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4.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콜로1,21-23 루카6,1-5

 

 

 

분별의 잣대는 예수님

-예수님과 사랑의 우정 관계가 결정적이다-

 

 

 

 

-“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

  굳건히 이룩하신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시편8,4-5)-

 

저절로 시편이 흘러나오는, 참 오랜만에 보는 별 총총한 가을 밤 하늘입니다. 어제 쓴 짧은 시도 생각납니다.

 

-“가을은

  기도와 은총의 계절

 

  밤알을 줍듯

  은총을 줍는다

 

  눈만 열리면

  온통 널려 반짝이는 은총의 선물들이다”-

 

저에겐 성경의 찬미와 감사의 시편들이 그러합니다. 오늘 성무일도시 독서의 기도, 시편136장 1-26절까지 내용은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웠는지요. 매절 마다 계속되는 후렴,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시간 되면 읽으며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첫절과 끝절입니다. 

 

-"1.주님은 어지시다 찬양들 하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26.하늘의 하느님을 찬양들 하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미사 때 성가를 부르지 못한지도 1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 중 문득 생각난 둘 다 ‘주 예수’로 시작되는 가톨릭 성가 두장의 첫절입니다. 

 

“주 예수 우리의 희망, 우리의 행복, 

 내 일생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리.

 생명의 길 밝혀 주시니, 주님을 따르리, 십자의 길로

 주님을 현양하리, 사랑의 길로.”(성가19)

 

“주 예수와 바꿀수는 없네, 이 세상 부귀영화와 권세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 사랑이여

 세상 즐거움 다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와 바꿀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성가61)

 

더불어 생각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토마스 사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는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20,29ㄴ).

믿음 대신 사랑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사랑하느냐? 보지 않고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참으로 보지 않고도 믿고 사랑하는 예수님인가 자문하게 됩니다. 베네딕도 규칙서의 절정인 이상적인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를 위한 헌장과 같은 한문장으로 된 72장(4-12) 긴 부분을 나눕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보다 아무 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저에게 날마다 새벽 강론 쓰는 시간은 1.기도하는 시간, 2.사랑하는 시간, 3.회개하는 시간, 4.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강론을 쓰는 이른 새벽 고요중에도 무수한 가을 풀벌레 맑고 영롱한 찬미소리는 밤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중 무엇보다 주목되는 절이 “그리스도보다 아무 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다.”입니다. 그대로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성규4,21)는 구절과 일치합니다.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그리스도 주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주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모범인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고백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하느님과 우리의 화해자이자 중재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사랑의 우정 관계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과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우정관계는 날로 깊어져가고 있는 지요. 

 

“여러분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주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을 지니고 꿋꿋이 견디어 내며 주님과 사랑의 우정 관계를 깊이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처럼 비슷한 내용의 연장입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은 사실에 대해 시비를 걸고 나섭니다. 여전히 바리사이의 꼰대질은 계속됩니다. 예수님처럼 새 부대의 의식으로 바뀌어야 새 포도주의 현실을 분별할 수 있었을 터인데 이들은 절벽같은 율법지상주의자들입니다. 

 

도대체 이들은 사랑의 잣대가 아닌 율법의 잣대를 들이 댑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진리를 망각했습니다. 사랑의 절대적 법 앞에 상대화되는 율법임을 몰랐습니다. 나무와 더불어 숲을 봐야 함을 몰랐습니다. 똑똑한 바보, 말그대로 무지의 사람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예수님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늘 새 부대와 같은 하느님 사랑의 마음으로 새 포도주같은 살아 있는 현실을 담아 냈습니다. 

 

새삼 꼰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뿐임을 깨닫습니다. 날로 예수님과 사랑의 우정관계를 깊이하는 것입니다. 주변환경이 아름다워서 평화의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과 사랑의 우정 관계가 깊어갈수록 평화의 천국입니다. 강론을 쓰는 도중 화답송 시편이 반갑게 한 눈에 들어 옵니다.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시편54,6)

 

참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 이처럼 고백하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주의자이자 율법주의자인 바리사이들에게 다윗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이들의 사고 방식의 전환을 촉구하며 결론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도 사랑의 예수님 앞에는 상대화 된다는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선과 진리와 사랑의 화신인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분별의 잣대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과 사랑의 우정관계가 깊어가면서 우리 마음이 예수님 성심聖心의 마음이 될 때 저절로 올바른 분별입니다. 그러니 늘 분별에 임박하여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물으면 절로 답이 나올 것입니다. 마침 어제 읽은 일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똑같은 날,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말합니다. “친구여, 만일 네가 무엇을 하는지 안다면 너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네가 모른다면 너는 율법의 파괴자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참 의미심장합니다. 생각없이 하는 무지의 행위가 아닌 사랑의 행위는 무죄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이자 예수님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 사랑의 우정관계를 날로 깊이해 주시며 분별력의 지혜를 선물하십니다.

 

"좋으니이다 지존하신 임이여, 주님을 기려높임이

그 이름 노래함이 좋으니이다.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이면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

 

주님, 하시는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손수 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

주님 하신 일들이 얼마나 크옵시며,

생각하심 그 얼마나 깊으시나이까."(시편92,2-3;5-6). 아멘.

 

 

 

 

 

 

 

  • ?
    고안젤로 2021.09.04 09:31
    똑같은 날,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말합니다. “친구여, 만일 네가 무엇을 하는지 안다면 너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네가 모른다면 너는 율법의 파괴자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참 의미심장합니다. 생각없이 하는 무지의 행위가 아닌 사랑의 행위는 무죄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이자 예수님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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