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 회개, 용서-2022.6.25.토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남북통일 기원미사)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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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6.25.토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남북통일 기원미사)

신명30,1-5 에페4,29-5,2 마태18,19ㄴ-22

 

 

 

민족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 회개, 용서-

 

 

 

오늘은 6.25 사변이 발발한지 7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 가톨릭 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해 남북통일 기원미사를 봉헌합니다. 며칠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계속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의 드라마가 계속되고 있다” 말씀하셨는데 휴전상태에 있는 남북관계를 두고 하는 말씀 같기도 합니다. 요즘 “통일”이라는 말마디가 사라진 느낌이지만 예전에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애절한 느낌의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겨레 살리는 통일, 이나라 찾는데 통일

 통일이여 어서오라, 통일이여 오라.”

 

가사의 진리는 여전히 변함이 없으니, 정말 남북이 살길은 평화통일뿐이겠습니다. 오늘 전례문에서 모처럼 통일이라는 말마디도 반가웠습니다. “평화통일을 이루어 주시어”, “주님의 오묘한 섭리로, 저희가 민족 통일의 희망을 키우고”, “하루빨리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 주시고, 남북의 온 겨레가 함께 모여, 기쁨의 잔치를 나누며 찬미하게 하소서” 등 우리의 소원인 민족통일, 남북평화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참 간절합니다.

 

지금부터 4년전 2018년 5월19일 밤, 전임 문대통령의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의 15만 평양 시민들 앞에서의 연설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요. 야당에서 조차 “한반도가 새로운 시대로 대전환한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이례적 평가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작금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 꿈처럼 생각되지만 연설문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일부 인용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평양시민 여러분, 동포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당시 인용하지 못했던 4년전 있었던 참 놀라운 기적같은 현실의 연설을 인용하니 감회가 깊습니다.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남북의 염원이 담긴 내용입니다. 참으로 악순환의 반복같은, 먹구름이 덮인듯한 작금의 답답한, 속상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남북의 평화통일의 꿈을 계속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전쟁의 참변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백배 낫습니다.

 

민족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의 꿈이 이뤄지기 위해 참으로 지극한 인내의 기다림이 요구됩니다. 소극적 인내가 아닌 내외적으로 부단한 분투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평화통일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노력과 더불어 오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그 방법을 알려 줍니다. 기도와 회개, 그리고 용서입니다.

 

첫째. 기도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우선 해야할 절박한 의무가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입니다. 개인기도는 물론 공동기도가 긴요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 은총이 개입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통일에 앞선 공동체의 평화가 우선입니다. 

 

어제 금요강론 자료중 한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전쟁을 설교하는 사람은 악마의 군종장교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다면 ‘푸틴의 전쟁을 지지한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치릴은 악마의 군종장교이겠네’ 하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바로 이래서 항구하고 간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 역시 함께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의 모토 역시 위 성구에 근거한 “마음을 모아(마태18,19) 평화의 길로”입니다. 정말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 하느님 주시는 평화공존의 선물이며, 이것은 우리 수도공동체 형제들이 실감하는 진리입니다.

 

둘째, 회개입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회개입니다. 기도의 생활화, 회개의 생활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공동전례기도의 은총에 감사합니다. 정말 무지와 탐욕에 대한 답도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신명기의 주제도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의 운명을 바꿔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주목되는 말마디가 “오늘”입니다. 지난 과거에 안타까워 할 것 없이, 미래를 앞당겨 걱정할 것 없이, 바로 “오늘” 회개와 더불어 하루하루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자세로 주어진 일상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이어 주님은 회개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평화통일의 약속까지 주십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너희를 다시 모아들일 것이다. 너희가 하늘 끝까지 쫓겨났다 하더라도,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너희를 모아들이시고 그곳에서 너희를 데려오실 것이다. 너희가 더 잘되고 번성하게 해 줄 것이다.”

 

셋째, 용서입니다.

용서가 답입니다. 용서의 훈련이요, 용서의 생활화입니다. 용서와 더불어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평화입니다. 그러니 용서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상처의 기억은 물에 새기고 감사의 추억은 바위에 새기라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끊임없는 용서가 상처의 기억을 흐르는 물같은 마음에 새기게 합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의 문답에서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는 베드로의 물음에 끊임없는 용서의 의무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 역시 제2독서 에페소에서 우리 모두 용서의 사람이,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사랑의 삶을 살아갈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형제 여러분,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주님께 용서받았기에 용서할 수 있으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신적 사랑의 용서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어 주님은 우리 모두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참 좋으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처럼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는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리시어 “끊임없는” 기도의 사람, 회개의 사람, 용서의 사람으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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