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지 마십시오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공부, 회개의 삶-2022.2.24.연중 제7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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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24.연중 제7주간 목요일                                                                     야고5,1-6 마르9,41-50

 

 

죄를 짓지 마십시오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공부, 회개의 삶-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질 때까지 성난 채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에페4,26-27)

 

수요일 끝기도 시 말씀이 묵상중 문득 생각납니다. 어제 읽은 29년 동안 불법체류노동자로부터 6명의 전직 대통령, 법정 스님등 수천명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염장이(염습殮襲을 하는 사람)’ 유재철씨의 인터뷰 마지막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법정스님은 몹시 편안해 보였어요. 잠깐 잠드신 것처럼 보여 흔들어 깨울 뻔했어요. 법정스님은 수의 대신 평소 즐겨 입던 승복을 입히고 관도 준비하지 말고 사리도 찾지 말라고 유지를 남기셨어요. 정말 수천명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면서 얻게 된 지혜는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죠. 오늘을 열심히 살고,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 닥칠지 모르니까요.”

 

일주 전 4박5일의 제주도 성지 순례 여정 때의 진지했던 묵상도 생각납니다. 순례 여정 며칠 지나니 서서히 돌아갈 집 수도원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런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순례 여정 끝내고 죽음을 맞이할 때 갈 집이 없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옷은 잘 차려 입었는데 갈 곳이 없구나!”

 

어디선가 읽은 수의壽衣를 곱게 차려 입힌 친구의 죽음을 앞에 둔 어느 신자 분의 탄식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영원한 인생 순례 여정이 아니라 언젠가 끝날 때 과연 아버지의 집에 기쁘게 귀가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는지요. 하루하루 충실히 깨어 살아 아버지의 집에 가까워 질수록 기쁨도 더해 진다면 얼마나 멋진 삶이겠는지요. 

 

이런 자각이 투철하다면 정말 죄를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몸조심, 맘조심, 말조심 할 것이며, 손관리, 발관리, 눈관리에 만전을 다하며 아름답고 품위있는 사랑의 삶에 온 힘을 쏟을 것입니다. 얼마전 화장실 청소시 실수로 락스가 바지에 묻자 즉시 탈색하여 새바지가 보기 흉해져 마음이 언짢아 즉시 몇분에게 알아보니 탈색은 지울 수 없다 했습니다. 

 

즉시 ‘아, 죄가 마음에, 영혼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순백純白의 순수했던 마음들이, 영혼들이 세월 흘러가면서 죄로 인해 탈색, 변질되어 많이도 얼룩지어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래서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끊임없는 기도, 끊임없는 말씀공부, 끊임없는 회개의 수행이 절대적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순수와 열정의 사람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고질적 마음의 병인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이 셋의 영적 수행뿐임을 깨닫습니다.

 

무지로 인한 탐욕의 죄입니다. 죄의 뿌리에는 무지의 탐욕이 자기 잡고 있습니다. 마음이 좋아야 생각도 말도 글도 행동도 좋습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공부, 회개의 수행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고 마음을 깨끗이 합니다. 순수한 마음은 영원 불변의 고정적 실재가 아닙니다. 물도 고이면 썩듯이 끊임없는 수행이 있어야 샘솟는 우물같은, 맑게 흐르는 개울같은 순수의 마음입니다. 

 

좋은 마음에서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글, 좋은 행동이듯, 반대로 한결같은 좋은 습관의 행동이 좋은 마음을 만들어 줍니다. 좀 나쁜 마음이라 낙심할 것이 아니니, 끊임없는 선행의 수행과 회개 은총이 더하여질 때 나쁜 마음이나 인성도 선하게 바뀌어 지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평생 죽을 때까지 목숨을 걸고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 사랑의 수행에 온힘을 다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복음과 독서 말씀에 대한 답입니다. 두 말마디로 요약하면 “죄를 짓지 말라”, “지체없이, 끊임없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의 사람에게 물한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사람 누구나 그리스도의 사람,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작고 큰 것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선행을 베풀 때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복음 말씀도 충격적이나 구체적이라 실질적 도움이 됩니다. 마음은 지체로 표현되어 손으로, 발로, 눈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손이 죄를 지으면 손을 잘라 버리고, 발이 죄를 지으면 발을 잘라 버리고, 눈이 죄를 지으면 눈을 뽑아버리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가 아닌 참으로 손관리, 발관리, 눈관리에 만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손으로 아무것이나 하지 말고, 발로 아무데나 가지 말고, 눈으로 아무것이나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혼에 깊은 자국을 남겨 나쁜 기억으로 우리를 괴롭힙니다. 탐욕따라, 육적본능따라 가지 말고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여 잘 선택하여  좋은 습관을 생활화하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날마다 평생 일과표의 궤도와 질서에 따라 규칙적인 삶에 탈선하지 말고 있어야 할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책임을 다하며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질서한 삶보다 영성생활에 해로운 것은 없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소금이 상징하는 바 참 깊습니다. 부패인생을 막아주는 소금입니다.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부패한 성인은 없습니다. 음식은 부패하여 맛이 가면 버리면 되지만 부패하여 맛이 간 인생이라면 참 대책이 없습니다. 이래서 소금이 절대적입니다. 그렇다면 소금은 무엇입니까? 

 

주님입니다. 끊임없는 기도, 끊임없는 말씀공부,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모시고 살아야 부패하지 않고 늘 새로울 수 있습니다. 영혼중의 영혼이 그리스도요, 말씀과 하나되야 비로소 살아나는 영혼입니다. 참으로 마음에 소금이신 주님을 모시고 살 때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인간을 부패하게 하는 주범이 바로 무지의 탐욕입니다. 그러니 생각이 없는, 의식이 없는 졸부拙들이 부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하는데 둘 다 무지의 소치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준열한 예언자적 경고는 바로 이런 부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탐욕의 무지를 일깨우는 회개를 촉구하는 천둥같은 충격요법의 말씀으로 복음과 맥을 같이 합니다.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 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 갔습니다.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고, 살육의 날에도 마음을 기름지게 하였습니다.”

 

이런 탐욕에 중독된 영혼없는 괴물같이 부패된 삶이라면 죽음의 날에 무슨 면목으로 아버지의 집에 귀가歸家할 수 있을런지요! 가난하다 무조건 천국도 아니고 부자라 하여 무조건 지옥도 아닙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이미 지상에서 시작됩니다. 참으로 깨어 하느님 중심의 삶에 철저하여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나의 삶을 사는 것이 궁극의 답입니다. 

 

바로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공부와 회개의 수행이 죄를 짓지 않고 날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화해 줍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철저히 깨어 하느님 중심의 삶을,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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