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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2.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집회48,1-4.9-11 마태17,10-13


                                                                       인식認識은 비교다


새벽에 읽은 “사회적 진보에 왕도는 없다. 어떤 눈에는 시지프스의 노력처럼 보일지라도, 그저 묵묵히 차근차근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말마디에 공감했습니다. 사회적 진보 대신 ‘영적 진보’란 말을 넣어 ”영적 진보에 왕도는 없다. 어떤 눈에는 시지프스의 노력처럼 보일지라도, 그저 묵묵히 차근차근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영적 삶에 비약이나 도약, 요행은 없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마디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세례자 요한, 모든 성인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엘리야와 복음의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역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만 열리면 연결되어 있는 주변 모두가 배워야 할 스승입니다. 겸손해야 배웁니다. 


인식은 비교입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자체가 독립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비교함으로 비로소 알게 됩니다. 혼자는 자기가 절대로 누군지 모릅니다.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네가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나를 알 수 있게 해 준 이웃의 존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웃 역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여 연결이 끊긴 고립단절이 자기상실의 지옥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공동생활입니다. 관계 안에서 계시되는 나의 실상입니다. 얼마전 써놓은 ‘산’이란 글입니다.


-홀로/있어도

 넉넉하기는/산이다.

 주위/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이웃이다-


좌우사방 연결되어 있는 피조물의 이웃들로 말미암아 또렷이 드러나는 산山처럼 사람도 그러합니다. 오늘 1독서 집회서에 드러난 엘리야의 하느님과 신뢰의 관계가 놀랍습니다. 하느님과 깊은 신뢰 관계로 인해 엘리야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바로 다음 말씀에서 예수님이나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의 귀환으로 믿어 용기백배했습니다.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하면서 엘리야를 통해 세례자 요한을 읽었고, 세례자 요한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읽었습니다. 오늘 집회서의 마지막 구절은 제가 20여년전 지인에게 받고 고무됐던 구절로 공동번역이 더 실감납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며, 당신과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 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집회서48,11).


당신을 나로 착각하며 읽은 참 기분 좋은 구절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집회서에서 소개되는 엘리야를 본 당대 사람들은 정말 행복했을 것이며 생명을 얻는 체험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교회 전례와 성경을 통해 엘리야는 물론 무수한 하느님의 사람들인 성인들을 만나면서 이런 행복감과 사랑을 체험합니다. 다음 복음 말씀은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인식입니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우리 또한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인식은 비교입니다.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 예수님이 하느님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안에서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확인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고난을 통해 자신의 고난을 예견한 주님이십니다. 우리 또한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모든 연결을 새롭게 회복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합니다. 다음 화답송 후렴이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80,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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