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도자의 모델 -착한 목자 에수님-2015.8.19.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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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19.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판관9,6-15 마태20,1-16


                                                                                         참 지도자의 모델

                                                                                        -착한 목자 예수님-


오늘은 참 지도자의 모델에 대한 묵상 나눔입니다. 물론 참 지도자의 모델은 복음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 밭임자가 상징하는 예수님이십니다. 1독서의 판관기에 요탐의 우화의 가시나무가 상징하는 폭군 아비멜렉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지도자의 두 유형을 봅니다. 사람 중심의 착한목자같은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폭군같은 독재자도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첨가한다면 돈 중심의 사업가 CEO같은 지도자도 있고 이런 세일즈맨 지도자가 각광받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각별한 체험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새벽2-4:30까지 온갖 정성을 다해 썼던 강론이 노트북 활용의 미숙으로 단 몇초 만에 완전히 날렸습니다. 참 허망했습니다. 디지털현대문명의 기반이 얼마나 위태하고 취약한지, 흡사 사상누각 모래위의 문명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예전에 써놓았던 연중 20주간 수요일 B해 강론을 물색하다가 2009년8월19일 강론을 찾아냈습니다. 만 6년전인데 날짜도 말씀도 똑같았습니다. 마침 그날은 김대중 토마스 모아 전 대통령이 돌아간 다음날 이었기에 강론에는 비통한 심정이 담겨있었습니다. 이 6년전에 했던 강론을 수도원 미사때에 다시 나눴습니다. 이 사건을 통한 네가지의 깨달음입니다.


1.망하는 것은 순간이다. 2시간30분 작업했던 것이 몇 초만에 사라져 무가 되듯 예고 없는 순간의 실수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무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2.역사는 반복된다. 인간 본질은 그대로 이기에 반복되는 역사이듯 6년전의 오늘 강론은 그대로 오늘에도 해당됨을 봅니다.


3.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늘 계속되는 강론을 잘 살펴보면 결국은 같은 진리의 반복이요 새로운 것이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4.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날은, 똑같은 강론은 없다. 같음중에도 같지 않은 새로움이 있습니다. 바로 이래서 매일 강론을 새로이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의 하늘 나라 비유에서 선한 포도원 주인은 그대로 착한 목자 하느님을,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9시에, 12시에, 오후3시에, 일이 끝나기 직전 오후5시에 온 이나 똑같이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 일당을 지급합니다. 보편적  인간상식에 어긋난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맨먼저 온 이의 불평도 이해가 갑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 군요.”


흡사 루가복음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15,11-32)’에서 아우가 돌아왔을 때 자비하신 아버지에 대한 큰형의 반응과 흡사합니다. 하느님으로 상징되는 선한 밭주인에겐 모두가 자비의 대상입니다. 일한 양에 상관없이 모두가 먹고 살아야 하는 당신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모두가 한 데나리온의 일당의 생활비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바로 자비로우신 착한목자 하느님의, 예수님의 계산법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합리적 상식의 잣대로 잰다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 어리석은 일인지 맨먼저 온이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사람 중심의 착한목자 주님은 결코 돈 중심의 이윤추구가 목적인 사업가 CEO가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하늘 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요즘 널리 회자되고 있는 기본소득제의 원조임을 봅니다. 나이나 직위, 노동량에 관계 없이 모든 개인들에게 최소한도의 생활비를 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빈부의 격차와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이미 곳곳에서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기본소득제'입니다. 이래야 가난한 이도, 병약한 이도, 돈없고 능력없는 이도 최소한 인간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습니다.


어제 카톡을 통해 많은 이들과 나눈 시화詩話에 감사합니다. 산책중 노란 수세미꽃을 발견하고 쓴시에 어느 수녀님(허엘리야)이 시화를 만들어 줬습니다. 


-내 산책시간은/보석같은 시詩들을 줍는 시간

 “나도 여기 있어요!”/소스라쳐 놀라 돌아보니

 노란 수세미꽃 /환히 웃고 있었다.

 “나 여기 있다!”/웃으며 바라보시는 주님같다.


시에 대한 형제자매들의 반응도 놀랍고 고무적이었습니다. 시를 묵상하면서 복음의 선한 밭주인이 상징하는 착한목자 주님의 마음을 순간 깨달았습니다. 선한 밭주인에겐 9시, 12시, 오후3시, 오후5시에 발견된 실업자들 모두가 ‘나도 여기있어요!’ 하고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눈빛들이었을 것이고, 선한 밭주인은 두말 없이 고용하여 똑같은 일당을 제공했습니다. 


착한목자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나 여기 있다!’ 웃으며 말씀하시며 우리모두에게 생명의 빵과 더불어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어렵고 힘들 때 ‘나 여기 있다!’ 웃으며 말씀하시는 주님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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