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기-2015.9.12.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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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2.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1티모1,15-17 루카6,43-49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기


오늘 강론 제목은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기’입니다. 과연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사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요? 제자리를 잃고, 제정신을 잃고 제대로 살지 못하니 안팎으로 무너지고 망가지는 현실입니다. 하여 자주 물어야 합니다.


‘수도자는 누구인가?’ 매일 묻는 자가 수도자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내 살 날은 얼마나 남았나?' 자주 물어야 하는 질문들입니다. 물어야 답도 나오고 의미도 찾습니다. 그러나 이런 물음없이 생각없이, 되는대로 사는 이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참으로 철학적, 인문학적, 신학적 성찰과 물음이 절박한 물질주의, 배금주의, 현실지상주의,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탓없이 타고나는 유전적 요인들 앞에 환경적 요인들은 얼마나 무력한지요. 잘 들여다보면 참 타고나지 않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건강도, 성격도, 체질도, 피부도, 음성도, 노래도, 습관도, 재주도, 외모도, 말하기도, 글쓰기도, 운동능력도, 병도 타고 납니다. 요즘은 재산도 타고나는 도저히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여 타고남을 뜻하는 ‘하늘 천(天)자’가 들어가는 천품天稟, 천성天性, 천재天才, 천진天眞이란 단어입니다. 그러니 타고난 것들도 별수 없고 환경적 조건도 좋지 않다면 그 절망감은 얼마나 크겠는지요. 이래서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도 판단하지 말고 모두에게 연민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오로지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과 신뢰를 둬야 합니다.


대부분이 머리나 능력에 앞서 인성을 성공의 요소를 꼽는데, 인성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육성되는 것일까요 묻게 됩니다. 본색을 드러낸다는 말도 있는데 아무리 교육을 하여 변화된 듯 해도 페인트칠한 것이 벗겨지면 본색이 드러나듯 어느 상황이 되면 인성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인성이 좋아야 하는데 과연 인성은 전적으로 변화하여 좋게 변화될 수 있는지 묻게 됩니다. 하여 무엇이 되기에 앞서 우선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즘 위정자들의 행태나 야당의 내분 사태를 보면 인성에 대해 회의감이 참 많이 듭니다.


건강하게 태어난 이들은 별 운동을 하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건강합니다. 좋은 재주를 타고 난 이들은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성과를 내지만 재주를 타고 나지 않은 이들은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아무도 유전자 DNA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때로 비관론적 숙명론자가 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키워드가 되는 말은 단락별로 첫째는 ‘나무’요, 둘째는 ‘마음’이요, 셋째는 ‘실행’입니다. 첫째 단락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이 누구나에게 자명한 사실입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 들이지 못한다.’


세상 누구도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를 원하지 나쁜 나무에 나쁜 열매를 원하는 이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나무’대신 ‘사람’을 넣으면 더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사실 좋은 사람은 좋은 말과 행동이란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은 모두 그 말과 행동의 열매를 보면 압니다. 나쁜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때로 듣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란 평가의 말입니다. 사람 역시 그 말과 표정, 행동의 열매를 보면 압니다. 둘째 단락은 구체적으로 ‘나무’를 ‘마음’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인성이 문제입니다. 선한 마음이 선한 인성이 중요합니다. 악한 마음, 악한 인성은 변화될 수 없는 결정적인 것일까요. 우리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절대 NO라고 말합니다. 바로 여기서 회개의 은총을 말합니다. 단번의 비상한 회개도 있겠지만 끊임없는 회개를 통한 마음의 정화요 성화의 변화입니다. 페인트칠 회개가 아니라 근본적 변화의 회개입니다. 회개의 열매가 선행의 실천입니다. 셋째 단락에서 강조되는 단어가 실행입니다.


마음에서 실행도 나오지만,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항구한 실행이 서서히 마음의 인성을, 인성의 DNA를 변화시켜 좋은 마음, 좋은 인성으로 만듭니다. 나무의 변화는 불가능해도 사람의 변화는 항구한 수행의 노력에 따른 하느님 은총으로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결정적인 본보기가 바오로 사도요 아오스팅 성인입니다. 제가 볼 때 두 성인은 열정은 대단했지만 타고난 인성으로 하면 도저히 좋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항구한 수행과 하느님의 비상한 은총으로 신성神性같은 인성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바로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영원한 희망의 표지입니다. 결국은 실행입니다. 회개의 열매인 항구한 말씀의 실행이 우리의 마음을, 운명을 바꿉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말씀을 실행하며 살라고 수행자입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말씀을 실행하는 수행자입니다. 말씀의 실행에 따라 운명은 둘로 나뉩니다.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과연 이런 개인이나 가정, 국가는 몇이나 될런지요. 너무나 실행의 부족으로 기초가, 기본이, 기반이 허약한 오늘날 대부분의 개인, 가정, 국가 현실입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이런 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 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이런 모습을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지 않습니까? 기초 체력이, 기초 실력이 참 부족한, 기본이 되지 않은 오늘날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말씀의 항구한 실행으로 기초에, 기본에  충실한 삶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반석위의 기초위에 인생집을 지어 주시고, 더욱 말씀의 실행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늘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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