑예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 사랑 못한다는 것은 순전히 변명이요 거짓말입니다. 살아있는 한 깨어 있으면 사랑 표현은 무궁무진합니다. 

 

오늘 말씀도 사랑이 주제입니다. 제1독서 요한 1서도 ‘사랑’이란 단어가 무려 18회 나옵니다. 사랑이 모두임을 입증하는 사도 요한입니다. 서두 말씀부터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형제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요한1서는 우리에게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인생’을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하느님의 공평무사한 대자대비의 사랑입니다. 정말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 널려 있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역시 사랑입니다. 마리아를 통한 주님 향한 관상의 사랑, 마르타를 통한 주님 향한 활동의 사랑입니다. 관상과 활동 둘 다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다음 구절이 두 자매의 사랑의 특징을 밝혀 줍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있었다.’

 

오늘은 마르타 축일입니다. 마르타의 적극적 환대의 사랑이 돋보입니다. 아마 예수님은 마리아와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적극적 환대의 사랑을 표현한 마르타를 사랑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두분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다음 대목에서 드러납니다. 참 아름다운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는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물음입니다. 사랑하는 마르타에에 주님 주시는 참 좋은 사랑의 선물같은 말씀입니다. ‘믿는’ 대신 ‘사랑하는’ 말마디를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파스카의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은 구원의 열쇠임을 깨닫습니다. 마르타의 사랑이 가득 담긴 고백 역시 우리 모두의 고백으로 삼아도 좋습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사랑과 믿음은 하나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향한 참 깊고도 아름다운 사랑과 믿음을 선물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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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7.29 06:08
    주님을 향한 끝없는 믿음과 사랑이 제 안에 머무르시어 오늘 만나는 모든이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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