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18.연중 제6주간 토요일 히브11,1-7 마르9,2-13
믿음의 여정, 믿음의 전사
-부단한 신비체험 은총과 훈련의 노력-
“믿음으로 믿음으로 하나가 되리라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하나가 되리라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사랑을 바치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즐거이 바치리 믿음으로”
자주 흥얼거리며 불러 보는 성가 480장 믿음으로 3-4절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믿음 없으면 남는 것은 허무와 헛된 욕망뿐입니다. 노욕과 노추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품위있고 아름다운 노년과 죽음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세월 흘러 나이들어갈수록 믿음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60대 중반에 떠난 선배 수도사제의 선종의 죽음입니다. 제가 늦깎이로 수도원 입회했기에 나이는 저보다 적지만 수도생활은 저보다 10년 정도 앞선 분입니다. 문병후 3일후에 선종하셨는데 문병때도 죽음의 공포가 전혀 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환대해줬던 분으로 위로하러 갔던 제가 오히려 위로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신부님은 손에 열알 짜리 묵주를 잡고 끊임없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기도시도 낭독해 드렸고 신부님은 정말 좋다고 화답까지 해줬습니다. 믿음의 정체가 환히 드러나는 죽음입니다. 평상시 믿음의 전사로서 믿음의 여정에 충실해 왔던 결과 이런 아름답고 품위있는 선종의 죽음입니다.
공동휴게 시간이 되도 활발히 어울리기는 힘들어 때로 안락의자에 기대어 수도원 역사 사진첩을 보곤 합니다. 30년전 제 나이 40대 중반, 머리카락도 까맣던 풋풋했던 젊었을 때의 사진들이 참 매력적이었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세월흘러 나이들었음을 확인케 하는 옛 사진들이었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절실하고 절박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장수시대라 하지만 많아야 대부분 90세 전후에 세상을 떠나고, 나이 관계없이 갑작스런 죽음의 비보도 들려오곤 합니다. 그러니 살아온 날보다는 살 날이 짧다는 고작 15년 정도 남았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참 소중한 선물이란 자각에 믿음을 새로이 하게 됩니다. 죽으면 영원한 안식에 휴가일진데 휴가도 아깝다는 생각에 휴가를 접은지 수십년입니다.
믿음의 여정중에 믿음의 전사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과연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날로 성장成長하면서 익어 성숙成熟해가는 믿음의 여정인지요. 제가 늘 자주 인용해왔던 믿음의 순례 여정중 지금의 우리 위치입니다. 일일일생 하루로 우리 인생을 압축하면 어느 시점에, 일년사계로 우리 인생을 압축하면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겠는가 하는 점검입니다. 제 경우 늘 확인하다 시피 아마 오후 6시 해가 지는 죽음이라면 지금은 오후 4시, 봄-여름-가을-겨울 인생중 지금은 초겨울쯤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묵상이 환상이나 거품을 거둬내고 하루하루의 선물 인생, 날마다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깊이의 믿음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노년은 물론 참으로 아름답고 품위있는 삶을 위한 우선순위의 세 요소가 생각납니다.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입니다. 참으로 믿음이 좋아야 이에 따르는 영육의 건강이요, 탐욕의 절제입니다. 믿음 없이는 건강과 돈이 절대의 우상이 되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입니다. 나무처럼 믿음의 내적 여정중 평생 날로 성장해가는 믿음입니다. 역시 믿음의 성장에도 도약이나 비약은 첩경의 지름길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신비체험 은총과 부단한 훈련의 노력을 전제로 합니다. 믿음에 제대는 없습니다. 죽어야 제대로 영원한 현역의 믿음의 전사라는 것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하는 주님의 전사입니다.
그래서 끝기도로 하루의 영적전쟁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는 참 편안해 이런 선종의 죽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때가 많습니다. 오후 8시30분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12시 30분에 일어나면 4시간 정도의 수면이지만 참 깊고 단 잠이니 주님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그 잘 때에 은혜를 베푸심이로다”(시편127,2ㄴ) 말씀도 그대로 체험하는 잠시간입니다.
어제까지 제1독서는 창세기였는데 오늘부터는 히브리서가 소개됩니다. 오늘은 히브리서 11장 믿음에 관한 내용의 시작입니다. 먼저 믿음에 대한 정의에 이어 믿음의 모범적 인물들에 대한 소개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保證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確證입니다.”
바로 믿음의 정의입니다. 바로 옛사람들은 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인정받으니 믿음보다 더 큰 자산은 없습니다. 불신불립不信不立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서지 못합니다. 믿음을, 신뢰를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요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 잃어도 믿음만, 신뢰를 잃지 않으면 곧 다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믿음입니다. 생명보다 중요한 믿음입니다. 믿음 때문에 생명까지 바친 순교의 죽음입니다.
믿음의 훈련과 더불어 믿음의 뿌리, 믿음의 탄력입니다. 믿음도 한결같은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믿음의 은총과 훈련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여 더욱 주님을 닮게 합니다. 교황님 말씀대로 영적 평범함(spiritual mediocrity)을, 세상의 안락함(worldly confort)과 천박함(superficiality)을 극복하게 하고,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의 친밀함(closeness)과 연민(compassion), 부드러움(tenderness)을 닮게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믿음의 공부에 믿음의 훈련에 참 큰 도움이 됩니다. 내용이 적절해 인용하여 나눕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원하였습니다.
참 한결같이 훌륭한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은 시종여일始終如一한 믿음의 전사들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감동하시는 바도 우리의 믿음입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믿음의 훈련입니다. 도대체 영성생활의 수행에 훈련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도,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훈련입니다. 영원한 현역의 믿음의 전사에게 죽는 그날까지 한결같은 믿음의 훈련은 필수입니다. 제가 매일 쓰는 강론 역시 일종의 믿음의 훈련이요 수도자들이 매일 평생 바치는 공동전례기도 역시 참 좋은 믿음의 훈련입니다.
이런 훈련에 자극과 더불어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는 신비체험의 은총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보다 시피 믿음의 훈련에 다소 피곤해진 최측근의 애제자들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당신의 신비스런 변모 사건을, 당신 부활의 영광을 미리 앞당겨 체험토록 특별 피정 시간을 갖습니다. 주님의 각별한 배려 은총의 신비 체험입니다. 신비체험에 매혹된 베드로는 엉겁결에 그 영적 욕심의 집착을 드러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즉시 제동을 걸고 나오는 하느님은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제정신을 찾아 제자리에서 제대로 믿음의 일상에 충실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바로 광야 인생, 믿음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제 신비체험의 은총을 선물로 받았으니 일상에 복귀하여 주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경청하고 한결같이 기도하며 믿음의 전사로서 믿음의 훈련, 믿음의 여정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당신 모습으로 점차 변모시켜 주시고, 믿음의 여정 중인 우리 모두가 영원한 도반이신 당신과의 우정을 날로 깊게 하시며, 시종일관始終一貫 훌륭한 믿음의 전사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