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빵-2015.8.2. 연중 제18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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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2. 연중 제18주일                                                                                       탈출16,2-4 에페4,17.20-24 요한6,24-35


                                                                                     생명의 빵


저에겐 독특하면서도(?) 거룩한 취미가 있습니다. 면담성사를 보는 분들에게 집무실 게시판에 붙어있는 제 자작시를 가능한 큰 소리로 읽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 영성생활의 수행에 좋은 글이나 시를 소리내어 읽거나 노래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무일도를 함께 마음을 다해 낭송하고 또 노래하며 겪는 여기 요셉수도형제들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어제도 언젠가 강론에 인용했던 ‘사랑은 저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시를 낭송케하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사실 요즘 수도원 뜨락에 밤마다 아침마다 청초하게 피어나는 무수한 달맞이꽃들을 보면 저절로 나오는 시입니다.


-달맞이꽃 축제다/달맞이꽃 사랑이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버려진 빈 터

 누가 봐준들 봐주지 않은 들/무슨 상관이랴

 하늘 임만/보신다면야


 사랑은 저렇게 하는 것이다

 삶의 스승이다

 날마다/밤마다/아침마다

 새롭게 하늘 사랑/꽃 피어내며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연노랑 청초한/달맞이꽃 사랑

 주변이 환하다

 매일이 새날이요 사랑이요 영원이로구나-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하며는 예뻐집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과 하나되어 갈수록 저절로 이런 사랑에 주변이 환해집니다. 날마다 새날이요 사랑이요 영원이요 하늘 나라입니다. 어제 저녁에 이은 아침성무일도 즈카리야 후렴도 신명 나게 불렀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방금 또 우리는 미사중 화답송 후렴을 흥겹게 부르며 하늘의 빵을 주시는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께서 ‘하늘의 빵’을 우리에게 주시니라."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있는 나(I AM)’입니다. 구체적으로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통해 하느님의 이름이 환히 드러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I AM the Light of the World)

 나는 문이다(I AM the Gate)

 나는 착한 목자이다(I AM the Good Shepherd)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나는 포도나무다(I AM the Vine)

 나는 생명의 빵이다(I AM the Bread of the Life)-


요한 복음에서의 위 일곱 개의 말씀이 우리 예수님의 신적 기원을 가리킵니다. 아, 우리 하느님은 바로 이런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바로 이것이 우리 하느님에 대한 정의입니다. 위 일곱 개 하느님의 이름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정의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배고프고 목마른 인간’

이것이 인간에 대한 정의입니다. 영육으로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마음의 허기는 바로 영혼이 배고프고 목마르다는 신호입니다. 육신의 배는 밥으로 채울수 있어도 무한한 영혼은 생명의 빵인 주님만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영육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한분 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이를 분명히 합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은 우리의 궁극적 배고픔과 목마름이 일거에 해결되는 참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의 은총이 참 놀랍고 신비롭습니다. 저는 세 측면에 걸쳐 그 효능을 소개합니다.


첫째, 불평과 불만을 찬미와 감사로 바꿔 줍니다.

불평과 불만보다 사람을 망가뜨리고 오그라 들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영혼이 불평과 불만의 양 날개를 달면 추락이지만, 감사와 찬미의 양 날개를 달면 하느님 창공을 훨훨 자유로이 납니다. 불평과 불만이 부정적 비관적 인생관을 만든다면 찬미와 감사는 긍정적 낙관적 축복의 인생관으로 만들어 줍니다. 불평과 불만은 공동체를 분열시키지만 찬미와 감사는 공동체를 일치시키고 업그레이도 시킵니다. 


찬미와 감사의 망각이,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인내의 부족이 참 큰 병입니다. 바로 오늘 이집트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믿음 부족으로 불평하는 모습이 그 좋은 증거입니다. 이 또한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그 무렵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모세와 아론에 대한 불평은 그대로 하느님에 대한 불평과 직결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하느님은 메추라기 떼와 만나를 내려 주십니다만 기분은 영 유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사부인 성 베네닉도 역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수도형제들이 투덜거리며 불평하는 것이 었습니다. 놀랍고도 신비롭게 생명의 빵이신 주님의 은총이,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를 찬미와 감사의 사람으로 변모시켜줍니다.  


둘째,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는 삶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는 삶으로 바꿔 줍니다. 인간 삶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 둘입니다. 바로 생명과 직결되는 하느님과 밥입니다. 왜관수도원이나 우리 수도원만 봐도 연로한  수도자일수록 성당의 기도소에 일찍 나오며 밥상에도 일찍 자리 잡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으로 영혼을 먹여주고 밥으로 육신을 먹여줘야 균형잡힌 전인적 건강한 삶입니다. 


하느님과 기도는 없고 밥과 일만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영혼의 영양실조에 그 인생 품위도 잃어 참으로 추하고 황량할 것입니다. 계속 썩어 없어질 양식만 구하다가 그 인생 마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불행하겠는지요. 주님의 충고가 참 적절합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고자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사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주님을 찾다보면 적절양의 필요한 썩어 없어질 양식도 저절로 따르기 마련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의 다음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무조건 썩어 없어질 양식이 부정이 아니라 우선순위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추구할 바가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요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 분도수도회의 사부 성 베네딕도 역시 이를 분명히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할 것이다.”


하느님께 영광,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 바로 이것이 분별의 잣대입니다. 생명의 빵인 주님의 은총이 이런 분별의 지혜를 선사하시며 영원한 생명의 빵인 당신을 우선적으로 찾게 하십니다.



셋째,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의 옷으로 바꿔 줍니다. 

세례성사로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의 옷으로 바꿔입은 우리들인데 다시 옛 인간을 입고 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세속적 가치관으로 사는 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 점을 잘 지적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다른 불신자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하여 듣고 또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으십시오.”


참 적절허고 아름다운 훈계 말씀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의 은총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옛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을 입는 시간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살라고 했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옛 인간입니다. 날마다 어제의 옛 인간을 벗어버리고 오늘 새 인간을 입는 것입니다.


영어 present 단어 뜻이 신기합니다. 발음은 다소 틀리지만 철자는 똑같은데 뜻은 둘입니다. 하나는 ‘현재(발음preznt)’이고 하나는 ‘선물(발음prizent)’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의 ‘현재’가 최상, 최고의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입고 지내야 할 새 인간의 옷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 모두 옛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을 입는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새 인간은 찬미와 감사의 사람이요 영원한 생명의 주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사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믿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하느님의 일은 없습니다.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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