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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19 연중 제6주간 화요일                                                                     창세6,5-8;7,1-5.10 마르8,14-21

 

 

하느님과 함께 걷는 삶

-의인義人의 삶-

 

 

새벽에 또 흰눈이 내렸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주님과 함께 강론을 쓴 후 흰눈을 맞으며 수도원 길, 눈길을 걸으며 주님과 함께 묵주기도 20단을 바쳤습니다. 하루중 가장 행복한 새벽 시간입니다. 눈길을 걸으니 문득 20년전 쓴 시가 생각나 나눕니다.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

 밤하늘/초롱초롱한 별빛 영혼으로/사는 이

 푸른하늘 흰구름되어/임의 품안에/노니는 이

 떠오르는 태양/황홀한 사랑 동녘향해/마냥 걷다가 사라진이

 첫눈 내린 하얀길/마냥 걷다 사라져/하얀 그리움이 된 이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1999.2.28

 

오늘 오후 2시, 왜관수도원에서는 엊그제 돌아가신, 요셉수도원을 사랑해주셨던 왜관수도원의 초대 오도 아빠스님의 장례미사가 있습니다. 평생 흠없이 주님과 함께 걸으며 순종의 삶을 살아오신 의인 오도 아빠스님의 하늘 귀가길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흰눈처럼 생각됩니다. 하여 저를 비롯한 여러 수도형제들이 장례미사 참석차 왜관에 갑니다.

 

"주님, 오도 아빠스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예나 이제나 변함없는 인간같습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무지와 탐욕의 인간같습니다. “사람이 희망이다.”하는 데 과연 인간에게 미래가, 희망이 있는가 회의감이 들때도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서두 말씀은 그대로 오늘날도 통한다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창세6,5)

 

참 실감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현실을 봐도 여전히 반복되는 부정적 현실같습니다. 신문지상이나 인터넷 기사를 보아도 여전히 악이 만연된 세상같습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위에서 쓸어버리겠다.---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세상을 말끔히 대청소하시겠다는 말씀이시며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일단의 생물들을 제외하곤 모두 홍수로 멸망시키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셔도 주님의 눈엔 실망가득한 세상일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악하게 변질되었을까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망애信望愛, 향주삼덕向主三德을 잃으면 인간의 타락은 명약관화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궁극의 희망을 잃었을 때, 희망의 끈이 끊어졌을 때, 사람은 거칠고 악하게 변질되기 마련입니다.

 

바로 여기서 주목되는 사람이 노아입니다. 이상적 의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창세6,8). 주님의 눈에 드는 삶, 말 그대로 진선미眞善美의 삶, 신망애信望愛의 삶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는 생략되었지만 이어지는 구절도 참 좋습니다.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창세6,9ㄴㄷ).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란 영어 표현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Noah walked with God.’,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걸어갔다.’ 얼마나 친근감 넘치는 표현인지요. 토마스 머튼이 서품 상본 성구로 삼은 또 제가 좋아하는 창세기 5장24절에도 똑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들 데려가신 것이다.’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longer here, for God took him.’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걸었다.’ 얼마나 정답고 아름다운 표현인지요. 삶은 하느님과 함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착안한 ‘하느님과 함께 걷는 삶-의인의 삶-’이란 강론 제목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도반임이 드러납니다. 많이 걸으십시오. 우울증에 대한 최고의 처방이자 치유가 걷기라 합니다. 

 

주님과 함께 걸으며 대화의 기도를 해서 좋고 심신의 건강에도 좋으니 일석이조, 일거양득입니다. 치매에 걸려도 고운 치매일 것입니다. 어느 자매가 들려 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고운 치매에 고마워한 기억이 선명합니다.

 

“시어머니는 믿음이 좋으셨어요. 치매에 걸리니 말없이 웃으시며, ‘고맙다, 고마워’ 말씀만 하시는 거예요. 참 귀엽고 예뻐요.”

 

주님과 함께 살아갈 때, 걸어갈 때 이처럼 치매에 걸려도 예쁜 치매, 착한 치매일 것입니다. 아니 아예 치매에 걸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늘 주님과 함께 걷는 기쁨과 행복의 진선미, 신망애의 삶인데 치매에 걸릴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주님과 함께 살아갈 때, 걸어갈 때, 주님의 눈에 드는 영육으로 건강한 의인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창세7,5) 라는 구절에서 주님과 함께 살며 순종의 삶에 항구했던 의인 노아임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제자들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그렇게 완고하니 말입니다. 얼마전의 빵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이를 까맣게 잊고 빵이 없다고 수군거립니다. 어제 바리사이들에 이어 제자들 역시 믿음의 눈이 멀었습니다. 이들 또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많이 하느님의 은혜를 잊고 지내는 우리들인지요. 다음 말씀은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했어도 주님과 함께 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주님과 늘 함께 살아갔다면, 함께 걸으며 대화의 기도에 충실했다면 이렇게 완고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과 늘 함께 할 때 주님의 은총으로 깨끗한 마음에 깨어있게 되고 이어지는 깨달음의 열매들입니다. 망각이나 완고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완고함의 치유와 더불어 귀와 눈을 열어 주시고, 우리 모두 의인이 되어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 저희가 천상 진미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참생명을 주는 이 양식을 언제나 갈망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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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2.19 06:54
    매일 주시는 주님 말씀의 양식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잊어 버리는 세상속에서 생활의 기준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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