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11.목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사도11,21ㄴ-26;13,1-3 마태10,7-13

 

 

 

복음 선포의 선교사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요? 사람이,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진짜 살라고 선물로 주어진 각자 고유의 인생입니다. 과연 얼마나 참 자기를, 몇%나 참 자기를 살고 인생을 마칠까요? 평생 살아도 자기를 모르고 거짓 나를 자기로 착각하여 헛된 삶을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중요한 필생의 일이 참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하여 우리 수도승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수도원에 왔다고 합니다. 하여 하느님의 사람, 참사람이 되기 위해 수도승의 평생 과제가 하느님을 찾는 일인 것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없이 사람이, 참 사람이 되기는 참으로 요원합니다.

 

‘참 사람이 되는 것인가’, 혹은 ‘참 자기를 발견해 나가는 것인가’ 하는 물음도 가능하겠습니다만 결국은 한 진리에 대한 두 측면의 표현입니다. 이를 하나로 종합하면 참 자기가 되어 가는 과정은 하느님 창조하신 본래의 참 자기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제 한겨레 신문 21면(조현의 휴심정) 기사가 이채로웠습니다. “성경이란, 삶에 적용해야 비로소 ‘읽었다’할 수 있는 것”이란 ‘읽는다는 것’책의 집필자(강영안)와의 인터뷰 기사가 전면을 차지하다 시피했고, ‘불안감 치유에도 훈련이 필요해’라는 기사와 ‘조울의 강, 우리가 함께 건너야 할 때’라는 기사의 구성이 상징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2016-2018년 3년간 20대 가운데 우울증, 불안장애, 스트레스 증상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이 무려 50만명이었다 합니다.

 

아, 바로 불안감과 조울증에 대한 근원적 해결이 바로 성경에, 하느님께 있음을 깨닫습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특히 정신질환은 그러합니다. 발병에 앞서 참으로 성경 말씀을 통해 삶의 중심을 확고히 함으로 마음을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늘 말씀 드리다 시피 삶의 중심, 삶의 의미, 삶의 방향, 삶의 목표를 견고히 함이 정신 건강의 첩경입니다. 이래서 성경 말씀의 생활화입니다.

 

어제 뜻밖에 전화를 받고 반가웠습니다. “삶이 재미로 사나요. 살아야 하는 의무니까 사는 것이지요.” 이 말을 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늘 재미있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미건조하고 힘든 날들도 대부분이요 이를 견디며 버티며 한결같이 살 수 있음은 바로 삶의 중심과 삶의 의미가 확고하기에 가능합니다.

 

하여 끊임없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어제 교황님의 일반 알현시 말씀의 주제도 기도였습니다. 창세기의 야곱을 기도의 모델로 하여 ‘하느님과의 레슬링(싸움)은 바로 기도의 메타포(은유)’라는 내용의 강론이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가 바로 하느님과의 레슬링시간이요 이보다 정신건강에 좋은 수행도 없습니다. 

 

더불어 아주 예전 재미있게 인용한 팬티끈과 팬티천 일화가 생각납니다. 사제생활 초창기때 강론에 인용했던 예인데 수십년만에 만나 자매가 이 일화를 잊지 못한다며 전해 줬습니다. ‘팬티끈이 영혼이라면 팬티천은 육신이다. 팬티끈만 튼튼하다면 패티천은 아무리 낡고 떨어져도 입을 수 있듯이 영혼과 육신의 관계도 그러하다. 그러니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를 통해 팬티끈같은 영혼을, 정신을 튼튼히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요지의 말이었습니다.

 

어제 저녁기도와 묵상중 각별한 체험 또한 잊지 못합니다. 시편 말씀의 묵상이 새로웠습니다.

 

“내 영혼아 고이 쉬라 오직 하느님 안에서, 님께로부터 내 구원이 오나니.

님만이 나의 바위, 내 구원, 내 성채시기에, 나는 절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내 구원 내 영광이 하느님께 있나니, 하느님은 굳센 바위, 내 피난처시다.

백성들아, 너희 항상 주께 바라라, 당신 앞에 너희 마음 열어 놓아라

우리의 피난처는 하느님이시다.”

 

바로 이것이 인간입니다. 기도하는 인간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님이 빠질 때 무엇으로 이것을 대체할 수 있겠는지요? 이래서 하느님 중심 자리에 헛된 우상들이 등장하는 것이며 무수한 정신질환들입니다. 하여 사람은 중심을 잃어 야수가 되고 괴물이 되고 악마가 되고 폐인이 되기도 합니다. 도대체 하느님이 아닌 어디서 우리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겠으며 하느님 아닌 어디서 궁극의 피난처를 찾을 수 있겠는지요?

 

또 하나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기도’로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시편말씀이든 예수님 이름이든 건성으로 바칠 것이 아니라 깨어 사랑과 정성을 가득 담아 맛보며 바쳐야 겠다는 참 각별한 체험의 시간이었습니다.

 

참 건강한 하느님의 사람, 참 사람의 모범이 바로 오늘 축일을 지내는 복음 선포의 빛나는 선교사 바르나바입니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이름 뜻도 참 기분이 좋습니다. 바르나바의 빛나는 전인적 인품이 다음 묘사에 잘 드러납니다.

 

‘안티오키아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착한 사람 바르나바 사도, 정말 참 사람의 모범입니다. 바르나바 사도뿐 아니라 오늘 예수님께 파견받는 하늘 나라 복음 선포의 선교사, 사도들 또한 참 사람의 모범들입니다. 텅 빈 존재에 말씀 선포의 사명과 더불어 치유이적, 구마이적의 능력을 가득 안고 떠나는 사도들, 가난하나 참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강물도 끊임없이 흘러야 맑은 물이요 고이면 썩듯이, 거저 받은 것을 끊임없이 줌으로 나눠야 맑은 삶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 건강한 영적 삶의 비결이요,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선교사로 살아가야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받은 은총의 선물들입니다. 이을 깨달아 알때 저절로 하느님 찬미와 감사요 나누는 삶일 것입니다. 몰라서 독점이지 알면 알수록 나눕니다. 나눌 때 참 기쁨이요 참 나의 실현입니다. 

 

주님으로 가득차 있기에 무소유의 홀가분한 차림으로 선교여정에 오르는 가난하나 참으로 자유롭고 부유한 사도들입니다. 신자들의 환대의 사랑에 의지하여 치유와 구마, 위로와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 하늘 나라 복음의 선포와 더불어 무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줌으로 참 자유인의 참 사람이 되게 합니다.

 

문명의 야만시대입니다. 길을 잃은 문명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무지는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입니다. 하나뿐인 우리의 어머니인 지구도 위태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역시 지구가 건강치 못하다는, 병들었다는 반증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쓰레기와 전쟁중이라 합니다.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수도원에서 나가는 쓰레기만해도 얼마나 많은 지요. 문제는 무지의 사람들, 탐욕의 사람들인 우리로부터 기인합니다. 참으로 무지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의 사람, 참 사람으로 거듭 매일, 평생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더 ‘웃으며smile’, ‘느리고slow’ ‘단순한simple’ 3S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 복음 선포의 선교사, 바로 우리 모두의 신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평범한 일상에서 하늘 나라 복음을 삶으로 선포하며, 치유와 위로, 평화의 선교사로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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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0.06.11 08:14
    "강물도 끊임없이 흘러야 맑은 물이요 고이면 썩듯이, 거저 받은 것을 끊임없이 줌으로 나눠야 맑은 삶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 건강한 영적 삶의 비결이요,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선교사로 살아가야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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