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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19.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58,1-9ㄴ 마태9,14-15

 

 

 

참된 단식, 참된 삶

-사랑이 답이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 주제는 참된 단식입니다. 참된 단식을 넘어 참된 삶을 지향합니다. 참된 삶, 좋은 삶, 아름다운 삶, 누구나 소망하는 삶일 것입니다. 지난 2월15일은 초지일관, 한결같이 변절하지 않고 시민운동가, 통일운동가로 살다가 만88세로 선종한 백기완 선생의 기일이었습니다. 각 일간 신문 1면을 큰 사진으로 가득채우고 있으며 이어 한 면이 선생에 대한 기사로 가득했습니다. 참된 삶은 죽음을 통해 환히 드러나며 죽어서 영원히 사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얼마전에는 어느 유명 동화작가가 성추행으로 실형 선고를 받고, 출판사와 도서관, 모든 서점의 책들이 회수 폐각 되고 인터넷 게시판에 게시물이 모두 내려졌다는 보도를 보고 ‘아, 이제 살았어도 죽은 목숨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번 신뢰나 권위가 실추되면 회복은 거의 불능이며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삶과 말과 글이 일치되었을 때 좋은 삶, 참된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말이나 글은 물론 삶이나 침묵을 통해서도 많이 배웁니다. 얼마전 선물 받은 책 저자의 반페이지 가득 채운 약력을 보며 ‘이분 이렇게 온통 공부하며 경력을 쌓았는데 언제 삶을 살았지?’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에 대하여, 부처님에 대하여 공부 많이 했어도 ‘지식 따로 삶 따로’ 예수님을, 부처님을 닮아 참 사람이 되지 못했다면 헛공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우리 수도자의 공부는 평생 삶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참된 사람이 되는 공부이겠습니다. 문득 참된 우정에 관한 좋은 대목에 공감했습니다.

 

“친구는 우정을 나누는 동반자 관계죠. 그런데 너무 애착하고 남보기에 연인같는 관계로 끈적이면 안돼요. 우리는 수도자들이니까 서늘한 우정을 나눠야하죠. 남한테 걸림돌이 되면 안되잖아요.”

 

‘끈적이다’ ‘서늘하다’라는 말마디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수도자의 우정만 아니라 참된 우정의 본질은 이러할 것입니다. 해인 수녀의 두 참된 삶의 두 도반에 대한 인물 묘사도 잊지 못합니다. 참으로 부러운 것은 재물도 지위도 명예도 아닌 이런 참된 삶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조광호 신부님이라고 있어요. 저보다 두 살 아래지만 그분을 보면 폭넓은 인간관, 차별하지 않는 사랑, 종교에 관계 없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분은 자기를 객관화하는 서늘한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성직자라고 대접받아야 한다는 우월감에 빠지지 않고 골고루 객관화하면서 삶을 관조한다 그럴까요. 구상 선생님도 신부님을 아끼고 좋아하셨어요. 그분은 미술을 하고 저는 문학을 하지만 예술과 성직 생활을 병행하는 도반으로 지금까지 4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참된 우정 관계라면 진짜 성공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친 김에 강우일 주교에 관한 묘사도 나눕니다.

 

“주교님 사무실에 가면 ‘덕불고德不孤’ 즉 ‘덕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라는 액자가 걸려 있는데 인상적이었어요. 주교님은 큰 산 같은 사람이에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그와 닮은 인품이 흘러나옵니다. 일본에 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을 만난 인연으로 추기경의 비서가 됐고 42세에 주교가 되셨죠. 주교님은 불교도 유교도 좋아하고 타 종교와 두루두루 교류하십니다. 그 글을 마음에 담고 사셔요. 이분을 보며 늘 공부하는 자세를 배우고자 했어요. 주교님은 젊은 시절부터 남을 헤아려주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 인품이다 싶을 정도로 깊었어요. 그렇다고 농담도 안하는 꽉막힌 분이 아니에요. 말을 아끼면서 불필요한 말은 안하고 넘어가는 배려가 많은 분이에요.”

 

참된 단식, 참된 삶에 대해 묵상을 나누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단식이나 침묵, 가난은 절대적 가치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두 헛일, 헛수행입니다. 평소 부실한 식사를 하는 사람이나 육체로 중노동을 하는 사람은 단식이 아니라 잘 먹어야 하고, 말이 없이 늘 침묵중에 혼자 지내는 독거의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해야하고, 늘 가난한 사람들은 새삼 가난을 강조할 필요도 없고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을 위한 돈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니 정작 단식할 사람은 평소 잘먹어 비대한 사람들이고, 침묵할 사람은 말많이 하는 법조인들이나 성직자, 교사나 상담가들이고, 자발적 가난으로 나눠야 할 사람은 부자들입니다. 그러니 단식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배고픔을 체험하며 연민을 배워야 참된 단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참된 단식에 대한 선포가 참으로 통쾌하며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1.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2.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3.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 보내고, 4.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 5.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6.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7.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8.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필시 예수님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을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참된 단식을 넘어 사랑과 연민, 진리와 정의의 실천으로 충만한 참된 삶, 좋은 삶, 아름다운 삶을 목표로 함을 깨닫습니다. 이런 참된 삶이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우리를 참으로 부끄럽게 합니다. 이런 참된 삶에 대한 하느님 축복의 묘사 역시 얼마나 가슴 벅찬 행복인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하고 말하리라.”

 

이런 예언자의 영성이 진짜 영성입니다. 이런 예언자가 진짜 시인이며 신비가이며 관상가입니다. 삶이 증발해 버린 창백한 영성이 아니라, 삶과 사랑이 연민이 정의가 진리가 하나된, 현실과 신비가 하나된 온전한 참된 영성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넘치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보면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요한 제자들의 시야가 너무 협소합니다. 한 마디로 사랑이 없습니다. 단식의 잣대로 예수님의 사랑을 재단하니 어불성설입니다. 단식을 많이 하여 구원이 아니라 참된 단식이, 참된 수행이, 이웃을 배려한 사랑의 단식과 수행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안먹고 교만한 것보다 먹고 겸손한 것이 낫다’란 옛 장상의 언중유골의 언급도 생각납니다. 

 

단식한다면 이웃에 숨겨진 감쪽같은 겸손한 단식을, 유쾌하고 명랑한 단식을 할 것이요, 무분별한 자기과시, 자기도취의 허영의 단식이 아니라 단식의 때에 단식하라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결코 단식의 거부가 아니라 지혜로운 분별로 제때에 겸손한 단식, 참된 사랑의 단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기쁘게 지내야 할 축제 잔치 인생을 고해인생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참된 삶, 좋은 삶, 아름다운 삶, 즉 진선미眞善美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건강도 돈도 재물도 지위도 권력도 명예도 학식도 재능도 미모도 다 사라져 평등해 지고 주님 앞에 영원한 향기로 남는 삶은 진선미眞善美의 삶 하나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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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1.02.19 08:59
    주님 주신 기쁨과 감사의
    사순시기에 저희가 주님닮은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항상 새롭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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