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새롭게 -부패인생이 아닌 맛과 향이 뛰어난 발효인생을 삽시다-2021.2.16.연중 제6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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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16.연중 제6주간 화요일                                         창세6,5-8;7,1-5.10 마르8,14-21

 

 

 

날마다 새롭게

-부패인생이 아닌 맛과 향이 뛰어난 발효인생을 삽시다-

 

 

 

최근 발간된 이해인 수녀의 전기와도 같은 11회에 걸친 3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안희경의 화상 인터뷰집 ‘이해인의 말’ 책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자신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나를 읽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저보다 4세 많은 77세 고령의 할머니같은 분인데 놀라운 기억력에 진솔한 고백이 흡사 끊임없이 샘솟는 우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어야 답이 나옵니다. 좋고 깊은 질문이 있어야 좋고 깊은 답입니다. 인터뷰중 끊임없는 물음과 답 역시 끊임없이 샘물을 퍼올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수녀님은 2008년 대장암 4기중 수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완쾌되어 여전히 주님의 영원한 현역의 사랑의 전사로 활동하시니 인간의 승리, 영혼의 승리, 믿음의 승리, 하느님의 승리, 하느님 사랑의 기적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즉시 연상되는 것이 작년 9.29일 대천사 축일, 대형교통사고에도 무사했던 하느님의 기적같은 제 경우였습니다.

 

날마다 수도자가 누구인지 묻는 자가 수도자라 했습니다. 스스로 날마다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일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과 끊임없이 회개하는 일과 닮았습니다. 인터뷰집 뒷 표지의 글도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법정 스님이 오래전에 ‘날마다 새롭게, 구름 수녀님에게’라고 써주신 글이 있습니다. 액자에 넣어 걸어놓고 ‘그래 날마다 새롭게 살자’ 새기면서 겸손하게 하루하루를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비록, 제가 이 안에 있지만 우주를 끌어안는 마음으로 살게 되더군요. 여기가 그냥 답답한 ‘민들레의 영토’가 아니라 ‘우주와 통교하는 민들레의 영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요.”

 

바로 분도회 정주영성의 본질과 핵심을 보여주는 깊고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바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제 자작 좌우명시도 이를 위한 고뇌와 분투의 결과 나온 산물이고, 하느님을 찾는 우리 수도승들에게는 한결같은 보편적 갈망이자 소망이 ‘날마다 새롭게!’일 것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끊임없는 기도와 끊임없는 회개가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래야 안주가 아닌 진짜 정주의 삶이겠습니다. 바로 이를 단적으로 요약한 ‘산과 강’이라는 짧은 자작시입니다.

 

-“밖으로는 산山

천년만년千年萬年 임 기다리는 산山

안으로는 강江

천년만년千年萬年 임 향해 흐르는 강江”-1998.1.27

 

이래야 늘 푸른 삶, 날마다 새로운 삶이요, 영육靈肉으로 부패하지 않는 암癌이 없는 건강한 영혼의 삶입니다. 예전 어느 자매의 ‘음식이 상해 맛이가면 버리기라도 하는데 사람이 상해 맛이가면 버릴 수도 없다’는 탄식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부패하여 맛과 멋이 사라진 인생이라면 너무 허무할 것입니다.

 

조금 썩으면 발라내면 되지만 많이 썩으면 전부를 버리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죄악이 영적부패에 이르게 하고 영적 암을 유발시킴을 깨닫습니다. 오늘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개탄하는 세상이 흡사 죄악으로 인해 회복 불능의 썩은 상태 같고, 온몸에 전이된 회복 불능의 말기암 상태같습니다. 성한 곳이라곤 단 하나 노아뿐입니다. 그대로 오늘날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 내가 그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

 

오늘 독서에는 없는 창세기 6장 9절을 추가했습니다. 하느님의 후회와 아픔을 반영합니다. 만연된 죄악으로 맛이간 사람들은 물론 세상을 깨끗이 청소하겠다는 주님의 선언입니다. 흡사 말기암처럼 죄악이 만연되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홍수의 대심판이 시작됩니다. 죄악의 무지로 눈먼 인간의 자업자득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이라곤 온전한 노아 한 사람뿐입니다. 

 

무지의 탐욕에 눈멀어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 쓰레기 배출의 오염으로 인한 기후위기에 코로나 19 팬데믹을 자초란 작금의 사람들과 흡사합니다. 홍수가 아닌 대심판의 전조가 코로나가 아닐까 하는 불길한 느낌도 듭니다. 내일 사순시기 첫날, 재의 수요일을 앞둔 창세기 말씀의 배치가 참 절묘하고 고맙습니다. 바로 전적인 회개를 촉구하는 팬덱믹 사태임을 깨닫습니다. 작년에도 코로나와 더불어 맞이한 사순시기가 올해도 계속입니다.

 

창세기의 무지의 죄악에 눈먼 사람들에게 좌절하시는 하느님처럼,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무지에 눈이 먼 완고한 제자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느끼시며 호되게 질책하십니다. 이 또한 깨달음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인간의 고질병과도 같은 무지의 눈먼 제자들 같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았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무지에 눈멀고 귀먹은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같습니다. 참으로 끊임없는 기도의 여정은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이요, 끊임없는 기억과 이해의 여정, 개안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 우리 삶의 여정은 점차 무지의 병이 치유되어 주님을 닮아 참내가 되어가는 구원의 여정이 됩니다. 

 

영적 효소酵素와 같은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에 깨달음의 은총이 부패腐敗인생을 향기롭고 맛좋은 발효醱酵인생으로 만듭니다. 부패인생에서 발효인생으로 사순시기,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무지의 병을 치유해 주시어 당신을 닮아 눈밝은 지혜의 삶을 살게 하시며, 부패인생이 아닌 제주도의 레드향처럼 맛과 향이 뛰어난 발효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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