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과 ‘살림’의 아름답고 참된 공동체 -하느님 중심-2019.2.8.연중 제4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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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8.연중 제4주간 금요일                                                                                     히브13,1-8 마르6,14-29

 

 

 

‘열림’과 ‘살림’의 아름답고 참된 공동체

-하느님 중심-

 

 

 

오늘 마르코 복음의 배치가 의미심장합니다. 어제 복음의 앞 내용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다’이고 오늘 복음 다음은 제자들이 돌아 와 한 일들을 모두 보고 한 후 ‘오천명을 먹이시다’ 기적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은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와 ‘세례자 요한의 죽음’으로 이루어 집니다. 

 

바로 독자들이 요한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은 물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은 물론 제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고 새삼 자신의 사명과 죽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삶의 중심이 없는 헤로데 임금과 그의 아내 헤로디아, 헤로디아의 딸 그리고 하느님 중심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중심의 정의에 입각해 불의한 헤로데에게 충언했고, 우유부단한 헤로데는 간악한 헤로디아의 사주에 넘어가 요한을 목베어 죽이게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죽음입니다. 불의가 정의를 압도하는 상황처럼 보입니다. 하느님 중심이 없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 참 좋은 사례가 됩니다. 이런 요한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과 제자들은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했을 것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자신들의 삶을 재점검했을 것입니다. 

 

죽음보다 더 좋은 가르침은 없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물음에 직결됩니다. 며칠전 선배 사제의 예언자적 치열한 삶에 깊은 충격과 더불어 많은 부끄러움을 느낀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 땅에 정의를-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이란 725쪽에 이르는 방대한 대담집을 참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에 걸친 사회현실과 교회현실에 대한 이해도 깊이 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치열히 공부하고 실천하며 주님을 따랐던 사제였습니다.

 

새삼 하루하루 제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부르심에 충실한 하느님 중심의 예언자적 삶을 살 때 거룩한 죽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성인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에게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늘 깨어 살게 한 ‘살아있는 화두’였을 것입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분도 성인이 제자 수도형제들에게 준 가르침입니다. 사막교부들 사이에서도 많이 회자된 말씀입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 앞에 환히 두고 살 때 저절로 하느님 중심의 참된 삶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 중심의 참된 공동체 삶을 공부하게 됩니다. 바로 오늘 히브리서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답고 참된 공동체 삶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는 공동체가 참 좋은 공동체입니다. 서로간은 물론 세상에도 활짝 열려있는 이타적 개방의 열림의 공동체, 살림의 공동체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일 때 형제애 가득한 열림과 살림의 아름답고 참된 공동체입니다. 구체적으로 형제애는 다음처럼 드러납니다.

 

1.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않는 환대의 공동체입니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했습니다. 분도 성인은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 했습니다.

2.감옥에 갇힌 이들을 자신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는 것입니다.

3.혼인은 존중되어야 하고 부부의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륜을 저지르는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느님께서 심판하십니다.

4.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5.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우리 지도자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이런 삶의 스승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형제애에 대한 구체적 처방이 고맙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웃에 활짝 열려있는, 살아있는, 열림과 살림의 아름답고 참된 사랑의 공동체, 끊임없이 공부하는 배움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공동체 삶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공동체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을 배워 닮아갈 때 아름답고 참된 열림과 살림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아름답고 참된 열림과 살림의 공동체를 건설해 주십니다. 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자작 좌우명 시 마지막 연을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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