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여정 -하늘 나라의 삶- 2021.1.4.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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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4.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1요한3,22-4,5 마태4,12-17.23-25

 

 

 

회개의 여정

-하늘 나라의 삶-

 

 

 

몇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제가 즐겨 읽는 책은 위인들의 평전評傳입니다. 어제도 정민(베르나르도) 교수가 쓴 조선 최고, 최대의 학자 ‘다산 독본, 정약용(사도 요한)’에 대한 평전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위인들의 평전 못지 않게 위인들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도 많이 깨닫고 배웁니다. 

 

지난 토요판 한겨레 신문은 놀랍게도 3면에 걸친 ‘가난한 이와 함께, 강우일;약한 이 대변-생명평화운동 이끈 주교 제주 교구장 은퇴 “평화일꾼 전념할 것”’이란 제하에 긴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인터뷰 말미 내용이 잔잔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에겐 전 내용이 신선한 충격이자 회개의 표징처럼 느껴지는 기사였습니다.

 

-“저 나름대로 몸부림치면서 살았지만, 정말 가난한 분들에게 좀 더 피부로 다가갔어야 했는데 그런 면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하느님 대전에 가서 ‘정말 죄송합니다’하고 사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간 부분 문답 내용 또한 읽고 내심 깨우침과 더불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길다 싶지만 많은 부분 그대로 인용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좀 덜 쓰고 덜 먹는 식으로 현대문명을 바꿔야 합니다. 먹는 것부터 본래의 인간다운 식사로 되돌아가야 해요.”

“인간다운 식사라면요?”

“우리가 어릴 적에는 고기는 일년에 제사나 생일 또는 큰 축일 때나 맛볼 수 있었을 뿐이예요. 근데 지금은 공장식 축산업이 되면서 회사에서 회식을 해도 다들 고기로 배를 채우고 있어요. 이건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고 생각됩니다. 지금도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죄없는 닭과 오리가 집단 도살을 또 당하는데, 인간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해서는 안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잖아요.”

“이미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진 욕망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요?”

“결국 각자가 의식적으로 삶의 태도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봐요. 요새 비건등 채식위주로 식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표징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습관을 바꾸어가는 분들이 있으니까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먹거리 생활 패턴을 바꾸는 운동을 우리가 펼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주교님의 식단은 어떤지요?”

“저는 되도록 육식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나오면 먹는데, 대부분은 채식 위주로 합니다.”-

 

그대로 현대판 예언자 주교님입니다. 세상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뇌하며 공부를 하는 주교님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힘든 중에도 개신교 신자로서 최선을 다해 사는 50대 중반의 40년전 초등학교 제자와의 뜻밖에 주고 받은 글일부도 소개합니다.

 

-“근래 4-5년 불속을 지나 온 것 같은 느낌이예요.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낮추시고 깎으시고 다듬으시는 시간이었던 같아요. 마치 욥처럼.”

“아, 반갑고 고맙다. 사랑하는 제자 인애야! 이 어렵고 힘든 시절 어떻게 지냈니?! 올 한 해 주님의 축복을 받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선생님, 선생님의 따뜻한 편지는 언제나 제 마음에 위로를 주시네요.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 주는 아버지처럼요. 언제나 인자한 목소리로 불러 주셔서 감사드려요. 제가 오래도록 위로 받을 수 있도록 건강하게 오래 사셔요.”

 

하나님이라 호칭하니 김수환 추기경님의 겸손과 영성이 빛나는 유머도 생각납니다. 가수 인순이가 하나님과 하느님의 차이에 대해 추기경님께 물었을 때 추기경님의 짧은 답변입니다. 

 

“글세 나도 잘 모르겠네. 나도 말하다보면 가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네.”

 

한 말씀으로 중요치도 않은 호칭 문제에 대한 논쟁을 깨끗이 종식 시킨 추기경님의 재치있는 진솔한 유머에 감탄했습니다. 어제 세기중 수도형제와 나눈 이야기도 잊지 못합니다.

 

-“참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진실해야지요!”

“진실을 알아야 살 수 있지요. 진실한 삶도 보고 배우는데 진실을 살고 싶어도 진실을 모르니 진실을 살 수 없는 겁니다. 타고난 인성도 있고요. ‘사랑이 무어냐?’ 묻던 자매도, ‘사랑은 아무나 하나!’ 라는 말마디도 생각이 나네요.”

 

저에게는 이 모두가 회개의 표징이자 깨우침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회개의 표징과 가르침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유독히 쓸쓸했던 성탄과 새해도 지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연초에 맞게 오늘 복음 배치도 적절합니다. 영원한 회개의 표징인 예수님의 관심사는 언제나 현재와 동시에 미래를 향합니다. 예수님 자체는 물론 메시지도 온통 생명의 빛, 희망의 빛으로 가득합니다. 이사야 예언자 말씀 그대로입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큰 빛이 떠올랐다.”

 

반복되는 역사같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어쩌면 그렇게 오늘날 현실과 똑같은지요. 참으로 인간의 본질인 ‘무지의 어둠’ 은 그대로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오늘날 세상에 큰 빛으로 오신 주님이십니다. 사실 매일이 큰 빛으로 오시는 주님 성탄이요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다음 메시지는 시공을 초월한 우리의 영원한 화두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세례자 요한은 하늘 나라의 도래를 선포했지만 예수님은 그분 자체가 하늘 나라의 도래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실현되는 하늘 나라입니다. 큰 빛 앞에 짙은 어둠이 사라지듯,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회개를 통해 실현되는 하늘 나라 모습이 다음 대목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지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 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얼마나 신바람 나는 통쾌한 장면인지요. 예수님 함께 하시어 회개할 때 일어나는 치유와 구원의 기적을 상징합니다. 똑같은 예수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이요 회개한 우리를 통해 실현되는 하늘 나라입니다. 바로 우리 하나하나가 예수님처럼 하늘 나라가 되어 사는 것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요한이 그 구체적 답을 줍니다. 회개에 이어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을 통한 주님과의 상호내주相互內住의 일치가 답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어떻게? 주님께서 나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과서이자 기준은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주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할 때 비로소 하늘 나라의 실현이요, 평생과제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서로 사랑함으로 하늘 나라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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